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8시 깜깜한 밤 우리가 내린 곳은 드넓은벌판이었다. 이런 곳에 정류장이 있을 수가 있나. 역시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이 없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 이스라엘 남쪽 유적지 마사다에 갈 것을 대비해 우리는 마사다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네베 조하르에 숙소를 잡았다. 다음날 버스로 쉽게 이동하기 위해서다. 얼른 숙소에 도착해서 푹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히브리어를 못 읽는 대신 위치서비스를 켜고 지도를 수시로 확인하다가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이 나오자 부저를 뚜-하고 눌렀다.
내릴 곳을 잘못 안 건 아니었다. 그저 깜깜한 밤이었고 허허벌판에 정류장이 있었을 뿐이다. 구글맵으로 봤을 땐 이 정돈 아니었는데 당황스러웠다. 왼쪽은 가로등 하나 없는 새까만 어둠이었고(나중에 알고 보니 그쪽은 사해였다) 오른쪽은 가로등이 몇 개 켜진 고속도로만 있었다.
지도를 다시 보니 숙소가 있는 네베 조하르는 버스정류장에서 20분 가까이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고 우리 등에는 10키로짜리 배낭 두 개가 매달려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숙소로 저만큼 걸어야 했고 중간중간 길도 잃었다
지도 위 화살표가 네베 조하르로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거기 가는 길이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지도 화살표만 따라간 끝에 마을처럼 보이는 곳이 나왔지만 마을과 도로 사이에 높다란 철창을 만들어 놔서 넘어갈 수도 없었다. 그저 마을과 만나는 지점이 나타날 때까지 그저 철창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이런 데를 왔지. 예상 못했는데."
"아이고 힘들다. 언제까지 가야 되나."
나도 아빠도 이런저런 불평을 하다가 나중엔 거의 말수가 없어졌다. 이대로 철창이 계속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해졌다. 중간중간 길가에 이스라엘 택시기사들이 불을 피우고 뭔갈 구워먹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다행히 마을과가까워지니 철창 간 간격도 드문드문 넓어지고 철창 사이에 작은 잔디밭도 나왔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표지판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달리아 짐머.' 내가 예약한 숙소였다.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투숙했을 땐 이미 오후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지고 30분 넘게 걸어 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방갈로 형태였지만 160셰켈(5만9천원) 치고 내부 환경이 상당히 좋았다.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체크인을 했다. 방에 들어가니긴장이어느정도 풀렸으나 다음날 아침 일찍 유적지인 마사다에 가야 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명히 여행인데 왜 이리 몸이 고된 걸까,
내일 일정을 접고 그저 하루 쉬고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게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아빠와 나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여행을 다녔다. 한국인 특유의 가성비주의가 발동된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홍해가 있는 이스라엘 최남단 도시 에일랏에 갔을 때 아빠한테 못하겠다고 하곤 뻗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