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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ing in the rain

비 나리는 일요일

by 어풀

1991년 2월,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까지 며칠 남겨둔 토요일 오전이었다.

전자오락실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몰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 맞는 게 뭐 대수냐며 터벅터벅 걷는 길에, 익숙하고 구슬픈 노래가 들려왔다.


뭔가에 홀린 듯 음반점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전기난로의 열기로 훈훈했다.

비에 흠뻑 젖은 17세 소년을 반갑게 맞아주는 점원 누나도 따스했다.


"지금 나오는 노래, 아하 (a-ha) 맞나요?"


대답 대신 누나가 건넨 건 하늘색 수건이었다.


"감기 들겠어요. 비부터 닦아요."


생긋 웃는 그 모습이 참 세련되고 싱그러웠다.

수건에 동창회나 향우회 기념 글자도 박히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아하 새 앨범이에요. 좋아하나 봐요?"


"아...네... 조금요. 아니, 많이 좋아합니다."


"'Crying in rhe rain'이란 노랜데, Everly Brothers란 듀오 노래를 다시 불렀어요. 마침 비에 젖어서 들어온 학생이랑 분위기가 비슷하네요."


삶에 항상 먹구름만 가득했다고 믿어온 17세 소년에게 어울리는 곡이었다.

그 후로 하늘이 검보라빛으로 어둑해지거나 천둥소리가 울리면, 괜스레 반가웠다.

싸구려 미니카세트를 챙겨서 그렇게 비에 푹 젖곤 했다.


그렇게 세월은 훌쩍 26년을 흘러버렸다.

지금 탈모의 이유가 아무래도 그때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맨머리에 맞은 비 때문인 것 같다.


2017년 7월 어느 일요일.

쏟아지는 빗줄기에 떨어지는 머리숱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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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v=h-WPexVEu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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