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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Jun 29. 2023

퀘렌시아

진정한 퀘렌시아는 '안전한 장소' 가 아닌 '사랑하는 마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퀘렌시아 Querencia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는 듯하다. 이곳저곳, 이 책 저 책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이다. '피난처, 안식처'의 뜻을 가진 스페인어인 모양이다. 곁들인 설명을 들어보면, 투우 경기 중 지친 소가 본능적으로 피난해 숨을 고르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투우사도 그곳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소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니, 생사의 전투에 나선 소로서는 잠시나마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안전한 공간인 셈이다.


 물론 그때는 내가 그런 용어를 알지도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철들고 나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퀘렌시아는 '지리산'인 듯하다. 40대 초반, 나는 IMF 사태로 인해 초토화되다시피 한 우리나라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살기 위해 결행한 일이지만 그곳에서의 삶인들 녹록할 리 만무했다. 그렇게 중국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며 어려움과 외로움을 겪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를 이끌림에 끌려 난생처음으로 지리산 종주를 했다. 당시 산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데다 몸까지 부실했던 내가 무슨 연유로 그렇게 무모한 짓을 감행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그때 나는 구례 화엄사에서 경남 산청의 대원사까지 지리산의 능선길 45Km를 2박 3일에 걸쳐 걸었다. 발톱이 흔들리고 발바닥에 잡힌 물집과 짓무른 샅의 살갗 때문에 큰 고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고행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참을 생각해도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다만 그때,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직면해 나를 짓누르고 있던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분명했다. 그 후부터 나는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결심을 할 때마다, 혹은 내 마음이 갈 길을 잃고 정처 없을 때마다, 아니면 마음이 울적해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배낭을 꾸려 지리산으로 내달리곤 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 싶어서 그 길을 걸었고, 막노동을 해서라도 먹고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질 때에도 같은 길을 걸었다. 영위하던 사업체를 중국인들에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되어 귀국해서도 나는 어김없이 지리의 주능선을 걷고 있었다. 물론 눈물을 흘리며 걸었을 것이다. 나는 요동쳤지만 지리산은 흔들리지 않고 늘 거기에 있었다. 지리산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기다렸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내가 지리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마음이 눅눅할 때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고 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내게 안식과 평화를 주던 지리산의 능선길을 밟지 않은지도 4년이 지났다. 거의 매년, 아무리 늦어도 두세 해에 한 번 정도는 꼭 걸었던 그 길을 한참 동안이나 걷지 않은 것이다. 흔들리는 내 맘이 잡혀서일까, 공교롭게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 발길이 끊어졌다. 아마 그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내와 함께한다고 해봤자 사는 형편이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늘 나를 응원하고, 부족해도 넘치는 척 잘못은 못 본 척사람,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친다 해도 끝까지 나와 함께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믿음만이 전과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이런 아내에게서 가끔 돌아가신 어머니의 향기를 느낀다. 알고보니 나는 지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퀘렌시아의 권역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류시화 작가는 자신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구태여 어렵게 말할 필요 없다. 그가 말한 '퀘렌시아'를 우리 말로 바꾸면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곳'이다. 숨을 헐떡이며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숫소에게 퀘렌시아,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잠시 부지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둔 자신의 눈을 그윽히 바라보며 피 철철 흘리는 몸을 잠시나마 부벼줄 한 마리의 암소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 이상의 퀘렌시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정한 퀘렌시아는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 생명체가 발산하는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따뜻한 가슴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퀘렌시아의 삶인 것이다.


 그대, 비바람 휘몰아치는 삶의 뗏목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가, 참고 기다리며 정진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그대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퀘렌시아의 세계에 진입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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