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시작 전에 친구를 사귈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미리 이스라엘에 가서 히브리어 수업도 듣고 친구들도 사귀고 싶었다. 그러나 히브리대학 쪽이 제시한 여름방학 기숙사 체류비와 히브리어 수강료는 거의 정규 수업 비용과 맞먹었고 나는 교환학생 갈 때 쓸 생활비 대부분을 부모님에게서 받기로 돼 있었다. 미리 모아둔 아르바이트비로 비자 발급비나 왕복 비행기값 등을 일부 충당하긴 했지만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이스라엘 체류 생활비를 댈 정돈 아니었다. 앞으로 6개월 간 부모님이 내야 할 돈을 생각하면 방학 수업까지 가겠다는 게 욕심으로 느껴졌다.
나와 달리 한국의 또 다른 교환학생 ㄱ은 미리 이스라엘로 날아가 여름 히브리어 수업을 들었다. 이스라엘에 도착해 그에게 연락하니 ㄱ이 나를 데리고 시내까지 가서 트램 타는 법과 물건 사는 법을 알려줬다. 그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 체류 기간 동안 쓸 이불과 각종 생필품을 샀다. ㄱ은 예루살렘 시내 전통시장과 아시안 음식 파는 매장도 알고 있었다. 먼저 온 ㄱ은 다른 동급생들과 이미 친해져 있었고 인근 국가로 여행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친구를 사귀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몇 안 되는 시기가 초중고대 신입생 시절이다. 앞으로 일상을 같이 할 사람을 찾기 위해 열심히 주변 사람을 탐색하고, 옆자리 친구에게 식사를 제안하고, 동아리를 들고,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친한 친구가 생기면 그들과 2학년, 3학년 같이 가기때문에 더는 인간관계 확장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된다.
머나먼 타국에왔으니그런 새내기로서의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 했다. 다만 그때보다 사정이 더 불리했다. 만나는 이들에게 촉수를 뻗으며 '너도 혼자니?나처럼 친구를 찾고 있니?' 에둘러 물어도 다들 시큰둥했던 것이다. 원인은 역시나 히브리어 수업이었다. 앞서 만난 '쉬몬'처럼 그들은 이미 두 달 전에 수업과 기숙사를 배정 받고 활발한 친구 탐색을 한 끝에 저마다 친구를 사귀어 둔 상태였던 것이다. 거기엔 동양인이 거의 없고 유럽인과 미국인이 태반이었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룸메이트들은 상냥했지만 나와 시간을 더 보낼 의사가 없어보였고, 식사를 같이 하자거나 산책을 하자는 제안도 없었다. 용기 낸 나의 제안엔 부드러운 거절이 돌아왔다.
혼자 지낸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외로웠고 조바심이 났다. 친구 없이 무리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 권유로 참석한 캠프에서 어울릴 사람을 끝까지 찾지 못했을 때, 매순간 외로웠고 혼자라는 사실이 창피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 일이 반복될까봐 무서웠다.
그 때 썼던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 때 나는 친구가 없어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래려고 캠퍼스를 하염없이 거닐다 해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캠퍼스 한쪽 구석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10월 12일이다. 월요일 수업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오후공강시간이 길었다. 2시 반에 수업이 끝나고 할 일이 없어서 밖에 나와서 리딩을 읽었다. 유대인 존과 이야기했고 어제 만났던 한나, 캐서린과도 인사를 했지만 왠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인사하고 짤막하게 얘기나눌 사람은 있는데 나를 친구라고 여겨주는 사람은 없다. 이러다가 아무하고도 친구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예루살렘에서 있을 음악회나 이벤트 하나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거기 비척비척 혼자 갔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지? 불안하고 우울하다."
이런 류의 청승을 매일 떨었다.
캠퍼스를 하릴없이 거닐던 시간들
의외의 인연을 만난 건 나 같은 학생들을 위한 또 다른 OT에서였다. 히브리대학은 정규 학기에 맞춰 기숙사 입사한 외국인 학생들을 모아 대규모 오리엔테이션을 기숙사 마당에서 열었고 나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거기서도 어차피 똑같을 거라 여기며 무리에 섞였다. 거기서 미국인 윌리엄과 일본계 미국인 반(Van), 호주인 엘리, 스위스인 세프를 만났다. 여기 나오는 이름은 본명을 일부 바꾼 것이다.
주최 측이 동그랗게 만들어 준 소그룹 안에서 우리는 서로 인사하고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이 워낙 많아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호주인 친구 엘리가 자기 기숙사동을 가리키며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방에서 얘기할래?"라고 했다. 대여섯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를 따라갔고 거기서 함께 차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특히 일본계 미국인 반과 이야기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헤어질 즈음엔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그러고도 우리가 곧바로 친해진 건 아니었다. 첫 만남이 있은 뒤 각자 수업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단체 연락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우리에겐 또 한 번의 사적인 모임이 필요했다. 즉, "여기 있는 동안 나랑 친구로 지낼래?"와 같은 신호를 또 한 번 주고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내야 할 차례였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혼자 돌아가던 날,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반에게 '왓츠앱' 메시지를 보냈다. 왓츠앱은 중동에서 카카오톡처럼 쓰이는 메신저다.
"헤이 뭐해, 수업 끝났어?"
몇분 만에 답이 왔다.
"헤이 안녕, 수업 마침 다 끝났어."
"아, 그럼 나도 마침 수업 끝나서 쉬려고 하는데 너네 방 가도 되나?"
최대한 가벼운 말투로 쓰자고, 문장을 썼다 지웠다 몇번을 고민하다 저렇게 보내고 폰 알림을 껐다. "미안해..."로 시작하는 문장이 혹시나 올까봐 무서웠다.
반은 20분 정도 답하지 않았다. 메시지를 읽었을 때 뜨는 더블체크 표시도 없었다. 이번에도 거절당했구나. 울고만 싶었다.
띵. 알림이 울렸다.
"미안, 샤워하느라 못 봤어. 당연히 되지! 좀 이따 우리 방으로 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리가 생긴다는 건 정말 안도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방에는 호주인 친구 엘리가 와 있었고 반이 차를 끓여 내 주었다. 우리는 처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각자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그것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