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리고 바람
무덥다.
폭염과 무더위는 습도로 구분한다.
터질 듯한 열기와, 찝찝한 후텁지근함의 차이다.
무더위의 무는 물에서 ㄹ이 탈락한 소리다.
비 내린 뒤 무지개도 물지개가 변한 말이다.
여기서 '지개'는 우리나라 옛 가옥의 작은 문을 의미한다.
이 문의 윗쪽은 구부러진 호 모양인데, 무지개의 곡선과 닮았다.
'물로 만든 문', 참 예쁘다.
무좀도 물좀에서 왔다.
물집이 잡히는 좀병.
그래서 신발 속 습도만 조절해주면, 의외로 쉽게 고칠 수 있다.
아무튼 무더위다.
선풍기를 켠다.
나도 모르게 선풍기에 대고 소리를 보내본다.
"아아아아아~"
그 소리가 바람에 실려 다시 귀에 찾아온다.
마음에 닿아온다.
불현듯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이 떠오른다.
보지도 않았는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많이 접해서 아련하고 뭉클하다.
1987년 강원도 춘천 산자락에 있던 후평국민학교 풍경이 떠오른다.
가끔 점심시간에 소녀가 풍금을 연주하면, 소년은 그냥 가슴이 설렜다.
들려오는 선율에 슬쩍 그 아이를 훔쳐보곤 했다.
하지만 가난뱅이 집안의 그저 그런 녀석에겐, 귀한 집 예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분수 넘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내 마음 속 바람 거문고는 그렇게 싱겁게 소리를 마쳤다.
풍금(風琴)란 이름처럼, 그저 바람에 노래한 설렘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