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23_아빠 잃어버린 날

고생길 준비 됐니?

by 소다
비 오는 이스라엘 거리

아버지와 한 달 간 이스라엘 여행을 하게 됐고, 첫날 아버지를 잃어버릴 뻔했다.


연유는 이렇다. 내가 이스라엘에 체류할 당시 부모님이 터키 여행 패키지상품을 끊었다. 마침 나도 시험이 다 끝나 학기가 마무리되던 참이라 터키로 넘어가서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터키여행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을 잠시 쉬고 계셨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이스라엘로 날아와 한 달 간 여행할 계획이었다. 나랑 아버지는 원래도 매우 친한 사이고 평소에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으므로 이제부턴 진짜 호칭인 아빠라고 하겠다.


패키지 상품에 짜인 대로 터키 여행을 함께 다닌 뒤 나와 아빠는 이스라엘에서 다시 재회하기로 했다. 끊어놓은 비행기표가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둘 다 도착지가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이니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을 빠져나와 오후5시께 이스라엘에 도착했고 아빠는 오후6시께 같은 여정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대강 공항에서 짐을 부리고 휴대폰을 충전한 뒤 아빠를 입구에서 기다렸다.


아타튀르크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착륙하고 한 무리의 승객이 빠져나왔지만 거기엔 아빠가 없었다. 모든 승객이 다 빠져나오고도 아빠가 여전히 나오지 않아 초조해질 즈음 다음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2층 안내데스크로 올라가 물었다. "터키에서 온 비행기 맞아요? 저희 아빠가 안 왔어요."

데스크 직원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아빠요?"했다. 내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자기가 한 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너무 불안한 나머지 이런 사진이나 찍으면서 버텼다

그날 아빠는 새벽3시가 다 되도록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안내데스크는 아무것도 전달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공항 바닥에 앉아 울었다. 시간이 될 때마다 휴대폰을 충전해 아빠에게 전화를 수십 통씩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어렵게 전화가 연결된 터키 여행 가이드는 "공항으로 가셨다"고만 말했다. 그렇다면 아빠는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 것인가?


새벽이 되자 국제 실종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서가 있는 이스라엘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 합승택시(셰루트)를 타려는데 거기에 익숙한 가방이 보였다. 우리가 터키에서 쓰던 가방이었다. 그 가방을 멘 나이 든 동양인 남자는 과속방지턱 위에 몸을 기대고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어이구"하고 내게 손을 뻗었고 그때에야 아빠라는 걸 알았다.


"어디 갔었어, 뭐 했어!"

나는 거의 울고 있었다.

"어, 공항에 잘못 갔어.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고 문자 보냈는데 답장 안하더라구?"

아빠는 태연했다.


경위는 이러했다. 터키엔 공항이 두 개다. 이스탄불에 있는 아타튀르크공항과 사비하 공항인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아빠는 사비하 공항에서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으로 가는 걸로 비행기표를 끊었지만 한국인 일행이 모두 아타튀르크공항으로 가니 별 생각 없이 함께 실려갔다고 한다. 탑승 수속을 하려고 보니 그제야 그 공항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 비행기 출발 시각은 1시간 30분 뒤였고 사비하 공항은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차로 최소 1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아빠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비행기표를 바꾸었는데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출발하는 다음 비행기는 새벽1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하는 비행기였던 것이다.


아빠가 보낸 메시지는 나의 한국 전화번호로 가 있었다. 이스라엘에 체류할 때 이스라엘 유심을 쓰면서 번호도 바꾸었는데 아빠는 한국 번호로 보낸 것이었다. 유심을 다시 바꾸니 문자가 띠로롱 도착했다. "딸, 아빠 공항 잘못 와서 비행기 바꿨어. 걱정 마."

평소에 카톡으로 소통하다 보니 그 순간에 유심 바꿀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의 재회를 하고 합승택시에 올라탔다. 원래는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호텔에 가려 했는데 이미 아빠가 못 오게 되고부터 방을 취소했기 때문에 갈 곳이 없었다. 에어비앤비를 검색해 당장 투숙이 가능한 시내 숙소를 찾았고 새벽 5시께 자그마한 방에 짐을 풀었다. 방 열쇠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창문 위에 숨겨져 있던 걸 찾아내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그 방은 난방이 잘 안 되어 상당히 추웠는데 그 때는 아빠를 찾았다는 생각에 그저 안도감이 들었다. 방에 있는 난로를 켜서 따뜻한 빛을 쪼이고 일단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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