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동성애는 죄인가, 본능인가

바울의 가시 & 욕망의 그림자

by 신밧드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서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했다.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부끄러운 욕심이다.”

그의 문장은 2천 년 동안 교회가 동성애를 단죄하는 근거가 되었다.
설교마다 “동성애는 죄다”가 반복되었고, 동성애자는 교회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다.

사랑의 이름으로 시작된 종교가 욕망을 부정하며 사람을 내쫓기 시작한 것이다.


육체의 가시

바울은 자기 몸에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시력 문제였다고도, 지병이었다고도, 혹은 신체적 장애였다고도 해석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그 가시가
그의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내면의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본다.

그는 로마서 1장에서 동성애를 유독 냉혹하게 정죄했다.
유독 강한 부정 뒤에는, 때로 강한 긍정이 숨어 있다.

혹시 바울은 자신 안의 그림자를 외부의 죄로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받아들일 수 없는 욕망을 ‘타인의 죄’로 돌려놓는 심리적 방어 —
투사(projection)의 한 형태 말이다.

그의 확신 어린 문장에는 불안이, 그의 단호한 정죄에는 열망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의 그림자

바울의 단죄는 훗날 신학의 교리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교리는 잔혹한 현실로 번역되었다.

중세 교회는 그의 문장을 근거로 수많은 동성애자를 재판에 세웠다.

불길 속에서 타 죽은 사람들,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
손가락질과 조롱 속에 숨어 살아야 했던 사람들.

바울의 언어는 신앙적 권위와 결합해 박해의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과 의학은 이미 선언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며, 치료 대상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모든 주요 의학 단체가 같은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도 교회는 여전히 2천 년 전의 문장을 붙든다.


정체성과 지향, 다른 이야기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동성애자가 성전환 수술을 하면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동성애(성적 지향)와 성별 정체성(트랜스젠더)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성애는 “누구에게 끌리는가”의 문제이고,
성별 정체성은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성전환 수술은 몸과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과정이지, 사랑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이 아니다.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도 이성애자일 수 있고, 동성애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양성애자일 수도 있다.

이 단순한 구분을 하지 못하면, 신앙은 논리를 잃고, 사랑은 방향을 잃는다.


오늘의 현실

21세기의 교회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뜨겁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때마다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세력은 교회다.

이유는 단 하나.
“동성애를 죄라 하지 못하게 한다.”

교회는 여전히 바울의 단죄를 붙든다.
그리고 그 단죄는 지금도 누군가의 삶을 찌른다.

상처받은 이들은 교회를 떠난다.
어떤 이는 자신을 부정하며 살고, 어떤 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생을 끊는다.

바울의 가시는 여전히 교회를 찌르고 있고, 그 가시에 찔린 이들은 지금도 피를 흘린다.


결론 ― 가시와 사랑 사이

바울의 문장은 신앙의 기둥이 되었지만, 그의 가시는 여전히 신앙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가 던진 말은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정죄했고,
그 정죄는 지금도 사랑의 이름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예수는 누구도 정죄하지 않았고, 죄인이라 불린 이들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예수의 사랑은 사람을 고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바울의 가시가 교회를 찌르고 있다면,
예수의 손은 그 상처를 덮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신앙이 해야 할 일은 이런 것이다.
정죄 대신 이해로,
혐오 대신 연민으로,
가시 대신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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