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병원 갔다 올게. 상 차려놨으니까 점심에 먹고, 배 고프면 이걸로 빵 사먹고."
어머니는 소년에게 500원짜리 동젠 세 개를 쥐어주었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500원도 아니고 1,000원도 아닌 1,500원일까?
왕단팥빵이 겨우 200원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소년에게 준비물이나 문제집 살 돈을 제외하곤 거의 돈을 준 적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꼬마가 생각하기에도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갑자기 큰 용돈이 생겨 설렌 마음이 더 컸다.
1988년 8월 무더위가 한풀 꺾인 어느 시골 마을, 서울올림픽이 한 달 남짓 남을 무렵이었다.
하늘은 동해처럼 짙푸르렀고, TV에선 '달려라 하니'를 방영한다는 예고가 매일 이어졌다.
덩그런 시골집엔 소년뿐이었다.
아버지는 일터에, 두 살 위 형은 독서실 수련회에 가고 없었다.
심심한 소년은 마당에 묶인 누렁이의 이마를 한참 쓰다듬다가 책장에서 양장본 백과사전을 꺼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엎드려서 사전을 뒤적거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쓰에울~ 쓰에울"
매미 소리가 사나워질 무렵 잠에서 깬 소년은 허기를 느꼈다.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위의 보자기를 걷어냈다.
노란 감자국과 보리를 섞은 잡곡밥, 김치, 어묵볶음...
소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소년은 감자국을 참 좋아했다.
부드럽고 담백한 국물이 엄마처럼 좋았다.
한참을 먹다가 뭔가 불편한 소리를 느꼈다.
쩝쩝대는 소리가 거슬렸다.
밥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씹는 거라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국도 후루룩 소리를 크게 내고 먹으면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라는 말씀도.
국 한 사발에 밥공기를 금세 비우고, 부엌으로 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바닥만 보였다.
소년이 빙긋 웃었다.
'이따가 엄마한테 또 해달라고 해야지.'
한낮이 지나고 어스름한 석양이 밀려왔다.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아침에 어머니가 준 500원짜리 동전 세개를 만지작댔다.
하지만 빵을 사러 가지는 않았다.
이 돈으로 두부랑 국수를 사오면, 어머니가 기뻐할 거란 생각에 소년은 혼자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곧 돌아와서 맛있게 저녁밥을 먹을 거란 기대와 함께...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해가 지고, 밤이 깊었다...
허기가 깊어져 창자가 들러붙는 듯 배가 쑤셨다.
하지만 그 고통도 시간이 지나자 제풀에 지쳐버렸는지 슬며시 가라앉았다.
소년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스르륵 잠이 든다.
'괜찮아. 이렇게 마루에서 자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와서 이부자리에 눕혀주실 거야.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볼을 쓰다듬어 주실 거야. 그러면 졸린 척 눈을 비비며 내일 아침에 감자국 해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시골집의 여름밤이 깊어갔다.
소년은 그렇게 마루에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