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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도사(武道史)] 둘. 캠퍼스 간디

by 어풀

1984년, 문화방송(MBC)에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외화시리즈를 방영했습니다.

채널주도권이 없는 꼬맹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 킹스필드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이 꽤 멋스럽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두막 소년이 그리는 맨하탄 스카이라인’ 같은 선망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저 그림 속에 나도 함께일 거라고 꿈꾸곤 했습니다.


강산이 변한 1994년, 서울 모대학의 강의실 풍경은 그냥 ‘고등학교 4학년 교실‘이었습니다.

전공이었던 어문학 수업들의 핵심활동은 필기였습니다.

킹스필드 교수는 없었습니다.

긴 여정 끝에 신기루에 도착한 순례자처럼, 가슴 속에 공허한 바람이 일었습니다.


더불어 고삐리든 학필이든, 수컷사회에선 싸움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꽤 흘러 회장님이나 사장님께서 초대해 주신 자리에서도, 격투는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더군요.


의아했습니다.

감동적 무용담을 숨긴 채 마음 잡은 무림고수들은, 대체 왜 죄다 우리학교 우리과에 온 건지...

애써 봉인했던 그 전투기는, 어쩌다가 유출돼서 다른 과 여자선배까지 알고 있는 건지...


달도 별도 취해버린 밤, 학교 후문 술집 앞에서 실제로 그 영웅들의 전투를 목격했습니다.

머리끄댕이에 할큄질이라니...

곧이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과에 엄청난 작가가 숨어 있다!’


다행히 학교에선 주먹질이 오가지 않았습니다.

거슬리는 사람도, 신경쓸 일도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누군가 불편하게 굴면, 어렵지 않게 처리했습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해버렸으니까요.

아주 신속하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대두는 프로 사과꾼 같아. 전생에 간디였나 봐!”


“에이, 뭘. 간과 쓸개를 오가다가, 디지게 맞아본 적은 있어.”


“간디스토마네!”


평화로운 육체의 날들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용서는 종종 가장 지혜로운 공격이다.”


*오늘의 한방

- apology: 사과. 그리스어 aplogia는 ‘방어상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말을 멈추다’를 뜻하는 apologos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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