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바울은 누구인가

신앙을 제국으로 만든 사도

by 신밧드

예수는 길 위에서 이야기했다.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었고, 병든 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치유했다.

그의 가르침은 책이 아니라 몸의 언어였고, 글이 아니라 삶의 흔적으로 남았다.
바람처럼 흩어졌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바울은 기록했다.
편지를 썼고, 조직을 세웠고, 교리를 만들었다.
고린도, 갈라디아, 로마로 보내진 그의 편지들은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예수가 남긴 건 ‘살아 있는 운동’이었고,
바울이 남긴 건 ‘문서와 제도’였다.


바울의 전략과 모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그 특권 덕분에 그는 국경을 넘었고,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인 헬라어로 복음을 전했다.

그 덕에 기독교는 지역의 운동을 넘어 제국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었다.
바울의 편지는 교회를 세우는 동시에, 복음을 세계로 퍼뜨린 전략적 도구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순의 인물이었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이 두 문장은 2천 년 동안 반복되었다.
흑인 노예제를 정당화하던 설교자들이 인용했고,

여성의 설교를 막던 교단이 그것을 근거로 삼았다.

자유의 복음을 외친 사도가 결국 복종의 신학을 남긴 셈이다.


바울과 로마 제국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는
황제의 나라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비전이었다.
그의 복음은 체제에 대한 저항이었고,
가난한 자와 약자들을 중심으로 세상을 다시 짜려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말했다.
“위에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

그 한 문장은 교회와 제국의 관계를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 나라의 급진적 복음은 이 구절을 지나며 길들여졌다.

예수의 운동은 체제 밖의 외침이었지만,
바울의 신학은 체제 안의 질서로 정착했다.


제국이 된 복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정복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교회의 제도와 의례, 복식과 서열은 로마의 행정 질서를 거의 그대로 복제했다.
감독과 주교는 총독의 자리를 닮았고, 성직의 위계는 군대의 계급을 닮았다.

십자가는 저항의 상징이었으나, 제국의 문장으로 새겨졌다.
피 흘린 나무가 권력의 금속 장식이 된 것이다.

결국 기독교는 로마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다.
예수의 복음은 자유의 언어였지만, 바울의 신학은 그 자유를 제도 속에 가두었다.


바울 신학의 빛과 그림자

물론 바울의 글은 여전히 빛난다.
로마서 8장,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구절은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러나 같은 입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나왔다.

탁월한 신학자의 문장과 억압의 씨앗이 한 편지 안에 공존했다.
그의 글은 하늘의 진리를 전하면서도, 땅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오늘의 교회에 남은 그림자

오늘날 교회는 여전히 바울의 그늘 아래 있다.
여성의 강단 진출을 막는 교단은
“바울의 가르침”을 근거로 삼는다.

동성애를 정죄하는 설교, 권력자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교리도
대부분 바울의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글은 시대를 초월했지만, 그 안의 질서는 여전히 현대의 교회를 묶고 있다.


예수와 바울 사이

그래서 묻게 된다.
기독교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예수인가, 바울인가?

예수는 사랑과 연민, 그리고 대안 공동체의 꿈을 남겼다.
바울은 편지를 남기고, 교리를 세우고, 교회를 조직했다.

오늘의 기독교는 예수보다
바울에게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결론 ― 신앙의 제도화

바울 없이는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로 인해 기독교는 더 이상 예수의 운동이 아니게 되었다.

그의 신학은 교리를 세웠고, 그 교리는 질서를 낳았다.
질서는 곧 위계를 만들고, 위계는 다시 폭력을 정당화했다.

예수는 길 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바울은 그 길을 제국의 지도 위에 그렸다.

그 순간,
복음은 제도가 되었고,
신앙은 문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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