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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Mar 21. 2022

[재미있는 밥상]

달걀프라이

"아빠, 너무 싱거워요."


9년 전 어느 휴일, 아홉 살 아들이 조심스레 톨톨댑니다.

부자가 함께하는 식탁에, T.S. 엘리엇의 페로몬이 풍겨옵니다.

왠지 황무지처럼 을씨년스럽습니다.

김치, 시금치, 콩나물…


주섬주섬 무생채와 미역줄기를 챙겨왔지만, 여전히 '전원일기'와 '초원의 집'입니다.


"음... 심심하게 먹는 게 건강에 좋아."


오물오물 밥을 씹던 아이가 다시 건의합니다.


"아빠, 우리 좀 재밌게 먹으면 좋겠어요."


터지는 웃음을 누르며 아들을 바라봅니다.

이내 얼른 달걀을 부쳐옵니다.

설레는 표정으로 노른자를 밥에 비비는 아들에게 묻습니다.


"이제 재밌어?"


"음... 그럭저럭요."


코브라 같은 녀석, 커서 뭐가 될까요?

아이의 밥공기에 슬며시 달걀프라이를 하나 더 얹습니다.

마주한 눈빛에 싱긋 웃음이 스밉니다, 아이도, 아빠도.

밥상풍경이 재밌습니다.


달걀은 ‘닭(의) 알’을 하나로 엮은 낱말입니다.

북한에선 닭알(발음: 달갈)이라고 부른다죠.

소의 고기 ‘쇠고기’와 마찬가지입니다.


돼지고기 ‘제육’도 원리가 같지만, 조금 다릅니다.

제육은 ‘저(豬)의 육(肉)’입니다.

‘돼지 제’자는 없습니다.

서유기의 저팔계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달걀의 영어단어 ‘egg’는 라틴어 ‘ovum’에서 왔습니다.

고대 인도-유럽어(PIE: Proto-Indo-Europian)인 ‘ōwyo,와 ‘ōyyo’가 뿌리입니다.

이들은 새를 뜻하는 ‘awi-‘에서 변형됐다고 합니다.


9년 전 아홉 살이었던 아이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체구가 아빠보다도 거대해졌지만, 아직 내겐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존재입니다.


청나라폐렴이 시들해지면, 좀 맛있는 걸 먹으러 갑니다.

달걀프라이보다 훨씬 더 재밌는 메뉴들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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