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속의 고목나무 Sep 16. 2022

진실을 담아내는 두 개의 그릇

'형식의 그릇'과 또 다른 그릇'

 '형식은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내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30대 중반쯤 직장 생활을 할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직장 상사와의 대화 도중에 그분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제대로 된 형식과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그 가치가 훼손되거나 폄훼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형식'도 알맹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때 그분이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이 누구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조어造語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는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와 검은색 터틀넥으로 대변되는 실리콘 밸리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국내에 전해져 형식 타파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분은 오히려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진실을 담아내는 데는 '형식의 그릇'보다 훨씬 더 견고한 그릇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매년 봄이 되면 사진관에 들러 사진을 찍는다. 정확하게는 4월 6일이다. 올해는 그날 사정이 생겨 오는 11월 1일에 촬영하기로 했는데, 재작년부터 시작했으니 금년이 세 번째다. 이 연례행사는 아내의 제안에 의해 시작되었다. 4월 6일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고 그다음 해 11월 1일은 우리가 재혼 부부로 함께하기 시작한 날이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을 기념함과 동시에 두 사람이 매년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게 아내의 뜻이었다. 우리 또래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기념일을 챙기거나 이벤트를 하는데 둔감한 편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을 겨우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여자로서의 아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함께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내는 내게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러나 나는 "꼭 그런 거 해야 되나."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다 재혼한 처지에 남들 앞에 나서 예식을 한다는 게 나로서는 면구스러운 일이었다. 그러자 아내는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지 않아 아내는 또, "그러면 서로 갖춰 입고 간단하게 사진이라도 찍는 건 어때요?"라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웨딩 촬영이란 걸 하고 싶은 듯했다. 나는 그것도 썩 내키지 않은 내색을 비쳤다. 당시 나는 아내와 함께하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데는 면구스러움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말 못 할 앙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웨딩 촬영을 한다는 게 나로서는 편치 않은 일이었다. 아내는 내 반응을 보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뜻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때 나는 아내와 살림 차린 사실을 내 자식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성인이니 오랫동안 홀로 살아온 아빠가 못할 짓 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여도 감정까지 순순히 그럴지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엄마를 떠올리며 나를 쳐다볼 것이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비록 이혼은 했지만 각기 혼자 따로 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여전히 한 가족의 범주 내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끝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각자 혼자 살고 있는 한 재결합의 여지는 늘 남아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빠의 '딴살림'은 아이들 의식 속에 남아 있던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끝장내는 '사건'일 것이다. 혼자 살고 있었던 지금까지의 아빠와 '딴 여자'와 함께 사는 앞으로의 아빠는, 겉은 같아도 내용물이 다른 아빠라고 아이들이 손사래를 칠 것 같았다. 아내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딴 여자'일뿐인 게 나는 가슴 아팠다. 지금까지 지켜본 아내는 내 자식들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혼한 부모는 기본적으로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지도 지켜내지도 못해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산다. 또한 행여 내 자식들이 바깥에서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그래서 아이의 어깨가 축 처져 있을까 봐 그들의 마음은 늘 아리고 간당간당하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결손가정 아이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찌 말처럼 평온하기만 하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자식들을 쳐다보는 눈빛은 애닯다. 또한 말을 건네는 목청은 터무니없이 과장되거나 턱없이 풀려 있다. 이혼부모의 마음이 많이 아픈 것은 자신의 희뿌연 앞날 때문이 아니다. 자식의 마음도 많이 아픈 것을 묵묵히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든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망설일 때가 많다. 나도 그다. 그런 마음으로 아직 출가하지 않은 둘째 딸과 마주했다. 착한 딸이다.


 "만약 혼인신고하실 거면 그때는 저희들과 상의해 주시면 좋겠어요."


 내 말을 다 듣고 난 딸이 담담한 어조로 내게 한 말이었다. 언감생심 축하의 말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딸의 윤기 없는 목소리에 실려 나온 그 말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재산 문제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사업 실패 후 빈털터리가 되다시피 한 아비의 상황을 딸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시어른 될 분들에게 부모의 이혼 사실을 알리는 문제로 괴로워하던 결혼 전 큰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아내와 혼인신고를 할 경우 딸의 호적등본은 부모의 이혼과 아빠의 재혼 사실이 선명하게 새겨져 출력될 것이다. 딸은 생뚱맞은 사람이 엄마의 자리에 덧칠되어 있는 호적등본을 상상하면서 언니가 결혼 전에 했던 고민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이혼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빠의 재혼으로 인해 왠지 가족관계가 더 엉망이 되어버린 듯한 생각에 화가 났을 수도 있다. 또한 가족 해체의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가족으로서의 순혈 가치는 유지되었는데, 이제는 그 정서적 방어선마저 무너졌다는 점이 딸에게는 상실감으로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모든 감정이 모아진 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혼인신고만큼은 저의 입장도 좀 헤아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형식만으로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애절한 호소였다.


 아내가 결혼식과 웨딩 촬영을 원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하고 완벽한 증명과 기념은 혼인신고다. 그것은 혼인 당사자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즈음 아내는 가끔 주변으로부터 혼인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 할 건지 안 할 건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인 장모님은 채근까지 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과 관련해 내게 어떤 독촉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결혼식과 웨딩 촬영까지 원하는 아내가 혼인신고를 일부러 피할 리도 없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히 혼인신고를 해야 하고 딸의 마음을 헤아리면 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의 '형식'과 딸의 '형식'이 마주 보며 달리고 있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요. 우리 혼인신고는 천천히 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아요. 내 목표는 당신과 행복하게 사는 거지 혼인신고가 아니에요. 대신 매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시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읍시다. 그거면 돼요."


 딸을 만났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아내가 한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매년 봄에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아내는 그때까지 나와 내 자식들의 입장을 고려해 내게는 의식적으로 혼인신고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자식들에게 내가 난처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일찌감치 '혼인신고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고집할 경우 자칫 시작부터 분란이 될 수 있는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내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일로 인해 아내의 깊고 너른 속마음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향한 사랑이 한층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나는 혼인신고를 한 것 이상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겨나 아내와의 관계는 법적 결속력보다 훨씬 더 공고히 되었음을 느낀다.


 이렇듯 우리는 아직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로 인해 크게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은 의외로 적다. 그저 자동차 보험료가 남들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일 뿐이다. 아내가 원했던 결혼식과 웨딩 촬영과 혼인신고는 모두 우리가 부부임을 확인하는 '형식'이다. 부부는 행복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두 사람이 만든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형식'들은 사실 부부의 공동 목표인 '행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굳이 표현하면 형식은 부부임을 증명하는 수단은 될지언정 정작 부부의 목적인 행복을 담보하는 수단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재혼을 앞두고 있는 많은 예비부부가 형식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물론 제각각의 사정이 다 다를 것이므로 천편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재혼은 다시 행복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행복 추구가 최우선 가치여야 하는 것이다.


 아내는 오로지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것만이 혼에 임하는 그녀의 유일한 진실이자 알맹이였다. 아내는 그 진실을 '형식의 그릇'에 담는 것을 포기했다. 자칫 형식을 고집하다 알맹이에 상처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남편에 대한, 그리고 남편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자신이 만든 '마음의 그릇'에 담았다. 물론 30여 년 전 내 직장 상사의 말대로 '형식'이 진실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충실히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담아내는 데는 그 어떤 '형식의 그릇'보다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재료로 빚은 '마음의 그릇'에 담는 것이 가장 견고한 것 같다. 아내도 나만큼이나 많이 배우지는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보다는 훨씬 더 지혜롭고 착한 사람이어서 내가 그 혜택을 톡톡히 받으며 산다. 감사한 일이다.

이전 04화 뻐꾸기 부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