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지내며 특히 관심 있게 들었던 수업은 '이스라엘과 사회문제'수업이었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가 당면한 사회적과제들을 들여다 보고 각 사회구성원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배울수 있었다. 나의 첫 리포트 과제도 이 수업의 담당 교수님이 내 준 과제였다.
통상의 국가가 겪는 저출산, 양극화 등일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이스라엘만이 갖는 독특한 사회문제도 있었다.
수업 때 쓴 칠판. 지금 보니 뭔 내용인지 기억도 안 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에는 단순히 키파(유대인 모자)만 쓰고 여느 비유대인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는 세속적 유대인이 있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로 매일 성서를 읽고 술 달린 옷을 입으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울트라독스(Ultra Orthodox, Haredi)도 있다. 이들은 군 병역을 거부하고 영어나 수학 등 현대식 고등교육도 받지 않으며 자녀들을 모두 자체 교육기관에 보낸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울트라독스가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성서 공부에만 매진하며여성들 중 일부만이 최소한의 생계활동을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돈 일부를 국가가 보조하긴 하지만 가족 모두가 생활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이 가난하다.
심지어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생육하고 번성하라) 피임을 하지 않는 가정이 많다 보니 자녀도 적게는 네 명, 많게는 열 명씩 낳기도 한다. 이스라엘 당국이 매년 내는 통계를 보면 울트라독스의 인구는 2009년 10%에서 2020년 12.6%로 10년 새 빠르게 늘었으며 인구 증가율도 연간 4.2%에 달해 나머지 이스라엘 인구의 증가율(1.9%)을 크게 웃돈다.
정부 입장에선 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은 게 당연지사지만 이스라엘의 경우 마냥 그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데, 이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사상적 토대인 시오니즘(이스라엘의 과거 지리적 수도인 예루살렘, 즉 '시온'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유대인 민족주의 운동)을 주로 체화하고 키워나가는 주체가 울트라독스들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영토를 밀고 들어가 제 나라를 건설한 국가로선 종교적 지지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울트라독스의 자녀가 나이 들고 성인이 되어 '나는 세속으로 가겠다'며 마을을 떠나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자녀는 사실상 고등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상태로 사회로 나가 사실상 양질의 일자리를 갖는 게 불가능해진다. 울트라독스 공동체에 태어나면 다른 삶을 살아 볼 권리가 현저히 제한되는 것이어서 아동 인권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올해 7월에 한국판으로 번역된 <언오소독스:밖으로 나온 아이>도 뉴욕의 한 울트라독스 공동체에서 태어나 세속으로 나가길 선택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울트라독스 공동체의 아동 인권 문제는 이들이 존재하는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울트라독스 인구 비중이 특히 큰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사회문제는 적대적 관계에 놓인 아랍인과 유대인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어떻게 위계질서를 정립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경제적,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유대인이 아랍인을 지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를 수업 주제로 자주 다뤘다.
이를테면 이스라엘 사회는 아랍인에겐 군대 면제 권한을 주지만 대부분의 구직 기회는 군필자에게 준다. 아랍인이 이런 장벽을 뛰어넘고자 군대에 가려고 하면, 이스라엘의 군사 적군이 아랍인이기 때문에 동족상잔을 스스로 택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 비난을 모두 감수하고 총을 잡더라도 이들은 민족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아랍인 공동체에서 사실상 제명되고 만다.
또 아랍인의 안식일은 금요일이고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유대인 직장 상당수가 금요일을 근무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신앙을 가진 아랍인에겐 구직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셈이다.
아랍스 인 이스라엘 저 책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인의 삶을 잘 설명해 주었다
이-팔전쟁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워야 하는가 하는 논란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유대인 주도 하에 세워질 땐 비판이 유대인을 향하기 쉬웠으나 그로부터 약 70여년 간 갈등이 이어지면서 아랍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과 연대하는 국가가 나타났고 이스라엘 거주 유대인들도 세대를 거듭하며 많아지자 '내 땅'이라는 인식이 짙어졌다. 수많은 아랍인들 역시 대규모 시위를 하고 버스 테러 등을 하며 저항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자 지금은 내면 깊숙이 좌절한 '외로운 늑대'의 저항으로 바뀌어 길 가는 유대인을 되는대로 살해하는 지경까지 가고 말았다.내가 이스라엘에 체류했던 2015년에도 유대인 개인을 공격하는 테러가 빈발했다.
어느 사회나 문제 없는 곳은 없지만 적대적 관계의 두 민족이 공존하는 국가의 사회 문제는 그 고민의 무게가 한층 더 무겁다. 앞으로 나아갈 미래보다는 미처 풀지 못한 과거를 반복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연대감보단 증오감을 불쏘시개 삼아 정치적으로 결집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분단국가인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처음엔 다른나라 일처럼 여겼던 나도 갈등의 양상이 조국의 그것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질 땐 씁쓸해졌다.
유대교와 여성 인권 수업의 경우 가부장제의 여러 면을 답습한 유대교 전통 가운데서 여성인권을 보장하기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수업을 들었다. 특히 유대교가 구약성서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서 해설서 '미쉬나'나 '미드라쉬', '토세프타' 등의 원문을 직접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번역과정에서 왜곡되는 자그마한 뉘앙스의 차이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당시에 썼던 교재
이 수업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유대교의 하나님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면 그는 양성자(androgynous)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반적으로 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를 아버지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 남자로 지칭된다. 그러나 이 수업을 가르친 교수는 그 아버지 호칭은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고려한 것이며 이브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된 것을 보건대 하나님에게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둘 다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주장이 옳냐 그르냐와 별개로 '하나님은 여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굳건히 붙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게이이자 유대교의 종교리더자인 랍비가 된 한 남성의 고백을 읽으며 성 정체성이 개인의 신앙과 헌신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고 그가 보수적인 유대교 안에서 신앙을 붙들기 위해 기울인 노력도 가슴에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