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어린 맷집왕
국민학교 시절, 반에서 너댓 아이들은 태권도장에 다녔습니다.
녀석들이 사범님께 품세와 겨루기를 배울 때, 난 집에서 고통스런 실전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 무렵 많은 가정은 두세 살 터울 사내형제들을
재배했고, 대부분 아우들은 샌드백이나 훈련용 인형(dummy)의 숙명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형은 시라소니 같은 어린이였습니다.
달리기, 공부, 싸움 모두 학교에서 1등이었습니다.
지역 건달들도 두려워했던 주먹왕 아버지의 지도와 어른이 된 후에도 중딩 일진들을 두려워하는 아우의 뒷바라지 덕분이었습니다.
복싱, 발차기, 씨름, 레슬링이 융합한 공격을 덜 아프게 맞고 버티는 방법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6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태권도장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겨루기 발차기에 코피가 터진 또래 녀석을 보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내녀석들 세계엔 싸움질이 이어집니다.
큰 꼬마든 덜 꼬마든, 자주 하든 덜 자주 하든,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덩치 큰 녀석들의 드센 장난에 싸움이 몇 차례 벌어졌는데, 그때 느꼈습니다.
‘얘들은 왜 이렇게 약하게 때리지?’
맞고 다닌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다른 친구를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한 대 맞으면, 그때부터 보기 힘든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엔 거의 싸움이 없었습니다.
그 지역에선 나름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라, 껄렁패 흉내 내는 녀석들조차도 알고보면 순둥이였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다툼은 벌어집니다.
고 1 때, 주먹 좀 쓴다는 껄렁이와 10분 넘게 치고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권투를 배웠는지 얼굴에 주먹을 알차게 꽂았습니다.
하지만 때려도 때려도 버티다 보니, 끝을 보려는지 등뒤로 돌아붙어 목을 감았습니다.
본능적으로 뒷머리로 서너 차례 받았습니다.
녀석의 코가 깨지고 앞니가 입술에 박혔습니다.
이후로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고, 난 졸지에 머리 좋은 녀석으로 시비수 없이 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맷집이 평화를 만듭니다.”
*오늘의 한방
- (head) butting: ‘머리로 받다’
게르만조어(祖語) butan: ‘후려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