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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아카데미, 이를 수 없던 세상]

by 어풀

중학생 시절 MBC '퀴즈 아카데미'를 자주 봤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세상이었습니다.
채널도 몇 개 안 나오는 티비를 켜고, 일요일 오후 오도카니 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브라운관을 바라봤습니다.

지금은 원로가 된 젊은 이창섭 아나운서가 문제를 내고, 푸른 목소리의 김광석과 이정석이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문제들이 나오면 대충 생각나는 대로 답을 중얼댔습니다.
우연히 정답이 얻어걸리면 엄마는 흐뭇한 웃음으로 어깨를 토닥여 주셨고, 두 살 위 형은 아무거나 찍은 거라며 놀려댔습니다.

열다섯이 되면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칭찬해 줄 엄마도, 장난을 걸 형도...
출연한 대학생들과 응원온 친구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대학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지만, 그냥 어딘가에 섞이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 네 시면, 그렇게 티비 앞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2학년에 올라가며 퍼뜩 정신이 들어, 대학에 가겠단 각오와 함께 꿈을 품었습니다.

“퀴즈 아카데미 나가야지!”

그해 4월, 퀴즈 아카데미는 종영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Academy는 흔히 대학이나 학술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아테네 인근에 젊은이들을 위한 인재양성소 ‘akademia’를 설립하며 시작되었습니다.
akademia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Akademos에서 왔습니다.
Akademos는 지혜와 용기로 아테네의 전쟁을 멈춰 칭송받았고, 그의 이름을 딴 숲이 아테네 북서쪽에 있었습니다.
Academos는 ‘고요한 지역’을 의미합니다.

*12년이 지난 2005년 1월(녹화는 2004년 12월), 아쉽던 꿈을 이루려고 KBS의 '퀴즈 대한민국' 새내기특집에 출연했습니다.
새내기 아빠로서 시작 무렵 퀴즈 영웅이 되리라 선언했고, 두 번째로 신속하게 탈락했습니다.
신들의 음료 '넥타'를 쥬스라고 말했다가 틀렸습니다.
그 이후로 병원에 문병 가도, 넥타를 본 척 만 척 합니다.

첫 번째 탈락자는 새내기 아나운서 조우종 씨였습니다.
그 양반은 달 최초 착륙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틀렸습니다.^^;;

https://youtu.be/xrTEavNpY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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