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즐거움이 시들다
사진.
한자로 '베낄 사'에 '참 진'자를 씁니다.
'보이는 실제를 똑같이 구현'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영어로는 photo, 즉 '빛'이라고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빛에 비친 세상을 똑같이 그린 것, 혹은 세계를 담은 빛이라는 뜻으로 유추해 봅니다.
사진은 소수의 생각과 개념을 쉽고 폭넓게 공유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자료와 작품은 사진을 활용합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에게 낯선 분야를 설명하는 데, 익숙한 것들을 더 명확히 보여주는 데, 사진은 최고의 도우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모든 곳에 사진을 끼워넣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본 모습을 보여주려고, 가슴 속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적당한 사진을 찾는 데 골몰했습니다.
어느 순간, 매몰돼가고 있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은 손쉽게 상상하게 돕는 동시에, 독특하게 상상할 수 없도록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 이상 더 많이 머릿 속에 그리던 즐거움은, 그려진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글만 있던 소설 플란더스의 개는 만화 속 네로와 파트라슈의 이야기보다 애틋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은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하기 전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사진과 영상의 순기능은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합니다.
그저 오랜만에 글을 쓰려다가, 사진 갤러리부터 뒤적대는 제 모습에 뭔가 공허했을 뿐입니다.
상상하는 즐거움을 잊고 사는 듯 느꼈을 뿐입니다.
*상상: 생각할 상, 모습 상. 머릿 속, 마음 속으로 떠올리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