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다른 친구들은 조식을 먹고 학교로 돌아갔고 나를 포함한 너덧 명은 호텔에 남았다. 남은 이들도 돌아갈지 고민했지만 윌리엄이 하루만 더 놀자고 강력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눌러앉게 됐다.
베들레헴의 성수기는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뿐이었던 모양이다. 정작 당일인 25일엔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었고 관광객도 전날만큼 많지 않았다. 우리는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에서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유대교 회당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의외로 기억 나는 것은 그날 저녁에 친구들과 함께 한 게임이다. 이대로 저녁을 보내기 아쉬워 뭘 하고 놀지 고민하던 차에 내가 쪽지게임을 제안했다. 자그마한 쪽지를 여러 개 찢어 질문을 적으면 그 쪽지를 뽑은 사람이 답하는 게임인데, 진실게임과 비슷하지만 그보단 정제된 질문 안에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쪽지게임
친구들은 이런 것을 처음 해 본다며 신기해 하더니 이내 진지하게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나의 이상형은?'이라고 적힌 질문에 "난 루터교여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외모였음 해. 키는 나보다 작았으면 하고..."라며 오분 넘게 말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다리를 얼마나 찢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호기롭게 다리를 양쪽으로 펴다가 악 소리를 내는 친구도 있었다. 과연 서른이 넘은 사람들이 맞나 싶게 모두가 즐거워했다.
얘기를 하다 보면 꼬리질문도 이어졌다. 화제의 루터교 친구는 갑자기 나머지 친구들이 벌이는 이상형 월드컵에 휘말렸다. 그는 "루터교인데 네 취향이 아니다 vs 루터교가 아닌데 네 취향이다. 어느 쪽을 택할래?"라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배우자가 루터교가 아니면 난 내 눈을 뽑겠어"라고 말해 모두를 엄숙하게 만들었다. 그의 두 눈을 지켜주기 위해 월드컵은 중단했다.
이튿날 서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 채비를 했다. 히브리대기숙사가 있는 서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사이에는 거대한 분리장벽이 있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려면 장벽을 통과해야 했다. 성탄절 동안엔 베들레헴 봉쇄 조치가 일부 해제되지만 우리가 출발한 날은 26일 평일이었기 때문에 모두 원상복구돼 있었다.
우리는 검문소(체크포인트)를 찾기 위해 분리장벽을 따라 걸었다. 분리장벽은 지난 2002년 이스라엘 정부가 서안지구에 사는 유대인을 테러에서 보호한다며 약 20년에 걸쳐 세운 것인데, 팔레스타인 주민을 일터와 공공 서비스로부터 가로막는 인종차별적 조처라는 비판을 받았다.
베들레헴에 있는 분리장벽
분리장벽 위엔 이를 철거하라고 촉구하는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 장벽 때문에 삶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인의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전 베들레헴의 아델입니다. 22살 저의 소중한 친구는 심장이 좋지 않아 심장박동기를 장착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서예루살렘)에 있는 병원에 자주 가야 했어요. 어느 날 제 친구가 크게 아프자 그의 부모님이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출입증이 없어서 안 된다며 못 들어가게 했어요. 제 친구는 그날 숨을 거두었습니다."
분리장벽이 생긴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은 특별허가증이 있어야만 예루살렘을 출입할 수 있는데, 이를 소지하지 않으면 아델의 친구처럼 갑자기 도시에 가야 하는 경우도 출입을 제지당하는 경우가 있다.
아델의 사연이 적힌 장벽
장벽에 붙은 한명 한명의 사연을 읽다 보니 어느 새 검문소에 도착했다. 학교 앞에서 간소하게 진행하던 검문과 달리 여기선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도는 통로를 5분 넘게 걸어가야 검문소가 나왔고 가방과 여권을 검색대에 올리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모두가 검문소를 통과하니 20여분이 지나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한 이가 우리 뿐이었는데도 그랬다. 아침시간대에 출근하는 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검문소를 나온 윌리엄은 "이게 바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처한 위치"라고 평가했다.
체크포인트에서 나오자 택시가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택시기사들은 한 줌의 승객을 잡기 위해 거친 몸싸움을 벌였고 우리는 겁먹은 눈으로 기다리고만 있었다. 싸움에서 이긴 거구의 택시기사가 우리더러 타라는 신호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탔다
택시는 길을 여러 번 돌아가야 했는데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시위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시위 도중 경찰과 대치하면서 짱돌을 던졌고 몇 개의 짱돌이 우리 택시 위로 떨어졌다. 기사는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핸들을 돌리더니 '길을 바꿔 가겠다'고 윌리엄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