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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Sep 01. 2022

뜻밖의 발견-'여보' '당신'의 의미

'사랑'만이 우주의 신비에 응답하는 유일한 길

 20여 년 전 합의이혼 판결문을 들고 법원 문을 나서는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그때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숱한 사람들이 끝없이 줄지어가는 삶의 대열에서 내가 갑자기 낙오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이혼하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감정이었다. 아무도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가 나를 곁눈질하는 듯한 그때의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 그 후 나는 지금의 아내와 만나기 전까지 십수 년을 홀로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가능한 한 이혼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밝히지 않았다. 왠지 내가 큰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비치는 게 싫어서였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웬만해서는 실토하지 않았다. 내가 확실히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굳어지는 게 싫어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었다. 나는 위축된 삶을 살아야 했다.


 나는 그렇게 자식들을 부둥켜안고 혼자 살았다. 혼자 사는 여자를 보는 차가운 시선만큼이나 혼자 사는 남자를 보는 눈길도 따가웠다. 나는 혼자 사는 게 죄가 아니라고 주문처럼 되뇌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늘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 나이에 왜 혼자 그러고 사느냐고 끊임없이 물어댔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물었고 또 어떤 사람은 은근슬쩍 물었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어서 그냥 멋쩍게 웃어넘겼다. 사실 그들의 진짜 관심사는 내가 여자를 두들겨팼는지 아니면 두들겨 맞았는지, 내가 바람을 피웠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인 것 같았다. 내가 '못된 놈'인지 '못난 놈'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법원 문을 나설 때만 해도 혼자가 되는 것이 이 둘 중 어느 하나로 편입되는 일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혼자 사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내 목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져 갔다. 세상에는 수많은 '혼자'가 있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제발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고 하는 '혼자'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도 제발 혼자인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나마 '오빠'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생기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우리 사회에서 '오빠'라는 말만큼 다양한 어감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한 손으로는 말고삐 잡는 시늉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공을 휘저으며 자칭 '강남스타일'이라고 외치는 오빠는, 사실은 오빠가 아니라 허세 부리는 뺀질이다. 짙은 화장을 한 채 남자의 팔짱을 끼고 코맹맹이 소리로 부르는 '오빠'도, 사실은 그녀의 친오빠가 아니다. 물론 그들이 진짜 남매 관계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담배를 꼬나문 술집 여자가 늙다리 건달을 향해 날리는 '오빠야, 쫄았제?'라는 영화 속 멘트는, '오빠'가 단순히 호칭을 넘어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용도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해서 '오빠'라는 말이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요즘 '오빠'는 질척거리는 남녀 관계를 쉽게 연상시키는 단어가 된 게 사실이다.


 어떤 합의 절차를 거쳐 '오빠'에 이르게 됐는지는 세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연애를 할 때 나에 대한 아내의 호칭도 '오빠'였다. 물론 8살의 나이 차이였으니 둘만 있을 때는 '오빠'가 그리 부자연스러운 호칭은 아니었다. 여동생이 없어 평생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었던 나로서는 오히려 듣기 좋은 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나를 향해 '오빠'라고 부를 때면 나는 늘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 역시 당시에는 자신이 그렇게 부르면서도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우리를 부적절한 관계로 오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당시 우리는 둘 다 이혼하거나 사별한 상태였으니 그런 눈총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유독 흰자위가 더 많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 순간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한 순간들이 뇌리에 남을 만큼 더러는 그랬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다 그놈의 근본 없는 '오빠'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가 '오빠'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둘이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어엿한 부부가 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보석과 같다는 뜻의 ‘여보如寶’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박카스를 마시는 것도 아닌데 서로를 부르는 아내와 내 목소리에 힘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혼자였던 세월을 한풀이라도 하듯 시도 때도 없이 ‘여보’를 질러댔다. 사람들이 많을 때의 목소리는 더 우렁찼고 사람이 없으면 시들했다. 내가 ‘오빠’ 일 때는 그 반대였다. 아내는 나를 향해 '여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나도 이제 남편 있는 여자’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나 역시 아내를 향해 '당신'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세상에게 우쭐대고 있었다. '여보' '당신'이란 단어가 사람을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만드는 단어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가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의미와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되고 부르는 목소리에 힘이 붙게 된다. 이제서야 내가 혼자일 때 왜 그렇게 내 목소리가 움츠러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탄소 수소 산소 등의 원소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이런 원소가 모여 피부와 장기를 이루고 뇌의 신경세포까지 형성하는 모양이다. 학자들은 이들 원소가 우주의 별들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흩뿌린 먼지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인간이 우주를 떠도는 먼지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들을 자주 쳐다보는 것도 그곳이 바로 우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1990년 2월 14일 지구로부터 64억 Km 떨어진 명왕성 근처에서 우주 항해를 하던 보이저 1호가 카메라 렌즈를 되돌려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그 프로젝트를 주도한 칼 세이건 박사는 사진 속에서 희미한 점으로 찍힌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으로 묘사했다. 사진은 이 우주가 얼마나 무변광대하고 웅장한 무대인지,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얼마나 왜소하고 미미한 존재인지를 말없이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끝없이 황량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희미한 한 점으로 걸려 있었다. 우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의 심연을 떠돌다가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티끌이다.


 이처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먼지로 떠돌던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 착륙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또 다른 운 좋은 먼지 하나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먼지로 정처 없이 떠돌다가 표면온도가 섭씨 450도에 달하는 금성에 떨어졌다면, 혹은 6,000도의 뜨거운 바람이 초속 7,000Km로 부는 태양이라는 항성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 우주 속에서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지구에 떨어져 생명으로 발아되고 '사랑'이란 걸 하게 될 확률을, 그리하여 '오빠'의 굴레를 벗겨내고 '여보'에까지 이르게 될 확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그게 과연 계산이 되기는 하는 걸까. 지금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부르고 있는, 혹은 당신에게 무심하게 들려오는 그 '여보'와 '당신'은 이렇게 숨 막히는 과정을 거쳐 우리의 목젖과 귓전을 울리는 신성한 단어다. 지금 당신 옆에서 지그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을 향해 '여보'라고 힘주어 불러 보라. 그리고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한없이 사랑한다고 진심을 다해 외쳐 보라. 그리고 당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행하라. 그것만이 당신을 둘러싼 이 우주의 신비에 응답하는 유일한 길이요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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