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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Aug 18. 2022

뻐꾸기 부부

품고 싶어도 품을 수 없는 그리움

 날이 더워지면서 나는 밤이 이슥해서야 집 근처의 산에 오를 때가 많다. 운동 삼아서다. 밤이라도 30분 정도 오를 때까지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 그렇게 산길을 걷다 보면 가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숲의 적막을 깨고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그 울음소리는 참으로 구슬프다. 먹구름에 달과 별이 가려져서 평소보다 더 컴컴한 밤이면 처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호롱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옛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도 뻐꾸기가 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는 뻐꾸기가 왜 저렇게 슬프게 우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필시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내 핸드폰 속에는 외손자의 사진과 동영상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일 년 정도의 분량이다. 평생 되새겨볼 것처럼 아무리 정성껏 사진을 찍어놔도 대부분은 그저 한두 번 꺼내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손자의 그것은 봐도 봐도 싫증 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아이 모습을 들춰내 보면서 히죽히죽 웃을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즐겁다. 언젠가 이런 내 심정을 듣던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남자는 일생 동안 세 번 미친다. 어릴 때는 장난감 총에 미치고, 젊어서는 여자한테 미치고, 늙으면 손자 손녀한테 미친다.’ 여자 꽁무니를 쫓던 옛날의 내 모습과 이죽거리고 있는 지금 내 꼴을 보면 거의 맞는 말이다. 요새 나는 이렇게 마지막 ‘미친 짓’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게 총이든 여자든 ‘미친’ 뒤에는 늘 그리움이 함께 했다. 지금도 그렇다. 아내는 내가 이럴 때마다 잔잔하게 웃으며 쳐다본다.


 올해는 일찍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6월 하순부터 벌써 한낮 기온이 30도가 넘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최고 기온도 32도다. 외손자를 보러 가는 날인데 너무 더워서 걱정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요. 너무 달지도 않고 시원해요. 애들이 좋아한다니 참 좋네요."


 아내가 어젯밤부터 정성껏 달여서 만든 감주를 병에 넣으며 말했다. 아내가 만든 감주는 여름에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료다. 몇 달 전 아내는 내가 큰딸 내외와 손자를 만나러 갈 때, 혹시 아이들도 좋아할지 모르니 가져가서 맛 보이라며 감주 한 통을 내밀었다. 이를 맛본 딸과 사위는 물론이고 아이까지 입맛을 다시며 너무 잘 먹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이번 걸음에도 감주를 만든 것이다.


 출가한 자식 내외와 부모와의 만남은, 보통은 자식들이 아이를 안고 부모를 찾아오지만 나는 내가 길을 나선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비좁긴 하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재혼을 했고 내 자식들이 아내와 만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자식들이 내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그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기색이야 어떤 식으로든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식들이나 손자를 볼라치면 내가 길을 나서는 것이다. 자식들의 축하를 받으며 하는 재혼도 있겠지만 우리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비난을 퍼붓거나 반대를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뜻은 존중하되 자신들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내와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 대해 아내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라며 섭섭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왜 섭섭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오늘처럼 내가 길을 나설 때는 늘 뭐라도 챙기려고 애쓴다. 아내의 딸인 나영이가 나를 살갑게 대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미안하다. 그러나 내가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몇 달 만에 본 아이는 그새 부쩍 컸다. 내 품에 안겨 점잖게 있기도 하고 조금만 얼러도 자지러질 듯 웃으며 넘어가던 아이가 이제는 낯가림을 했다. 내 눈을 마주치면 금세 실룩거리는가 하면 두 팔 벌려 안을라치면 버둥거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도 억지로 안았더니 기겁을 하고 지 엄마를 향해 구조의 손길을 뻗치며 울었다. 아이는 나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무리 귀여워도 낯선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속 좁은 줄 알면서도 속이 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사랑스럽다. ‘핏줄’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거부해도 물러서지 못하고 무시당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핏줄은 바로 이런 ‘이유 없는 끌림’인 것 같다. 이런 외손자의 태세를 전환하게 한 것은 아내가 만들어준 감주였다. 달짝지근한 맛을 안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을 향해 돌진했다. 아이가 숟가락에 입을 대자 숟가락을 들고 있는 내가 짜릿했다. 물고기가 왜 잡히는지, 강태공이 왜 낚시를 하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오늘 내가 큰딸 내외와 외손자를 만난 장소는 카페였다. 지난봄에는 아이들이 맛집 검색을 해서 찾은 식당에서 만났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관심사는 밥이 아니라 외손자였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를 안고 싶었고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맛집의 비싼 밥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밥 먹고 만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예배를 마치고 나온 한 무리의 교회 사람들이 카페를 점령하다시피 해 어수선했다. 그들의 웅성거림은 우리에게 방해가 됐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들에게 방해가 됐다. 그들은 간혹 나를 훔쳐봤고 나는 가끔 그들에게 곁눈 흘겼다. 아이를 보러 갔는데 눈치를 본 시간이 더 많았다. 결국 우리는 카페에서 겨우 한 시간 정도 머물다가 헤어져야 했다. 딸과 사위는 아이의 외할머니, 즉 나의 전처 집으로 향했다. 오늘 밤 손자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이다. 나는 차가 떠날 때까지 아이의 손을 잡았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다시 볼 때가 되면 그때 아이는 또 훌쩍 커져 있을 것이고 나는 그만큼 늙어져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외손자를 데리고 자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내 마음이 투영된 개꿈이었다. 내 어깨에 무동을 태우고 함께 산행하는 꿈도 꿨다. 마찬가지다. 같이 자고 산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아이와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조금만 더 오래 머물 수 있기만 해도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나는 장소가 식당이나 카페가 아니라 집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사는 집으로 오지 못하고 나는 오늘 밤 아이가 자는 집으로 갈 수 없으니 이 또한 눈 뜨고 꾸는 개꿈일 뿐이다.


 내가 집으로 오자마자 아내는 외손자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자고 했다. 내가 아이를 만나고 올 때마다 아내는 으레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는 연신, '많이 컸다.' '살이 붙으니 인물이 더 좋아졌다.' '잘 웃어서 복 많이 받겠다.'며 한참 동안 눈길을 떼지 않는다. 휴대폰 속의 아이 모습을 확대하며 쓰다듬기까지 한다. 아내는 가끔 딸이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더 보내지 않았느냐며 내게 묻곤 한다.


 “언제 나랑 시장에 같이 가요. 애한테 줄 옷이랑 신발 사러 갑시다. 조금 있으면 돌이잖아요. 이번에는 금반지도 하나 준비해서 같이 줍시다.”


 아이의 생일을, 나는 대략만 알고 있는데 아내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지난 백일 때에도 시장에서 준비한 옷과 신발을 내밀며 딸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그때 나는 그냥 입 다물고 묵묵히 다녀왔다. 아내에게 마땅히 할 말을 못 찾아서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바깥으로 새 나가지 못한 '고맙다'는 말이 터질 듯이 쌓였다. 최근에서야 나는 내 외손자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쏟고 있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진심을 다해서 아이들을 축복하는 게 어른이 할 일이잖아요."라고 했다. 내 딸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빠의 지금 아내'가 이만큼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내 입으로 딸에게 말하는 것도 민망하다. 남사스럽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넣어 새끼를 부화시킨다고 한다. 이른바 '뻐꾸기 탁란托卵'이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연생태계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뻐꾸기의 얌체짓이라고도 하고 치열한 생존 전략이라고도 하며 구구하게 말한다. 그러나 뻐꾸긴들 왜 자신의 알을 스스로 품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신체구조적으로 몸통은 크고 다리는 짧아 알을 품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알을 넣어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 주변에서 새끼가 부화될 때까지 계속 운다고 한다. 몰래 하는 짓이니 때로는 들켜서 봉변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통제 권역에서 벗어나 있으니 뱀이나 다른 새의 습격에도 그저 지켜만 볼 뿐 속수무책일 것이다. 밤하늘의 적막을 뚫고 울려 퍼지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에는 이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어미새의 고뇌가 스며있다. 품고 싶어도 품을 수 없고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는 아픔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그렇게 구슬픈지 모른다.


 물론 아는 딸의 자식이니 생물학적으로는 내 손자다. 그러나 '미칠' 정도로 늘 그리우면서도 맘 놓고 품을 수 없는 그 아이는 우리 부부가 재혼해서 마음으로 낳은 뻐꾸기 알인지도 모른다.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라는 소설이 있다. 사실 탁란을 하는 뻐꾸기는 둥지를 틀지 않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뻐꾸기 둥지>란 없다. 그래서 굳이 그 책의 제목을 바로 잡아야 한다면 <남의 둥지 주위를 서성대는 뻐꾸기>가 맞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딸의 둥지 주위를 서성대는 뻐꾸기 부부인 것 같다.


<이 글의 이미지는 미림 임영석 님의 여름날의 은은한 뻐꾸기 노래(ezday.co.kr)에 올려진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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