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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Oct 24. 2021

고통총량 불변의 법칙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라

  “부럽습니다.”


  황악산을 넘어 추풍령으로 내려올 때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대간꾼 한 명이 내게 한 말이다. 자신은 지금부터 고지대로 들어서는데 이제 수한 길로 접어드는 내가 부럽다는 뜻이었다. 그의 말대로 추풍령 너머의 길은 한참 동안 야트막했다. 산도 아니고 평야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의 길이 이어졌다. 백두에서 시작해 남쪽을 향해 쉼 없이 내달음질했으니 산도 쉬기는 좀 쉬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두의 큰 줄기가 근본 없는 잡산雜山과는 달라 마냥 만만치만은 않았다. 게다가 집 나설 때 몸이 좋지 않아 걸음이 무시로 꼬이고 휘청거리더니 결국 사고치고 말았다. 사기점 고개에서 기어오르다시피 힘들게 정상에 올랐는데 산허리를 휘감고 한참 내려와 보니 다시 제자리였다. 황망하고 허탈했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한 번 더 산을 넘으며 진을 뺐다. 길이 편하면 몸이 안 좋고 몸이 실하면 산길이 험하니 어차피 내가 겪어야 하는 고생은 똑같은가 보다.


  사실 부럽다는 그의 말은 한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나처럼 북진北進하든 그처럼 남진南進하든, 백두대간 걷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물리적인 고통의 총량은 같다. 물론 북고남저北高南低라는 지형의 기울기가 있지만, 어차피 일천 여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긴 여정을 생각하면 그 영향은 미미하다. 인생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와 빈자의 아들로 태어난 자의 태생적 기울기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은 긴 여정이다.


  “어릴 때 암만 딴 짓 하고 놀다가도 그 시간만 되면 산 입구로 가서 너그 아버지 기다렸다.”


  얼마 전 수십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L이 내게 한 말이었다. 친구가 말한 ‘그 시간’이란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매일 고향 뒷산으로 오르내리던 해질녘 시간이었다. 이야기인즉슨, 어느 날 산 밑에서 우연히 만난 아버지에게 인사를 꾸벅 하자 아버지가 십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친구에게 줬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저 동네 어른에게 인사하는 아이가 기특해 용돈 조로 십 원을 건넸을 것이다. 워낙 가난해 학용품조차 제대로 살 수 없었던 L은 그 ‘십 원’으로 공책과 연필을 사서 공부했고, 그 때부터 산 입구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이후 그가 얼마큼의 ‘십 원’을 더 수확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가난했던 그와 달리 별 부족함이 없이 컸던 나로서는 괜히 미안한 감정이 솟는 옛 친구의 회상이었다. 다행히 이제 그에게서 가난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편안해 보였고 실제로도 그렇다고들 했다.


  땅 밑의 지각이 충돌해 발생하는 물리적인 현상이 지진이라면, IMF 사태는 지표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욕망이 부딪혀 우리의 삶을 뒤집어놓은 해일이었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뒤틀리면 몸을 붙들어 매야 하지만 IMF가 엄습한 세상을 견뎌내려면 정신줄을 동여매야 했다. 그러나 다니던 은행이 무너지고 중국으로까지 흘러가 대륙을 떠도는 동안 나는 줄곧 혼미했다. 가정까지 무너졌으니 인간으로서의 온기는 식어갔고, 전쟁터로 변해버린 삶의 현장 속에서 사투해야 했으니 내 눈은 늘 충혈 되어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배곯던 어린 시절에 이미 삶의 고통에 대한 내성이 생겨났을 L은 보나마나 그때도 잘 견뎌냈을 것이다. 반면 나이 마흔 줄에 접어들어 난생 처음 겪어보는 궁핍과 결핍과 혼란 앞에 나는 고통스러워하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땅을 치며 울기도 하고 하늘 향해 고함도 쳐보았다. 그러나 세상은 아예 나와는 협상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L과 내가 각자 겪었던 고통의 무게를 가늠해보면 그 경중이 어떨지 궁금하다. 기울기의 차가 약간 있을지언정, 백두대간 남진하는 자와 북진하는 자가 그렇듯이 아마 거의 비슷할 것이다. 어차피 한 인간으로 태어나 건너야 하는 고해의 바다를, L은 유년 시절에 건넜고 나는 중년이 다 되어서야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는 모양이다.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


  많은 이들의 번뜩이는 재치와 삶의 경험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조어造語리라. 재벌 총수나 노숙자나, 시장 바닥 나뒹구는 장삼이사들이나 구중궁궐에 파묻힌 권력가나 사는 동안 겪는 고통의 총합은 모두 같다는 말이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좀 더 행복하거나 최소한 좀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 믿는 필부들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명제다. 그러나 없이 살지만 큰 걱정 없는 빈자와 달리, ‘천석꾼 천 가지 걱정 만석꾼 만 가지 걱정’이라고 하니 전혀 빈말 같지는 않다. 수사기관의 포토라인 앞에 선 재벌 총수의 초췌한 모습과, 포승줄에 엮여 감옥으로 향하는 권력자의 처연한 모습 또한 그들이 누린 지난날의 영광과 대비되어 이 법칙의 신빙성에 무게를 더한다. 굳이 이런 부침의 예가 아니더라도 반전되어버린 L과 나의 인생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불공평과 무질서의 온상처럼 보이는 세상이 긴 호흡으로 보면 나름대로 공평하고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운행 질서의 작동 원리가 바로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 법칙은 겉으로는 인간이 짊어져야 할 고통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윗 왕은, 환희가 넘칠 때 교만하지 않고 큰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기 위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자신의 반지에 새겼다고 한다. 영원할 것 같은 기쁨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난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는 믿음 때문이리라. 내 삶을 긴 호흡으로 돌이켜보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명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교만해서는 안 되며 또한 어떤 고난 앞에서도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요즘 거울에 비친 내 눈의 충혈이 조금씩 풀리는 걸 보면 그토록 거칠게 내 인생을 습격했던 해일도 이제는 잦아드는 것 같다. 다행이다. 해일이 몰아칠 때 자식들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버텨내리라 다짐한 작은 보상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L처럼, 나도 오랫동안 곤욕을 치렀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으니 편안한 때가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 지금의 L처럼. 그게 바로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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