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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12. 2021

나의중동여행기41_사진 좀 그만 찍자!

나 좀 돌아다니게

놀라운 사실. 미스터지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는 운전기사 겸 사진사였다. 오늘 반나절 만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아무런 설명 없이 후루룩 넘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당신, 가이드라는 이름을 왜 붙였어!


그의 이전 고객들이 주로 사진 찍기에 열중했던 사람들이었는지, 미스터지는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사진을 찍어주려고 부던히 애를 썼다. 


그는 내 머리에 터번을 씌워주고 한 컷, 점프샷으로 한 컷, 착시현상 느낌으로 한 컷을 진지하게 찍었다. 나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피라미드 내부를 혼자 다니는 건 위험했기 때문에 잠자코 그의 여행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미스터지의 요청에 따라 찍은 사진
이런 점프샷도 몇십장씩 찍었다

반면 미스터지는 유적지 설명에는 꽝이었다. 그는 내가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 달라 하면 어깨를 으쓱 하고는 "그레이트, 그레이트 피라미드!"라고만 외쳤다. 스핑크스 앞에서 했던 말은 "베리 빅! 베리 빅!"이다. 오 맙소사. 유적지에 대한 설명은 그냥 호텔에 있을 때 와이파이로 찾아보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그래도 미스터지가 없었다면 피라미드에 아예 오지 못했을 것이다. 피라미드에 차로 진입할 때 그것을 느꼈다. 피라미드 입구에서 각종 물건을 팔던 상인들과 구걸하는 걸인들이 우리 차를 발견하고 일제히 달려든 것이다.


그들은 차를 붙들고 놔주지 않으려 하면서 뭐라뭐라 큰 소리로 외쳤고 미스터지도 그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아랍어 욕설을 해 댔다. 거리의 걸인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차창을 손으로 퍽퍽 쳐 댔지만 미스터지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차를 거세게 몰아 그들을 떨궈냈다.


"잇츠 오케이, 잇츠 오케이. 노-프라블럼." 겨우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댄 그는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가 피라미드에 대해 한 줄도 설명하지 않고도 어떻게 외국인 관광객들을 꾸준히 섭외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살벌한 해결사였던 것이다.

질긴 낙타와의 연

"컴 히어, 마이 퀸!"

좀전까지 아랍어 욕설을 하던 그가 나를 퀸이라 부르는 건 어딘가 찜찜했지만 어쨌든 그가 나를 귀하게 대접해 주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는 자신과 주로 거래하는 노점상 상인에게 차를 한 잔 부탁해 내게 건네주고, 낙타몰이꾼 한 명을 데려 와 30분 동안 피라미드를 돌아다니게 해 주었다.

안개가 낀 피라미드

아침의 피라미드는 안개가 자욱해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웅장한 피라미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정오엔 거의 안개가 다 걷혀 있어서 교과서에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어차피 안에 들어가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멀리서 보는 것이 전부였다.


다만 흔들거리는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를 돌 수 있는 건 좋았고, 인상이 험악한 낙타몰이꾼이 함께 한 덕에 주변 상인들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방문객이 너무 많았고 피라미드에 대한 설명은 턱없이 적었기 때문에 나는 금방 흥미를 잃었다. 미스터지는 그런 나를 끌고 다니며 수백장의 인증샷을 남긴 뒤에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그 곳을 떠났다.

다음 목적지였던 스핑크스 역시 사람들로 미어터지긴 마찬가지였다. 미스터지는 여기서도 인증샷을 찍어주겠다며 나를 무리 안으로 집어넣었는데, 사진을 몇 장 찍기도 전에 내게 시선이 쏠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양인이다, 동양인이야!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쭈뼛쭈뼛 다가 와 사진을 찍자고 했고 마치 연예인이 된 것처럼 여러 명의 아이들과 사진을 번갈아 가며 찍었다.


사실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구는 인도나 요르단에서도 종종 있던 일인데 이집트는 특히 더했다. 동양인 여자가 혼자 다니는 경우가 흔하지 않아서 그런지 걸핏하면 사진을 찍자는 요구를 받았다.

아주 작은 아이면 나도 경계심이 덜 하지만 키가 훌쩍 큰 남학생들이 떼 지어 사진 찍자고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었다. 결국 일곱 장쯤 찍다가 그만 지쳐버려 바이바이, 했는데 다음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던 남자아이가 `와이!'하고 세 번이나 외치며 따졌다. 거절감을 느낀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왜 당연히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핑크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고 얼굴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바람에 많이 깎여 있었다.

오이디푸스 설화를 보면 스핑크스는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게 뭐냐'는 수수께끼를 내서 못 맞추면 잡아먹는 괴물로 나온다. 만약 내가 저렇게 커다란 스핑크스 앞에 서 있었으 무서워서 덜덜 다리가 떨렸을 것 같다.

(정답은 인간임. 어릴 땐 네 발로 기고 청년 땐 두 발, 나이 들면 지팡이 짚어서 세 발)


미스터지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허기 지던 차에 미스터지가 이 근방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에 나를 내려줬다. 흔한 아랍식당의 빛바랜 간판이 아니라 번쩍번쩍 빛나는 간판을 단 것으로 보아 상당히 비싼 식당으로 보였다.


나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와 밥을 먹어야 하는가? 미스터지는 나더러 혼자 올라가서 먹으라고 했지만 나로서는 하루종일 같이 일정을 다니는 그가 점심도 같이 안 먹고 차에 혼자 남는 것이 신경쓰였다. 물론 알아서 길거리 음식이든 식당 밥이든 사먹겠지만 굳이 혼자 온 마당에 난 비싼 식당 가니까 가이드님은 따로 드세요, 하는 것이 좀 그렇다고 여겨졌다. 무엇보다 그는 이집트에서 나의 안위를 책임지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올라가서 같이 먹어요."


나는 한 번 물어나 볼 요량으로 물었는데 미스터지는 "탱큐, 탱큐!"하고는 곧바로 차 키를 뽑았다. 표정은 포커페이스하고 있었지만 몸동작이 이미 `계 탔네'하는 표정이었다. 어이쿠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비싼 외관 치고 맛은 평범했지만 두 사람이서 먹으니 이것저것 시킬 수 있어 좋았다.

미스터지와 함께 먹은 커리와 치킨

그 뒤로는 미스터지의 집에 가서 자녀들과 인사하고, 차를 한 잔 하고, 근처에 있는 전통시장을 구경하러 다녀왔다. 혼자는 못 갔을 밤의 야시장을 지가 데려가 줘서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줄 커피를 사야 한댔더니 이집트 커피 가게도 소개해 주었다. 미스터지를 믿고 그 자리에서 봉지로 10개 넘게 구매했는데, 한국에 들어 와 가족들과 먹어 보니 그 커피는 정말 맛대가리가 없었다. 역시, 미스터지는 퀸도 속이는 대담한 가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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