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25_터널 물이 차가워요

부르르르

by 소다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 아빠와 처음으로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다음날 내가 다니던 한인교회에 작별 인사를 드릴 겸 여리고로 내려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보낸 아빠의 국제운전면허증이 아직 이스라엘에 도착하지 않아 이동에 제약이 많았다. 마침 교회에서 차량을 대절해 주기로 해 겸사겸사 차량과 숙소를 함께 예약했다. 싸지는 않았지만, 인건비가 비싼 이스라엘에서 택시를 타는 것보단 훨씬 저렴한 값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물가에 익숙해진 나와 달리 아직 한국 물가에 머물러 있던 아빠는 교통비와 숙소비에 `헉' 하신 모양이다. 내가 올리브산 아래를 걸어 내려오며 다음날 계획을 설명하는데 아빠가 "너무 비싸다. 여긴 왜 이렇게 다 비싸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김이 팍 상하고 말았다. 원래도 근검절약하는 아빠 성격을 잘 알아서 호텔보단 에어비앤비, 바깥 음식보다는 만들어먹는 음식으로 지내 왔다. 그런데 비싸다니, 앞으로 여행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스라엘로 넘어오실 당시 거의 정년 퇴직 연차였던 아빠는 부족하지 않은 월급을 받고 계셨다. 그럼에도 몸에 밴 절약 습관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쓰질 않으시고 식사나 숙소 하나하나 값을 따지시니 속이 상했다. 내가 모아놓은 돈이 많았다면 `아빠, 까짓 꺼 즐겨!'라고 했겠지만 나 역시도 부모님 돈 받는 처지여서 마냥 그럴 수 없었다.


"아빠, 이 정도면 이스라엘에서 엄청나게 싸게 다니는 건데 쓰기만 하면 걱정을 해? 여기까지 왔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매번 비싸다고 걱정하면 어떡해?"

"아빠가 언제 걱정했어.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방금 그랬잖아. 비싸다고 한 게 걱정한 거지 뭐야."

우리는 옥신각신했다. 산에서 거의 다 내려왔을 땐 각자 입을 꾹 다물고 걷기만 했다. 한참 걷는데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퇴직하기 전까지 이렇게 개인 여행 다녀본 적이 없어서 돈 쓰는 데에 익숙하지가 않아. 처음부터 이렇게 큰 돈이 들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못 하고 왔어. 그리고 아빠가 평생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일을 쉬니까 돈을 안 벌잖아. 그래서 엄마 부담될까 봐 신경이 쓰여서 돈을 그렇게 펑펑 쓰자고 할 수가 없었어."


이건 반칙이다. 아빠가 나를 미안하게 만드려는 술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느냔 말이다. 평생 자유 배낭여행 한 번 하신 일이 없는 아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나아쁜 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아빠는 패키지 가족여행을 제외하면 혼자 해외 여행을 가신 일이 한 번도 없다. 해외 출장은 자주 다니셨지만 하루이틀 정해진 일정만 소화하고 오는데다 출장 경비도 회사에서 대니 자비로 가는 해외 여행에 이런 저런 돈이 든다는 건 모르실 만 했다. 젊어서 아르바이트비 벌어 이리저리 놀러다닌 나하고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쿨하게 그래, 그럼 딸이 이해해야겠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쿨찌럭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예루살렘 시내의 만국교회라는 곳 앞 벤치에 앉아 아빠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아빠는 아빠도 조심할게, 라고 답했다. 상황을 모르는 웬 택시기사가 눈치 없이 우리에게 다가와 "하이~"하고 호객행위 하다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곤 머쓱해 하며 돌아갔다.

우리를 화해하게 해 준 다음 이벤트는 어이없게도 터널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이었다. 이미 터널에 들어가기로 전날 계획을 다 짜고 반바지까지 챙겨 나온 차였다. 늦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터널에 들어가는 게그리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나중에 다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단, 얼음장 같이 찬 물이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건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그 물을 헤치고 20분 가량 걸어야 한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이렇게 생겼다 사진 출처는 키피디아 갤러리(credit: Wikipedia gallery)

예루살렘 시내엔 `히스기야 터널'이라는 곳이 있다. 기원전 700년대 유다(이스라엘의 남쪽 왕국) 왕인 히스기야가 성 밖에 있던 물을 성 안으로 끌어와 만든 수로 시스템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깨끗한 물을 책임져 왔다. 선대 왕인 다윗도 이 물을 백성들에게 공급했다지만 성 밖에 있는 샘물을 안으로 끌어올 생각은 못 했는데, 히스기야는 당대 최대 강국인 앗시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어선지 성이 고립됐을 때 제일 필요한 자원인 물을 성 안으로 들여오는 지혜가 있었다. 실제로 히스기야는 앗수르와 대치할 당시 수로 덕에 많은 백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도 이 지역을 발굴할 때 성서에 의지해서 발굴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 다윗 왕이 여부스족속을 치러 들어갈 때 'shaft'(통로/갱도)를 이용했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well(우물)도 아니고 spring(샘물)도 아닌 shaft(갱도)라면 분명히 파이프로 된 전문 수로 시스템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고고학자들이 이 근방을 파기 시작했는데 예상대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로가 발견되었다.


물에 다리를 넣는 순간 얼음장 같은 서늘함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터널 안은 어두웠고 물은 굉장히 차가웠다. 몸에 열이 많은 아빠는 물을 슥슥 헤치며 앞서 나갔고 나는 아빠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앞이 잘 안 보여 터널 천장에 부딪힐까봐 무서웠다. 다윗의 성 앞에 싸구려 랜턴을 파는 자판기가 있었던 건 다 이걸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나는 랜턴으로 사방을 비추며 물을 천천히 갈랐다. 저만치 앞서가던 사람이 뒤에 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어~이"하고 소리를 내 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너무 뒤쳐지는 것 같으면 기다려주기도 했다.

휴대폰 떨어뜨릴까봐 아빠 뒤꽁무니만 좇았다

터널 출구가 가까워지자 안이 조금씩 밝아졌다. 서로를 묵묵히 챙겨주던 관광객들은 밖을 발견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일행에게 쏙 돌아갔다. 나도 흠뻑 젖은 발을 구르며 물기를 털어내고 아빠 쪽으로 풀쩍 뛰어갔다. "안에 있을 땐 춥고 그랬는데 나오니까 또 재밌다. 그치?" 아빠는 `엉'하고 대답하고는 다리의 물기를 탈탈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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