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화에 발기한 이들을 지켜보며
지난달 포털사이트 뉴스에는 어떤 그림에 대한 논란이 꽤 많이 실렸다.
국회에서 열린 전시전에 '더러운 잠'이 걸리며 촉발된 이슈였다.
마네의 누드화 '올랭피아'에 틀을 둔 이 작품엔 원작의 여인 대신 박근혜 씨가 잠들어 누워 있다.
흑인 시종 대신 최순실이 썬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오만한 표정으로 곁을 지키고(혹은 통제하고) 있다.
침대 옆 태극기의 중앙에는 최순실의 태블릿 셀카 사진이 박혔으며, 창문 너머엔 세월호가, 침몰하는 세월호가 보인다.
지난 가을부터 근실 게이트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아름다워지려는 왜곡된 욕망에 목숨 걸고 지킬 가치를 외면하고, 누군가의 장난에 놀아나며 정신 못 차리는 대통령을 희화한 그림이다.
이에 대해 국가 존엄을 모독하고, 여성을 비하했다는 항의가 일부에서 거세게 일었다.
자칭 보수 수구세력들과 여성단체들이 꼬투리 잡은 듯 들고 일어났고, 범새누리당 여성 국회의원들이 전시를 도왔던 표창원 의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여기엔 국민의 당 여성의원들도 동참했다.
MS한글사퇴몽니 이은재를 비롯해, 선거홍보비 리베이트로 기소됐던 김수민과 박선숙도 눈에 띈다.
난 이들이 굴욕적 위안부합의에 대해 항의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문제 있는 인간들이니, 다른 이슈에도 입 닫아야 한다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푸는 데 앞장서야 할 그들이 침묵했다는 건, 여성국회의원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들의 확성기 볼륨은 자신들의 득실에 따라 달라진다.
최순득과 최순실들이 득실대는 세상 같다.
이 작품에 대해서 의견이 나뉜다.
'표현의 자유' 대 '존엄과 여성에 대한 모독'이란 주장이 대립한다.
얼개가 허술한 패러디라는 비판도 있다.
참 대단한 존엄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사회정의를 무너뜨리고 국정을 마비시킨 '원수 같은 원수'다.
낱낱이 죄상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모르쇠와 거짓으로 일관하며 부끄러움도 모른다.
이런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우리 시민사회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폭력을 지향할 만큼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근대 시민혁명의 상징인 프랑스혁명은 희대의 반역이다.
그들은 실제로 국가 최고 존엄인 왕과 왕비의 목을 날렸다!
프랑스 시민들은 국가존엄을 무너뜨린 대역죄인들인가?
또한 패러디와 풍자에 대한 잣대는 왜 그리도 엄중한가?
고대 그리스에서 온 패러디의 정의와 유래를 시작으로, 너무나 고매한 수준의 작품을 요구하는 그들이 상아탑 학자처럼 보인다.
(상아탑은 본래 현실과 정의를 외면하고 대학에 박혀있던 학자를 비꼰 데서 유래한 말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유신독재시절의 패악이 되살아나, 생계가 막히고 자유를 억압받던 이들이다.
멱살을 잡아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 풍자 그림에서 그친 거라고 본다.
거대 악에 대해서는 원래 그런 거라며 옹호하고, 힘 없는 자들의 작은 실수와 일탈에 대해서는 눈에 쌍심지를 켠다.
그게 이 나라 기득권의 생존방식이다.
이번 소란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밥그릇을 감싸고 자화자찬하려는 국면전환용 관심 돌리기로 보인다.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지금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기억해 두자.
그리고 표심으로 돌려주자.
그러려면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 무엇보다 우리 나라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