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서 '실제로 가 보면 별로인 곳 Top 10'에 사해가 포함된다는 게시글을 봤다. 고개를 갸웃했다. 왜지? 여행 중 손에 꼽게 즐거웠는데.
교과서에서나 보던 사해에 가기로 했다.몸이 저절로 둥둥 뜨고 신문까지 읽을 수 있다던 그 곳. 아빠도 나도 수영을 할 수 있어서 물에 뜬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물이 알아서 띄워주는 느낌은 또 다를 것 같았다. 게다가 사해는 우리가 베이스캠프로 삼은 예루살렘과도 가까웠다.
대중교통이 끊기는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두 가지 볼거리를 한꺼번에 다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486번 버스를 잡아 타고 사해 바로 옆에 있는 엔게디 국립공원이라는 산에 올랐다. 바위산인데다 자갈길이 많아 걷기가 불편했지만 곳곳에 있는 폭포를 구경하고 산 정상까지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깎아지른 돌산의 절벽을 타고 오를 땐 겁도 났지만 정상에서 바라 본 사해가 푸르게 빛나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다. 우리는 염소똥 가득한 동굴에서 사진도 찍고 이래저래 포즈도 잡아보며 즐겁게 놀았다. 점심을 핫도그와 사이다로 먹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멀리 보이는 사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리는 엔게디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공짜 사해 해변을 찾아보고 왔는데 왠걸, 지도상 거리와 달리 실제로 거기까지 가는 덴 차로 삼십 분이 걸린다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아빠의 국제운전면허증이 아직 이스라엘에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렌터카를 빌릴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국제운전면허증을 챙기시기를 추천드린다. 도보 여행객이 절대 편하게 다닐 수 없는 나라다.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슬슬 부담이 됐다. 사해를 목적으로 나왔는데 바위산과 염소똥만 보고 집 가는 거 아닌가 스멀스멀 불안해질 즈음 왠 아랍 택시가 와서 흥정을 했다. 덩치가 아주 커다란 남자는 우리를 씩 보고 웃으며 "데드씨(사해)? 컴 온, 컴 온" 했다. 그의 과한 친절이 약간 부담스럽고 무서웠지만 하염없이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멀지 않은 길이니 일단 택시에 올랐다.
그와의 만남은 유쾌하지 않았다. 20여분 가량 운전하는 동안 아랍 택시기사는 나에게 볼뽀뽀를 해 달라는 둥 같이 놀자는 둥 불편한 언행을 일삼았다. 자기 체구를 믿는 것인지 아빠가 뒤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빠가 "헤이, 헤이, 노(No). 아이 엠 헐 빠더(내가 얘 아빠야)!"라며 항의했지만 그 기사는 어깨를 으쓱할 뿐 사과도 없이 능글능글 웃어댔다.
무엇보다 그는 공짜해변이 아니라 돈을 내야 하는 사유지 해변에다 우리를 떨궜다. 내가 항의하며 다른 곳으로 갔어야 한다고 항의하자 그 사람도 여기가 맞다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주기로 했던 30셰켈 대신 20셰켈만 주고는 `애초에 말했던 곳과 다른 곳에 도착했으니 더는 못 준다'고 말하고 내렸다. 기사는 차 안이 다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아랍어로 욕을 하더니 차를 돌려 나갔다. 아랍어를 못 알아듣는 나도 그가 욕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다가 얻어맞는 거 아냐 조마조마했는데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기사가 내려준 곳은 해변을 쓰는 비용 뿐만 아니라 수영장, 스파 사용료까지 전부 내고 이용해야 하는 곳이었다. 당시 가격은 1인당 70셰켈(한화 2만 2천원)을 불렀다. 이제 와 다른 곳에 갈 수도 없고 샤워를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에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가게는 쪼잔하게 락커키랑 수건 비용도 따로 받았다. 이쯤 되니 그냥 돈 다 가져가라 하는 마음이 들어 돈을 내고 락커에 짐을 풀었다.
다행히 입장료를 그냥 떼어먹기만 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시설이 깨끗하고 정리가 잘 돼 있었다. 무엇보다 사해로 가는 길까지 주기적으로 코끼리열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사해 물이 갈수록 줄어들어 해안선이 많이 내려갔고 이제는 코끼리차를 타야만 해안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코끼리열차 뒷모습. Tripadvisor 홈페이지 출처
밖을 내다보니 해안가에서 빛이 비쳤다. 멋지다는 뜻이 아니라 햇빛을 반사하는 소금결정이 그렇게 많다는 뜻이다. 아빠는 오늘 아침 슬리퍼를 챙기셔야 한다는 나의 말을 깜빡하고 운동화만 신고 온 상황이었다. 오마이갓. 나는 아빠를 돌아보며 슬리퍼를 챙겨왔어야지 어떡하냐, 이제 와서 어디서 그걸 사겠느냐며 구시렁거렸다. 코끼리열차 맞은편에 앉은 백인 노부부가 우릴 보고 웃으며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었다. "아빠가 제 말을 안 들어요!" 내가 말하니 할아버지가 낄낄거리면서 "나이가 들수록 남의 말을 안 듣지"라고 말했다.
내려서 조심스레 백사장을 밟았는데 역시나 무지하게 아팠다. 소금결정이 바닥에 잔뜩 붙어있어서 상당히 날카로웠고 잘못 딛으면 상처가 날 것 같았다. 결국 내가 가져 온 고무 슬리퍼 한 켤레로 아빠가 들어가서 조금 놀아보고 다시 나와서 내게 슬리퍼를 주고 그런 상황이 반복됐다.특히 소금결정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바닷속은 발을 딛으면 정말 무지하게 아프기 때문에 무조건 신발을 신어야 했다.
물 안은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Dead sea.com youtube 출처
사해는 수영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발바닥으로 지면을 탁 치고 떠오르면 그대로 뜬다. 온도도 적당히 시원해서 해달처럼 떠 다닐 수 있다. 다만 얼굴에 바닷물이 잘못 묻으면 상당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평소 물에서 노는 것처럼 잠수를 한다거나 얼굴을 절반 담그는 배영 같은 건 엄두도 낼 수 없다. 대신 얼굴을 바깥에 내밀고만 있어도 몸이 둥둥 뜨니 그 상태로 떠다니며 놀았다.나중엔 아빠가 백사장에 굴러다니는 고무패드를 발견해 발치에 깔고 움직여가며 같이 놀았다. 보기엔 불쌍해 보였겠지만 실제론 꽤 재밌었다.
동동 떠 있는 발
한참 놀다 보니 얼굴이 슬슬 따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얼굴이 바닷물에 닿지 않게 조심하긴 했지만 이리저리 놀다 보니 조금씩 튄 모양이다. 우리가 사해에 도착한 시각이 거의 오후 두 시로 해가 중천일 때여서 햇빛도 따가웠다. 아빠는 이미 한 번 얼굴에 물이 닿아서 황급히 씻으러 나간 뒤였다. 사해 리조트 주인장은 불의의 실수로 얼굴에 물이 닿은 이들을 위해 물 호스를 백사장 곳곳에 마련해 두었다. 우리는 때마침 들어온 코끼리열차를 타고 해안을 빠져나왔다.
소금물 둥둥 이벤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파시설 앞 시원한 풀장과 미지근한 온수풀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낸 뒤 몸이 차가워질 즈음 유황성분이 들어간 사해 온탕을 썼는데, 역시 사해 물을 끌고 들어온 거라 여기서도 몸이 둥둥 떴다. 유황 때문에 좀 구린내가 났지만 뜨뜻하고 기분 좋게 떠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소금이 너무 많은 물은 오래 놀기 어렵다. 아빠가 먼저 둥둥 떠다니다가 실수로 뒤집어지는 바람에 으아아악하면서 얼굴 씻으러 뛰어갔고 나도 남아서 더 놀려다가 얼굴이 화끈화끈 뜨거워지고 따가워져서 샤워실로 직행했다. 샤워실에 들어가면서 트리트먼트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얼굴이 너무 따가워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냥 거기 있는 욕탕 샴푸로 빡빡 씻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 다시 버스를 타러 나갔다. 486 버스가 올 거라고 이스라엘 현지 교통 앱 `무빗'이 정류장을 안내해 줬는데 업데이트가 안 돼 있었는지 거기가 정류장이 아니었다. 버스가 우리를 지나쳐서 저 앞에서 서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어어 하는데 아빠가 바람처럼 뛰어서 버스를 잡았다. 빠른 달리기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연세에 아빠를 저렇게 뛰게 만들다니 운전면허 안 딴 내 잘못이네 생각이 들어 죄송했다. 어쨌든 버스는 탈 수 있었고 차를 타자마자 몸이 노곤해져서 푹 잤다. 어차피 종점인 예루살렘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해 1시간 반 동안 입 벌리고 잠만 잤다. 예루살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짐을 찾고 트램을 타고 에어비엔비로 되돌아왔다.
저녁으로는 샥슈카(에그인헬, 계란과 토마토를 섞어 만든 요리)를 해 먹었고 아빠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커피를 타서 함께 마신 뒤 잠에 들었다. 그날 자기 전에 쓴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