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말이 닿지 않는 자리

윤리를 넘어서는 신

by 신밧드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말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잘하면 복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의 구조 안에서 마음은 안정을 찾습니다. 십계명과 율법은 그 구조를 또렷하게 만들어 줍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서부터가 죄인지, 말은 경계를 그어 줍니다.
이 질서 안에서는 신앙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믿으면 복을 받고, 두려워하면 잃는다는 식의 설명이 가능합니다. 고난에도 이유가 있고, 재앙에도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세상을 정리해 줍니다.


그러나 욥의 이야기에 이르면 이 정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온전하고 정직하다”고 먼저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그가 이유 없이 무너집니다. 재산이 사라지고 자녀가 죽고 몸이 병들어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익숙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욥의 친구들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다만 그들은 질문을 오래 붙들지 않습니다. 곧 설명을 내놓습니다.
“네가 모르는 죄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니 이유가 반드시 있다.”
그들의 말은 상징계의 질서를 지키려는 시도였습니다. 이유가 없으면 세상은 너무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원인 없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붙들고 있던 윤리 구조는 흔들립니다.


하지만 욥기는 그 질서를 회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흔듭니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결국 설명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나타나시지만, 그분은 재앙의 원인을 해설해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바다와 별과 들짐승과 창조의 깊이를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회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 고난이 왔는지 묻는 인간에게 우주의 광대함을 말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독자들은 이 하나님을 낯설게 느낍니다. 심지어 도덕과 거리가 먼 존재처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윤리를 무시하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윤리 구조가 하나님을 다 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신을 도덕의 보증인으로 붙잡고 싶어 합니다.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벌을 받는다는 체계 속에 신을 두면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기는 그 보증서를 찢어 버립니다. 의로운 자가 이유 없이 고난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순간 신은 낯설어집니다.
낯선 이유는 그분이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윤리 틀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과율은 인간의 이해 방식입니다. 율법 역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고 해석됩니다. 그것이 신적 기원을 가질 수는 있지만, 표현되는 순간 인간의 상징체계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리는 그 체계를 통해 신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체계가 곧 신 자신은 아닙니다.


욥기의 하나님은 인간의 윤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윤리 안에 갇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상징계의 한계입니다. 말은 질서를 세우지만, 말은 세계 전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욥은 마지막에 침묵합니다.
그 침묵은 패배가 아닙니다.
설명이 닿지 않는 자리를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상징계는 우리를 보호합니다. 책임을 묻고, 죄를 규정하고, 삶을 구조화합니다. 그러나 그 질서를 절대화하는 순간, 우리는 신을 말의 틀 안에 가두게 됩니다. 욥기는 그 틀을 흔들며 묻습니다.
신은 우리가 만든 질서와 동일한 존재인가?
아니면 그 질서를 포함하면서도 초과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 앞에서 상징계는 멈춥니다. 말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윤리를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윤리가 신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 설명이 멈추는 자리에서 비로소 다른 차원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나는
이유를 붙들고 서 있었으나
이유는 나를 붙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말은 정확했으나
내 상처를 꿰매지는 못했습니다
하늘은 침묵했고
침묵은 설명보다 무거웠습니다


그때 나는
정답을 얻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도
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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