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4_갈릴리 호수에서 불멍을

말 많은 호스트 덕에 호강했네

by 소다

아브라함은 우릴 다시 숙소로 데려다줘야 했으므로 계속 우리 옆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를 식당에 함께 데려갔고 그는 음료를, 우리는 식사를 시켰다.


갈릴리의 식당들 역시 이스라엘의 비싼 물가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생선구이 정식이 3, 4만원씩 했다. 몇 군데를 더 둘러보고도 내가 결정을 못 내리자 친구 반이 처음으로 한 마디 했다. "아니, 우리 그래도 갈릴리까지 왔잖아."

그 말은 갈릴리까지 왔는데 그깟 외식비 한 번쯤 좀 내서 먹으면 안 되느냐, 그런 뜻이었다.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부담이 되니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던 건데 그런 말을 듣자 자존심이 팍 상했다. 돈 때문에 고민하던 마음을 그대로 들킨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그냥 먹자 먹어! 우리는 바로 앞에 있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친구는 고기를, 나는 생선구이를 시키는데 아브라함이 갑자기 자기가 베지테리언이 된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우리 식탁에 올라가는 닭이나 양, 돼지가 얼마나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는지 알고 있느냐, 자기는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육식을 끊었다 그런 얘기였다. 우리 이미 고기 시켰는데? 좀 당황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그가 워낙 얘기를 열심히 해 귀 기울여 들었다.


지금은 한국도 채식 이야기를 종종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일이 많지 않았으므로 그의 이야기는 상당히 배울 점이 많았다.

다만 우리는 단 한 번의 대화로 채식주의자가 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곤 메뉴로 준비된 양고기를 썰어 먹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얘길 듣고 주문을 철회하길 바랐는지 한동안 기다리다가 "뭐, 너희들 선택이지"라고 말하곤 음료를 한 입 들이켰다.

갈릴리에서 먹은 베드로 물고기 정식

아브라함은 말이 많은 편이었다. 나와 반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른이 넘은 그는 갈릴리 토박이이며 몇 년 전부터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성격이 순한 대형견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부모님이 가진 오래된 집인데 그가 그냥 놀리기 아까워 에어비앤비에 올렸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수년 전 군대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스라엘은 만 18세 이상인 남녀를 의무 징집한다. 그는 좀 산만하고 눈물이 많은 성격인데 군대의 단체생활이 그것을 받아들여주지 못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하루는 부대 밖을 뛰쳐나가려다 제지당했고 그 다음날은 장롱 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선임들의 괴롭힘과 욕설이 이어졌고 전역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듣던 우리도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쓰였다.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뒤에도 악몽을 많이 꾼다고, 다시는 그런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역을 한 지 수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를 설명하는 그의 얼굴은 괴로워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 줘서 그런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아브라함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는 금방 차를 몰아 우리를 숙소로 내려주면서 원한다면 갈릴리 호수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친구는 다음주에 있을 수업 과제를 해야 한다며 숙소로 올라갔고 나는 아브라함을 따라 다시 차에 올랐다. 처음 만난 사람을 따라가는 게 좀 걱정되기도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무엇보다 밤의 갈릴리 호수가 보고 싶었다. 아브라함의 강아지도 옆에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아브라함을 따라 간 갈릴리 호수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이 철썩거리는 소리는 잘 들렸다. 아브라함은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호숫가에 불을 피웠다. 빨갛게 올라오는 불이 예뻤다. 아브라함은 자주 이런 일을 하는 듯 승용차로 가 종이컵과 찻잎도 꺼내 왔다. 양철통에 물을 부어 끓인 뒤 차를 우려 건네주었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그새 달달한 중동식 차에 길들여진 내가 혹시 설탕이 있냐고 물으니 `그럼' 하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설탕도 건네주었다.

어두운 밤의 갈릴리 호수
불 피워놓고 차 마시기
불멍

아브라함에게 갈릴리에서 오래 산 생활은 어땠는지, 지금 믿는 유대교는 네게 어떤 의미인지 등을 물어봤던 것 같다. 이스라엘에 와서 좋았던 점은 한국과 달리 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서로 나누고 물어보는 게 한결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신앙과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들은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기뻐하며 이런저런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아브라함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기는 유대교의 신을 믿는 것 같으면서도 기독교의 신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듣기도 하고 나의 신앙관과 철학관은 이러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호수는 잔잔하고 모닥불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리는데 차를 마시고 있자니 퍽 평화로웠다. 이따금씩 아브라함의 강아지가 내 옆에 와서 자꾸 놀자고 졸랐는데 그 모습도 귀여워 보였다. 처음엔 오지랖이 많은 집주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덕분에 한국에서도 못 해 본 `불멍'을 갈릴리에서 처음 해 볼 수 있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자 우리는 모닥불을 정리하고 다시 차에 올라 숙소로 돌아갔다. 그는 차를 세우고 숙소로 같이 들어오더니 옥상에 올라가 차를 또 끓였다. 숙소에 있던 친구 반이 바깥을 못 봐 아쉬울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내가 봤을 땐 아브라함이 그냥 심심해서 더 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반이 옥상으로 올라와 의자에 앉았고 우리는 차를 마시며 밤하늘을 구경했다. 그는 거기서 30분 가량 차를 더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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