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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식당

by 어풀

홍보맨 초년병시절, 업계 전우로 알게 된 형이 있다.

본디 사람은 캐릭터 비슷한 이들끼리 자석처럼 밀어낸다.

차분하고 사려 깊은 J형은, 그런 면에서 참 좋은 벗이다.

그렇다고 내가 방정맞고 생각 없는 비비원숭이란 얘긴 아니다.

진짜다.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소주 한 잔에 오랜 회포를 풀기로 한다.

오랜 시간, 업계가 다르고 거리가 멀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아니다.

기고만장하다가 절름발이가 돼버린 스스로가 한심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의 7년 만의 자리가 이뤄진 계기는, 사무실 이전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지난해 이 무렵 삼성동에서 용산으로 이사했는데, J형의 회사가 길 건너편에 있었다.


장소와 시간을 조정하며, 만나식당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보다 오랜 기간 이 동네에 있었으니, 맛집을 추천했으리라 짐작했다.

검색을 해보니 꽤 괜찮은 곳 같았다.

역시 J형.


6시 무렵 아모레 퍼시픽 사옥 앞에서 만나, 삼각지역을 향해 걸었다.

안부를 물으며 3분 정도 가는데, 형이 묻는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만나식당 가자면서요?"


"잉?"


아모레 퍼시픽 앞에서 만나서 식당으로 가잔 얘기를 '만나식당'에 가잔 말로 오해했다.

공교롭게도 '용산, 만나식당'으로 검색하니 사람들이 만나식당으로 부르는 '풍성한 만나'란 식당이 실제로 있었던 거다.


"이렇게 된 이상 가보자!"


골목에 있는 데다가 초행길이라, 두 세 차례 길을 잘못 들어섰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장님, 뭐 먹을까요?"


"우린 밥집이에요. 뭐 좋아하시는데요?"


"소주 한 잔 하려구요."


"어쩌나 술은 안 파는데... 요 앞 마트에서 사오세요."


그렇게 페트맥주와 소주 두 병을 사왔다.

옛날 불판에 두툼한 삼겹살을 바삭하게 굽는다.

백반정식 전문이라 달걀말이에 총각김치 같은 반찬들이 담백하고 상큼하게 입맛을 돋운다.


20.1도짜리 참이슬 오리지널의 풍미가 참 좋다.

소주는 맛과 향뿐만 아니라, 촉감으로 마시는 술이다.

밍숭맹숭 싱거운 16도대 녀석들만 들이키다가, 앞숫자가 다른 센놈이 들어오니 짜릿한 울림에 옛 기억이 일렁인다.

지난 날을 떠올리며 또 다른 이야기를 쌓아간다.


가끔은 실수와 오해가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준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금요일, 운수 좋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옛 벗을 만나다.

추억 참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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