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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Aug 07. 2019

카운트다운을 준비하는 법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어제 일도, 아니 한 시간 전 일도, 5분 전 토해냈던 열변의 첫머리도 깜박깜박한다. 뇌주름 곳곳에 새겨진 정보값들이 적당히 지워지고, 적당히 새로 채워져야 하는데 역시 쉽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간혹, 더 정확히는 아주 가끔 내가 썼던 문장들을 좀처럼 잊지 못할 때가 있다.


관과 혼보다 상과 제가 더 잦아진다면, 인생의 한 반환점을 돌아선 것이리라.


아직은 그래도 관과 혼이 더 가까운 시절을 지나가고 있지만, 점점 상과 제가 낯설지 않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곤 한다. 최근의 계기는 어느 환자 가족 인터뷰였다(http://omn.kr/1hsny). '인터뷰만 잘하면 되겠지'란 마음으로 일을 맡았는데, 그러면 안 되는, 정말 어려운 주제였다.

 

산자에게 죽음은 영원한 간접경험일 수밖에 없다. 부분의 사람이 죽음이란 단어를 추상명사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인터뷰 준비를 하고, 글을 쓰며 '아 나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20년 전, 외할머니를 땅에 묻으며 하염없이 오열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엄마도 언젠가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소녀는 이제 그 시절 엄마의 얼굴을 한 채, 그 시절 할머니의 얼굴을 한 엄마를 보며 '죽음'을 곱씹어본다. 여전히 남들 눈엔 또래보다 까맣다지만, 내 눈엔 넘쳐나는 흰머리카락만 보이는 아빠의 정수리를 볼 때도 그렇다.


하지만 결국, 죽음은 영원한 간접경험이다. 직접경험이 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경험도 할 수 없고, 감각할 수 없고, 감정을 품거나 드러낼 수도 없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이 소멸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철학자 김진영은 사망 3일 전까지 계속 생의 이유를 붙잡고자 애썼다. <아침의 피아노>는 그가 헤아린 소멸의 카운트다운 기록이다.


몇 달 전 읽은 <나의 죽음은 나의 것>은 허무와 고통으로 더 비참해지기 전에 스스로 생을 끝낼 의지를 오롯이 담은 책이었다. "서서히 사그라지기보다는 한 번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커트 코베인의 말을 닮은. 반면 <아침의 피아노>는 점점 소멸해가는 자신을 알지만, 그럼에도 아직 나는 빛을 내고 있고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려움과 절망을 감추고 있지 않지만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절실히 바란 것은 사랑이었다. 생명의 감각이었다. 김진영은 그 모든 것들을 있는 힘껏 붙잡아보려고 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에 정답이 있을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저마다 유전자와 환경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삶의 무늬를 직조해가듯 소멸의 카운트다운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왕이면 "오늘 하루를 정중히 환대"하고,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을 다짐하며 끝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미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한 여정은 시작됐으니, 마지막에 감각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촉감, 환한 미소뿐이다. 그러니 살고 싶다. 건강하게, 아름답게.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날들을 생기로 채우고 싶다. "삶은 오래된 습관이어서 시간이 갑자기 달라졌다고 삶도 그렇게 단숨에 달라질 수는 없"으니까, 지금의 이 감각들을 잘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2쪽)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16쪽)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25쪽) 오늘은 주영이 화실 가는 날. 외출을 망설이는 등을 떠민다. 내 재촉을 못 이겨 거울 앞에 앉은 모습을 바라본다. 작고 동그란 몸. 늘 웃음을 담고 있다가 아무 때나 홍소를 터뜨려서 무거운 세상을 해맑게 깨트리는 웃음 항아리 같은 몸. 나는 이 잘 웃는 여자를 떠날 수 있을까.

29쪽)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41쪽)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말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생각.

46쪽)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53쪽) 사건은 그런 책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위기를 만난 마음 속에서 태어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놀랍고 귀하다. 정신과 몸이 함께 떨리는 울림. 이 울림은 모호하지 않다. 종소리처럼 번지고 스미지만 피아노 타음처럼 정확하고 자명하다. 더불어 글이 무엇인지도 비로소 알겠다. 그건 이 사건들의 정직한 기록이다. 글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알겠다. 그건 백지 위에 의미의 수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오선지 위에 마침표처럼 정확히 음표를 찍는 일이다. 마음의 사건-그건 문장과 악보의 만남이기도 하다.

55쪽) 공간들 사이에 문지방이 있듯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 시간의 분류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잉여의 시간이 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무런 목적도 계획된 쓰임도 없는 시간, 오로지 자체만을 위해서 남겨진 공백의 시간이 있다.

59쪽) <보리수>. 아침 차 안에서 슈베르트를 듣는다. 성문 앞 보리수를 찾아가듯 그날 이후 텅 빈 채 흘러간 한 달의 날들을 돌아본다. 뭔가 부글거리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살고 싶은 것이다. 일하고 싶은 것이다.

99쪽) 한동안 눈뜨면 하루가 아득했다. 텅 빈 시간의 안개가 눈 앞을 가리고 그 안개의 하루를 건너갈 일이 막막했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에 눈떠서 문득 중얼거린다. "안개를 통과하는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그건 일상이다.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일상이 길이다."

101쪽) 환자의 주체는 미적 주체다. 그는 자기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106쪽) 일찍 일어나 병원 갈 채비를 한다. 필요한 서류들을 가방에 넣다가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넣는다. 슈베르트 평전과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 왈칵 솟으려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그래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

107쪽) 낮 동안 너무 뜨거웠다. 저녁 무렵 어스름이 들고 바람이 분다. 갑자기 대책 없이 서글퍼진다. 이 여름이 밉다. 그래, 미워한다는 것. 그 또한 사랑이고 생이리라...

113쪽) 속이 울렁거리고 현미밥을 씹는 일도 힘겨워 물에 말아 겨우 그릇을 비웠다. 바람을 마시려고 서둘러 밤 산책을 나왔다. 자유가 그립다. 나의 자유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자유를 빼앗긴 걸까 아니면 포기한 걸까.

149쪽) 나의 기쁨들은 모두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나.

159쪽) 운명의 한 해가 간다. 해는 가도 운명은 남는다. 나도 남는다. 나와 운명 사이에서 해야 할 일들도 남는다.

166쪽)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가 힘들다. 그 말들이 나이건만, 그 말들이 없으면 나도 없건만. 나는 말해야 한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169쪽) 삶은 오래된 습관이어서 시간이 갑자기 달라졌다고 삶도 그렇게 단숨에 달라질 수는 없다. 새로운 나무를 심자면 오래된 습관의 나무를 캐어내고 토양을 비워야 하는데 질기고 깊은 과거의 뿌리를 캐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 그 추세로 보면 새로운 토양을 얻어 새로운 삶의 나무를 이식하기도 전에 경계의 시간이 마감될 가능성이 더 많다. 이 불확실성과의 대결이 프루스트의 말년이었다. 그가 침대 방에서 살아간 말년의 삶은 고적하고 조용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이었다. 침대 방에서 프루스트는 편안하게 누워 있지 않았다. 그가 종일 침대 방에서 무엇을 했는지 셀레스트조차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마지막 책은 100미터 달리기경주를 하는 육상선수의 필체와 문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178쪽) 나는 평생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았지 나 자신의 능력과 수고로 살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갚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가진 것들이 있다면 그건 모두가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이별의 행복, 그건 빈손의 행복이 아닌가.

192쪽) 초의 선사는 추사가 죽고 두 해 뒤에 망자의 묘 앞에서 말했다.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리는 법이구려."

206쪽) 프루스트 : 그러나 우리가 낙담해서 문 찾기를 그만두려 할 때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문은 열린다.

문은 언제 어디에서 열릴까.

242쪽)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251쪽) 몸무게를 달아본다. 자꾸 마른다. 자꾸 가벼워진다. 나중에 나는 날아오르게 될까.

261쪽) 아침. 다시 다가온 하루. 또 힘든 일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다시 도래한 하루는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268쪽)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꼭 간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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