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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소식

Dying young

by 어풀

2009년 2월, 추위가 시들고 봄이 움트던 아침이었다.

회사 안내데스크 직원의 전화에 긴장했다.


"대리님, 00일보 기자시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기자실도 없는 우리회사 홍보실에 찾아왔다는 건 이슈가 있는 거다.

전날 회장 큰 딸의 이혼 소송 얘기가 보도되며, 일명 '뻗치기'를 나온 거다.


20대 후반에 막 들어선 싱그런 모습이었다.

아마 사회부를 거쳐, 식품/유통을 막 담당한 막내라 맡은 미션이리라.

밝은 목소리와 웃는 모습이 참 풋풋했다.


그날 빈 회의실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하루가 가는 동안 여러 모습을 보았다.

낯선 곳에서도 원래 담당하던 기사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열정과 깡(?) 그리고 자부심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늦은 오후, 회사로 돌아가는 그녀를 배웅하며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친구들은 사시나 행시 많이 붙었어요. 의사도 제법 있구요. 그래도 기자가 돼서 참 좋아요."


이후 봄부터 본격적으로 우리회사를 담당한 그녀는 예상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일에 대한 의욕과 책임감이 남달랐다.

종종 갑작스런 자료 요청에 회신이 늦을 땐 군대 선임병보다 더 무섭게 닥달했지만, 항상 좋은 기사를 선물해 주곤 했다.


그렇게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SBS에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란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한예슬의 아역으로 나온 소녀를 보며 그녀가 떠올랐다.

며칠 후 통화를 하며 그 얘기를 하니, 종종 듣는 얘기라고 했다.

그게 전 회사에서 그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세월이 지나 페이스북 친구의 페이지나 카카오톡 대문사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잘 살고 있구나.'

하지만 당시 내 상황은 팍팍하게 꼬여 있어서 축하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이 바닥 있다보면 조만간 만나겠지.'


어제 그녀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에 접어든 청년인데...

착잡하고, 미안하고, 씁쓸한 마음이 계속해서 머문다.


점심 무렵 조문을 다녀올 생각이다.

언젠간 우리 모두 자연스레 소멸하겠지만, 서둘러 세상을 떠난 젊은이의 소식은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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