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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복 Aug 14. 2016

1.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마음으로

   중국 송(宋)나라 때의 불서(佛書) 벽암록(碧巖錄)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啐)'은 병아리가 알 속에서 쪼는 동작이며, '탁(啄)'은 어미 닭이 알 밖에서 도와 쪼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동시(同時)'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행위(줄,啐)과 어미 닭이 바깥에서 도와주는 행위(탁, 啄)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원래 선불교(禪佛敎)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 말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제자가 깨우칠 때까지 품고 보살피는 스승은 아직 깨치지 못한 제자의 한계가 깨어지도록 함께 줄탁(啐啄) 작업을 동시에 한다는 것입니다. 


   자산관리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투자자들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전문가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좋은 전문가를 조언자로 두는 것 또한 자산관리를 하는데 있어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뛰어난 전문가를 옆에 두기도 쉽지 않겠지만......우선 일반 투자자로선 어떤 사람이 뛰어난 전문가이면서 신뢰할 만한지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설픈 전문가를 만나거나 또한 고약한 심보를 가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아니 만난 것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 돈 몇 백만 원의 돈을 쓸 때에도 이리저리 알아보고 고민을 거듭하는 우리나라 주부들이 유독 용감해지는 곳이 바로 자산관리입니다. 수 천만 원, 아니 수 억 원을 투자하면서도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금융상품에 용감하게 지르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묻지마 투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엄청난 고통을 안겼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금융의 현실이고, 고객들의 아픔입니다.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작지 않습니다. 오직 실적이라는 미명하에 직원들의 불완전판매를 묵인하는 그들의 탐욕을 이제는 제어해야 합니다. 그들은 리츠, 중국펀드, 물펀드, 일본펀드 등 그때그때 유행을 만듭니다. 투자자들은 그 유행을 뒤따라가면서 손실을 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펀드에 염증을 느끼고, 또 투자자들의 반발로 펀드수수료가 대폭 깎이자 이번에는 자문형 랩 열풍을 만들어 냅니다. 2009년 이후 자문형 랩의 높은 수익률에 열광한 투자자들은 또다시 자문형 랩에 뛰어듭니다. 요행히 자문형 랩 열풍이 불기 전에 들어간 투자자들은 재미를 봤겠지만,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은 2011년 유럽재정위기로 또다시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보험회사들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의 불완전판매 또한 말로 다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투자자들로부터의 신뢰 회복만이 금융기관이 살 길입니다.


   투자자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금융교육을 받지 못한 탓도 있지만,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오직 수익에만 집착하는 투자문화를 이제는 바꿔야 할 때입니다. 합리적인 기대치를 제시하는 전문가의 말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얼치기 전문가의 말만 믿는 탐욕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공포에 우왕좌왕하는 조급증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으레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대개 두 가지만 물어봅니다. “지금 투자를 시작하면 되느냐” 하는 것과 “괜찮은 펀드 있으면 하나만 찍어주세요”라는 질문입니다. 투자의 기본 원칙이나 위험관리기법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직 단기적인 시세차익에 일희일비하는 투자문화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기본을 지키는 투자만이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깃털만큼 가벼운 지식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써보기로 한 이유입니다. 이 글은 현란한 투자의 기술을 가르쳐 주는 글이 아닙니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기본을 지키는 현명한 투자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지침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투자의 기본적인 원칙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합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템플턴, 워렌 버핏, 존 보글 같은 투자 대가들을 많이 인용하는 이유도 투자 대가들의 지혜를 빌려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시금석이 되었으면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마음으로 쓴 이 글이 많은 투자자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앞으로의 수고로움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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