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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Oct 08. 2022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다시 사랑을 꿈꾸는 이의 두 가지 옵션

 2년여 전, 아내와 재혼 부부의 삶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담임선생님이 직접 학생들의 집을 방문해 학부모와 상담하는 '가정방문'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집으로 찾아오신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신 것이 기억난 것이다. 성옥수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열 살 정도였던 나에 대해 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그 근거를 짐작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나는 그해 중이염 수술 때문에 한 학기는 거의 학교를 다니지 않아 선생님과의 인연은 극히 짧았다. 이후 나는 그 일을 잊고 살았다. 그 후 지금까지 반백半白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기는커녕 그런 의지를 불태운 적조차 없었다. 그런 내가 60이 넘은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시답잖은 글이다. 그러나 지금도 50여 년 전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고3 때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집안의 제일 큰 형님이 내게 진로를 물었을 때 나는 놀랍게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어렸을 때의 선생님 말씀은 잊고 있던 때였다. 그러자 형님은 "그거 해서 밥 먹고 살기 힘든다."고 했다. 의사였던 형님의 입장에서 보면 글 쓰는 사람은 웬만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밥벌이도 하기 힘든 고등 룸펜lumpen 정도로 생각했을 수 있다. 당시 좀처럼 누구의 말을 잘 안 듣던 내가 이상하게도 형님의 그 말은 바로 수긍하고 '글 쓰는 사람'을 포기했다. 지금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오는 동안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형님은 내가 쓴 글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때 형님은 동생의 재능이 아니라 세상의 시류時流를 이야기했고, 초3 때의 담임 선생님은 세상살이가 아니라 제자의 재능을 이야기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글'은 내 인생에서 멀어져 가는 듯했다.


 이후 나는 세상의 물결에 떠밀려 다녔다.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철없던 나를 먹여 살려주던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들이 생긴 것이다. 혼자일 때는 먹고 노는 게 문제였지만 이때부터는 먹고사는 게 문제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직장이 IMF 여파로 부도나자 나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먹고살기 위해 조급하게 다시 구한 직장은 오히려 나를 무너뜨리는 흉기가 되어 내 모든 것을 다 앗아갔다. 나는 세상에 떠밀려 중국으로 떠내려갔다. 신용불량자 신세로는 조국에서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천신만고 끝에 겨우 먹고살만한가 싶더니 이번에는 중국인들에게 사업체를 통째로 빼앗기고 피눈물 흘리며 대륙을 떠돌았다. 가정마저 파탄이 났다. 나는 한 발자국만 더 밀리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세상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나는 택배물 상차 작업도 하고 막노동판을 오가기도 하며 안간힘을 다해 세상에게 저항했다. 덤비는 게 아니라 그저 떠밀지만 말아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불현듯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겁지겁 밥 먹는 것만으로는 나 자신의 존귀함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채워지지 않는 삶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고 고상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저 감옥에서 탈출하는 기분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나는 고3 때 학생회장 K가 찾아와 스승의 날에 읽을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 속으로 우쭐해했던 일, 힘든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생각'과 '글'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기획 관련 업무를 할 때만큼은 즐거웠던 일이 생각났다. 내 현실의 삶 속에서 사라졌던 '글'은, 사실은 늘 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글을 쓰고 싶은 갈증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그 갈증은 해 뜨면 사라졌다가 어두워지면 나타나는 밤하늘의 별과 같았다. 장강명 작가의 산문집에 적힌, '써야 할 사람은 써야 한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잘 쓰려고 애쓸 필요 없다. 자네가 글을 써서 얻을 수 있는 건 벌써 다 얻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내게 관심을 가졌다는 아내의 말을 들은 친구가 한 말이다. 아내는 나를 만나기 전에 내 글을 먼저 접했다. 우리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이 내 블로그를 아내에게 미리 알려준 것이다. 아내는 글을 통해 헝클어진 내 삶과 세상을 대하는 나의 의식을 먼저 들여다본 셈이다. 지금도 아내는 마트에서 알려오는 홍보물을 유심히 살펴보고 쇼핑하는 습관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내 글은 개점하기 전에 뿌리는 홍보 전단지 역할을 충실히 한 것 같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당시의 내 처지와 여자를 대하는데 여러모로 부족했던 내가 아내와 부부의 인연을 맺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세상의 끝자락에서 탈출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은 이처럼 내게 생각지도 않았던 행운을 안겼다. 그러나 재혼 부부의 삶을 시작한 이상 나는 또다시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글 쓰고 싶은 갈증에 목말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내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났다.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넘어져서 허리를 다친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상이 점점 더 심해져 급기야는 운신하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일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병원 몇 군데를 전전하면서 MRI를 찍고 여러 차례 주사를 맞으며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은 후에서야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혼자 살고 있었더라면 이 고난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내는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폈다. 여전히 통증은 남아 있지만 운신할 정도의 몸 상태가 되어 이제는 일하러 나가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아내는 말렸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아내의 만류가 다분히 의례적이라고 생각한 나는 또다시 바깥으로 나갈 마음의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특별한 기술 없는 사람이 돈을 벌려면 남들 시키는 대로 몸을 써서 일해야 되는데, 일 시키는 사람은 다 당신보다 젊은 사람들일 거예요.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기분 좋겠어요? 당신이 집에 와서 기분 안 좋으면 최종 피해자는 내가 됩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같이 살고 있는데 당신 몸 힘들고 집안 분위기 안 좋으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평생 행복합니다. 우리 먹고사는데 돈 얼마 안 들어요. 그러니......."


 아내는 한두 평 남짓한 좁은 가게에서 도장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부터도 그리 많지 않은 수입이었지만 사회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는 영향을 받아 그마저 줄어드는 추세인 모양이다. 그러나 아내는 남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데는 결코 부족하지 않은 돈이라며 이것도 고맙다고 한다. 아내는 이처럼 자신의 분수에서 벗어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작은 일에도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아내 말마따나 젊었을 적 책상 앞에서만 일했던 내가 특별한 기술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삶의 파고를 헤쳐 나오는 동안 이미 막노동판에서 몸을 굴려봤던 내가 두려운 일은 없다. 물욕 없는 아내지만 내가 그렇게 해서라도 벌어오는 돈이 왜 싫겠는가. 그러나 아내는 우리가 재혼 부부의 삶을 시작했을 때 이야기했던 내 '꿈'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당신이 지금부터라도 글을 썼으면 해요. 나는 살아오는 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아서 글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당신 글은 쉽게 읽을 수 있고 공감되는 게 많아서 좋아요. 당신은 분명히 글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글 쓰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 보여요.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잖아요. 이름 있고 돈 많이 버는 작가만 작가인가요. 마누라 한 명만 공감하는 글을 써도 작가잖아요.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 글 쓰지는 마세요. 내가 암만 몰라도 그 정도는 알아요."


 아내는 수십 년 동안 잠자고 있던  꿈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지금이라도 그 꿈을 이루어 보라 말하고 있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내 심장은 거칠게 박동다. 아내는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거칠게 뛰는 내 심장은 아내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또한 얼마나 행복한 삶을 원하고 있는지를 깨달은 나의 속울음 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함께하는 사람의 꿈을 이해하고 긍정하며, 그것을 발전시킴으로써 얻어진 성취와 행복감을 서로 공유하는 것임을.


 그대, 사랑에 실패해 눈물 흘린 적 있는가. 그래서 다시 사랑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사람의 존재 가치는 그의 꿈과 이상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당신에게는 두 개의 옵션이 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사랑을 통해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든가. 그가 가진 '소유'보다 그의 '존재'가 더 큰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내 아내는 후자를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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