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매주 월요일마다 심야시간에 방영돼 성장기 소년들의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했던 미국 연속극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드’라고 부르지만 그 땐 ‘외화’로 익숙했던 장르의 드라마가, 우리의 수면시간을 줄이곤 했습니다.
'블루문 특급'.
로맨스와 코미디가 어우러진 탐정물이었습니다.
매혹적인 시빌 셰퍼드와 머리숱이 풍성했던 브루스 윌리스가 매회 미스터리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그려졌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썸 타다가 사랑에 이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요소들을 찾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더 버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 빠져든 이유 중엔 성우들도 있었습니다.
아놀드 슈바르츠네거(슈왈츠제너거는 미국식 발음)와 실베스타 스탤론의 목소리를 도맡았던 이정구 씨가 브루스 윌리스를 연기했고, 최진실 씨의 데뷔 초기 삼성전자 CF 목소리("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를 연기했던 권희덕 씨가 시빌 셰퍼드를 맡았습니다.
엑스파일의 이규화(멀더)와 서혜정(스컬리)을 넘어서는 개성이, 한몸인 듯 조화롭게 어우러졌습니다.
청아하고 화사했던 권희덕 씨의 목소리를 지금은 들을 수 없어 무척 아쉽습니다.
블루문 특급을 더 매력적으로 비춰준 다른 하나는 바로 오프닝곡이었습니다.
경쾌하고 로맨틱한 선율에, 멋진 사내로 성장한 내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매혹적인 여성과 스포츠카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저 불빛이 그윽한 도시의 밤거리를 멋스럽게 거니는 모습을 꿈꿨습니다.
읍, 면, 리 단위 지역에 사는 시골소년에겐, 커다란 도시 자체가 로맨스였나 봅니다.
그 도시의 하늘엔 푸른 달빛이 드리워지고, 거리엔 이 노래 'Moonlighting'이 흐릅니다.
어느덧 소년은 불혹을 지나, 그 시절의 브루스 윌리스보다 한참 더 형이 돼버렸습니다.
그때 그 모습과 옛 노래가 괜스레 아련합니다.
블루문 특급의 원래 제목은 ‘moonlighting’입니다.
‘달이 빛나는 밤에’ 정도 되려나요?^^*
이전에 ‘Kinght Rider’를 ‘전격 Z작전’이란 해괴망측한 제목으로 가공했던 KBS치곤, 개과천선급 개명력을 보여준 셈이었습니다.
나이트 라이더를 직역한 ‘기사기사’도 이상하긴 하네요.
유상무상무상 같은...
“마이클, 쪽팔려요.”
“키트, 튀어!”
'달빛 비춤'외의 'moonlighting'의 의미를 알고 피식 웃었습니다.
‘밤에 하는 일’, ‘야근’이란 뜻도 있었네요.
한국어영어사전에선 ‘세금 안 내려는 은밀한 부업’이라고 설명하는데, 정확하게 알기 위해 영영사전을 찾아봅니다.
지식과 정보를, 항상 정확한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보다 설익었던 시절, 이런 저런 자리에서 흥에 취해 부정확한 추측과 상상으로 ‘똑똑한 척’을 했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믿은 친구들이 다른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가, 망신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후론 신중해졌습니다.
글마다 고집스럽게 사전화면을 캡춰해 제시하는 이유입니다.
달빛 아래서 하는 일엔 야근(초과근무)도 있고, 나쁜 짓(범죄)도 있군요.^^
탐정수사물이었던 만큼, 중의적 뜻을 가진 제목이라 추측해 봅니다.
한밤중의 수사, 잠복, 잠입, 격돌의 상황들의 끝엔, 서늘하고 부드러운 달빛이 흐르곤 했습니다.
딱 어울리는 직군이 검찰과 경찰이네요.
존경받는 엘리트 조직인 대한민국 검찰이 보다 더 공정하고 정의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힘센 자에겐 한 없이 너그럽고, 제 밥그릇 건드리는 이들은 원칙을 넘어 걸레가 되도록 물어뜯는다는 오해가 풀리길 바랍니다.
애니웨이~
소년시절 품었던 도시 로망의 꿈을, 본의 아니게 종종 이뤘었군요.
머리 큰 브루스 윌리스 가까이엔 고혹적인 시빌 셰퍼드 대신, ‘이런 시벌’을 달고 사는 셰퍼트 같은 선배가 계셨습니다.^^;;
https://youtu.be/9sECrATrD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