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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밤]

2020년 5월 30일

by 어풀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홀가분한 하루였다.

개학을 사흘 앞두고 묵혀뒀던 탐구생활을 다 마쳐버린 느낌.

엄두가 나지 않던 업무를 벼락치기로 끝냈고, 모처럼 옆팀 선배와 저녁을 함께했다.

자유복 출근일이라 옷차림이 편하다.

음주용 전투복 같다.

10여년 동안 지나간 일들이, 기우는 술잔과 더불어 술술 흘렀다.

두 명 자리가 좋은 이유다.

이야기 주제가 새지 않아 시원스럽다.

더욱이 선배는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살짝 일찍 자리를 마쳤다.

어느덧 여름이다.

8시를 지났는데, 아직 어둠에 푸름이 스며 있다.

기분 좋게 마셨는데, 왠지 술이 살짝 아쉽다.

카톡 리스트를 훑었지만, 금요일 이 시간에 갑자기 만날 벗을 찾긴 쉽지 않다.


어쩌다 보니 혼술집에 와버렸다.

아니,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게 됐다.

식탁이 몇 개뿐인 작은 선술집, 푸릇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도란도란 추억을 만든다.

주방 앞 작은 자리에 앉아, 술잔을 턴다.

초장을 살짝 찍은 데친 오징어가 쫀득하다.

별 하나에 정겹고 예쁜 이름들을 헤던 윤동주처럼, 술 한 잔에 그리운 벗들에게 톡을 보내본다.


"그래, 난 잘 살아. 건강하자. 언제 술 한 잔 해야지."


상투적인 말들이지만, 이렇게 살아있단 걸 확인하니 그걸로 좋다.

기대 않던 톡에 전화가 걸려와 목소리를 듣는 게, 이젠 꽤 기분 좋은 행운이다.

놀아줄 벗이 드물다.

이제 나는 확실히 젊지 않다.

소주맛이 쌉쌀하다.


"이것도 좀 드셔보세요. 저쪽 손님들 안주 만들면서 조금 넉넉하게 해봤어요."


부치기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춘천에선 부침개를 부치기라고 불렀다.

아삭하게 씹히는 배추와 투박한 듯 간이 옅은 밀가루부침의 마리아주가, 군바리 시절 휴가 나와 마침 같은 기간 휴가 나온 동네친구를 만난 듯 소박하게 정겹다.

취했다.

십수 년 전 하고 놀던 '신의 물방울' 코스프레가 튀어나오다니...

이제 일어날 순간이다.


"저 죄송한데요. 저희가 게임을 하는데요."


연두색 셔츠에 포니테일 머리.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직장 초년병 같다.

살짝 발그레한 얼굴에 취기와 객기가 밴 듯 보인다.


"네?"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저희가 내기를 했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회사원 아니죠?"


당혹스럽다.

내가 실직자나 무직자로 보이나?

늙고 병들어 보이나?

건강 관리 좀 할걸...

그런데 내가 왜 첨 보는 꼬맹이들 때문에 자괴감 느끼고 괴로워 하는 거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럼 어떤 사람으로 보여요?"


포니테일 꼬맹이가 조심스레 묻는다.


"글 쓰는 분이죠? 작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 친구가 말하는 글에는 보도자료도 포함되나?

수필 비슷하게 가끔 끄적대긴 하지만, 작가 수준은 아닌데.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공들여 쌓은 취기가 날아가 버리잖아.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데."


"와, 어떡해, 어떡해! 저희 자리에 잠깐만 와주시겠어요?"


엥?

일이 커지기 전에 튀어야 한다.

스마트폰 검색 한 번이면 밑천 죄다 드러난다.


"고맙습니다만, 일어날 시간이라서요. 맛있게 드세요."


"악플 달 거에요!"


이건 또 무슨 상황?

사이코 어린이회 번개모임인가?

그런데 대체 어디에 악플을 단다는 거지?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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