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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Dec 31. 2023

왜 미국에선 사극보다 정치 드라마가  인기일까


‘사극의 민족’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단언컨대 사극의 민족이다. TV(OTT를 포함하여) 사극 드라마는 웬만하면 망하지 않는 흥행수표다. 여론조사 업체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조사하면 사극이 늘 상위권에 오른다. ‘조선왕조 500년’ ‘용의 눈물’ ‘정도전’ ‘고려거란전쟁’ 같은 정통 사극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양사신기’ ‘주몽’ ‘뿌리깊은 나무’ 같은 판타지나 픽션 사극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오죽하면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어떤 후보는 공영방송 정상화 공약으로 KBS가 ‘태종 이방원’ 같은 사극을 의무 제작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영화에서도 사극은 힘이 세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명량’(2014)인데, 최종 관객수 17,615,844명이 10년이 다되도록 깨지지 않고 있다.

사극이 인기있는건 우선 볼거리가 있어서다. 현대극과 달리 대규모 전투신이나 당대의 의상과 문화 같은 시각적 요소들이 풍부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시청자들의 ‘사극 사랑’을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20세기로만 시대를 좁혀보자.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군사 쿠데타와 남북간 국지적 충돌 등이 반복된 근현대사 역시 스펙터클하고 블록버스터 같은 요소가 그 어느 시대보다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나라에선 사극이 절대 강자일까. 이 대답을 하려면 우리나라에선 유독 현실정치(바로-여기)를 배경으로한 정치 드라마 인기가 없는지를 먼저 따져봐야한다. 엄밀히 말하면, 왜 ‘국민의힘’(또는 그 전신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등) ‘더불어민주당’(또는 그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민주통합당,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등)같은 실제 정당이 배경으로 나오지 않는지를 따져봐야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로애락, 모략과 협잡, 희생과 권모술수, 막장과 후흑이 모두 들어있는게 정치다. 권력 투쟁 과정에서 서로 다른 권력 의지들이 맞부딪히며 때로는 성공하고 가끔은 좌절하는 서사는 재미가 없으래야 없을 수 없는 흥행 보증 수표다.   

고려거란전쟁 <KBS>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치 드라마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과거 ‘내 연애의 모든것’ ‘대물’ 같은 작품이 현실 정치를 내세웠지만 결국 ‘여의도에서 연애하는 얘기’로 끝나는 K-드라마 문법을 따르며 정치는 말그대로 배경으로만 차용됐다. ‘제5공화국’ 같은 공화국 시리즈, 미드 스타일 ‘보좌관’ ‘어셈블리’ 등은 현실 정치를 보다 전면에 내세우며 제법 주목은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얀거탑’ 이나 ‘밀회’ 처럼 의학이나 불륜 로맨스로 포장한 작품이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않으면서도 정작 정치의 정수를 적나라하게 풀어내 더 주목을 받았다.  


민주당을 민주당이라 부르지 못하는 K-정치 드라마


현실정치를 다룬 콘텐츠가 대체로 성공하지 못한건, 한국 정치가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식지않은 마그마처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생간처럼 날것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너무 첨예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직접 묘사가 부담스러운 콘텐츠인 셈이다.

예컨대 등장인물을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라고 설정해보라. 방송전부터 왜 주인공이 특정 정당 소속인지, 왜 대통령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는지, 어느 정당 소속 캐틱터는 비열하거나 권력투쟁에 능한 정치꾼으로 묘사되는지 등을 놓고 논란이 생길게 뻔하다. 각 당의 지지자들이 방송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거나 “근조 OOO 방송사” 리본을 단 근조화환들이 방송사 앞에 즐비할 것이다. 아예 방송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현실 정치를 다룬 작품들이 ‘민한당’ ‘민생당’ ‘국중당’ 식으로 변형된 당명을 쓰는것도 이때문이다.


결국 현실 정치를 다룬다면서 정작 현실성을 담보해주는 실존 정당인 ‘국민의힘’(또는 실존했던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등) ‘더불어민주당’(또는 실존했던 새정치민주연합, 민주통합당,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등) 같은 이름 조차 쓰지 못하니, 오히려 서사의 현실성은 한참 뒤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민감성을 피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이때문에 K-정치 드라마는 물을 많이 넣은 라면처럼 굳이 먹고 싶지않은 것이 된다. 그러니 차라리 볼거리라도 풍부한 사극으로 눈이 가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극의 경우 블록버스터급 전투신 자체보다 권력 투쟁의 스펙터클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수 있다.


‘용의눈물’ ‘정도전’ ‘왕과비’ ‘광해’ 등의 사극에서 당파끼리, 가족끼리 권력을 쟁취하기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여의도 정치를 뛰어 넘는다. 하지만 실존했던 역사 속 인물이나 붕당을 권력투쟁에 능한 정치꾼으로 묘사해도 별다른 논란은 생기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다 싸움이 나는 건 흔하지만, 누가 세자빈을 죽였는지, 소론노론중 누가 왕권을 차지해야하는지를 놓고 멱살잡이 하는 일은 없다. 과거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었겠으나 시간이란 필터를 거치면서 현실감이 완화되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사극이 정치 드라마 역할을 대신한다. 결국 우리나라에선 사극이란 프레임으로 주로 정치 얘기를 해온 것이다.   


민주당ㆍ공화당이 실제로 등장하는 미드


우리나라가 사극이란 장르를 통해 현실정치를 언급한다면, 미국은 그 반대로 볼수 있다. 역사극이 정치 드라마를 대신하지 않는다. 역사물은 하나의 장르로서 존재하며 인기도 있으나 우리와 달리 권력투쟁의 스펙터클보다 블록버스터급 볼거리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대박을 터트린 ‘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의 비주얼을 상상 이상으로 구현해내지만, 미국의 정통 역사를 배경으로 하진 않는다. 서부개척이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한 시대극은 말그대로 시대적 배경에 충실할뿐 정치적 내용을 탈색하는 경우가 많다.

하우스 오브 카드 <넷플릭스>

우리나라처럼 현실 정치를 반영하는 매개로서 사극이 활용되진 않는 건, 역사극의 ‘시간의 필터링’을 사용하지않아도 얼마든지 현대적 드라마 장르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초대 대통령 워싱턴 시대를 배경으로한 역사극보다 워싱턴 D.C.를 배경으로한 ‘하우스 오브 카드’ ‘웨스트윙’ ‘지정 생존자’ ‘홈랜드’ 같은 현실 정치 드라마가 더 인기가 많다. 이들은 ‘민주당’(또는 그 전신인 민주당 등) ‘공화당’(또는 그 전신인 공화당 등)같은 실제 정당을 그대로 배경으로 삼는다. 정치 드라마는 아니지만 미드 ‘뉴스룸’은 아예 공화당을 대놓고 신랄하게 비판하기까지한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와 비슷한 K-정치 드라마 감독 입장에선 부러울 법하다. 어떻게 미국 드라마는 한국과 달리 현존하는 민주당, 공화당이란 이름을 거림낌 없이 사용할수 있을까. 왜 각 당의 지지층이 방송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거나 방송사 앞에서 “방영 즉각 중단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근조 넷플릭스” 리본을 단 근조화환을 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나라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우선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워싱턴은 왜 대통령 달리기에서 항상 1등을 차지할까


몇해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연수생활을 할때, 야구장에 간적이 있다. 이곳을 연고로한 워싱턴내셔널즈가 홈구장으로 쓰는 곳이다. 5회말이 끝나자 운동장 정비 타임에 맞춰 프레지던트 레이스 이벤트가 열렸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토마스 제퍼슨, 프랭클린 R 루스벨트 등 전직 미국 대통령의 가발을 쓴 사람들이 나와 달리기를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존경하는 순위를 매기면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4명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레이스를 펼친 끝에 1등으로 골인하는건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다. 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에선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벤트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미국 관중들이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난다.    


듣자하니 항상 1등은 워싱턴 몫이라고한다. ‘당연하겠지, 워싱턴의 홈그라운드니까(도시 이름이 무려 워싱턴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루이지애나를 매입해 초강대국의 초석을 닦은 제퍼슨, 대공항을 극복하고 2차세계대전을 승리한 루스벨트 등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워싱턴이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건 단지 홈그라운드의 이점 때문일까? 아니다. 워싱턴을 빼놓고는 미국이란 나라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 내셔널스 홈구장

미국은 대통령제를 발명한 나라다. 지금이야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듣도보도 못한 생소한 제도였다. 유럽이나 아시아는 대부분 왕정 체제였기에 대통령제를 이해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프레지던트’를 이름만 바꾼 ‘킹’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국은 대통령제를 도입하며 절대 권력의 임기를 제한하는 전례없는 실험에 나섰는데, 마침 그게 한방에 성공해버렸다. 사극에 나올법한 피로 범벅된 권력 투쟁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 암투 대신 평화롭게 정권교체를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시행착오없이 바로 초기부터 말이다. 그게 바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가장 큰 업적이다.      


진정한 국부의 탄생 "권력을 포기하는게 가능해?"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건국 주역중 한명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은 그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2015년 처음 선보인이래 공전의 히트를 쳤다.(한때 가장 좋은 좌석의 정가가 무려 849달러(약 109만 원, 2023년 12월27일 기준)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극중 ‘개그 캐릭터’로 나오는 영국왕 조지 3세는 워싱턴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노래한다.


“조지 워싱턴이 권력을 포기하고 사직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건줄 몰랐네. 정말 놀라워. (미국은)지도자를 계속 교체할 생각인가?”


워싱턴이 지금까지 추앙받는건 바로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다는 점때문이다. 워싱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두번째 임기가 끝났을때도 지지율이 높았고 많은 사람은 계속 통치하길 바랐다. 그러나 워싱턴은 장기 독재를 우려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로써 4년씩 두번, 최대 8년이란 대통령 임기 전통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법으로 정한게 아니라 관례였다. 그후 100년 넘게 이 전통이 이어졌지만 루스벨트는 2차 세계대전을 이유로 무려 4선을 하며 ‘국룰’을 깨버렸다. 그래서 이후 헌법으로 명문화됐다.)


1700년대 후반만해도 통치자에게 임기가 있다는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뮤지컬 속 조지 3세가 “지도자를 계속 교체할 생각이냐”며 의아해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단 영국왕만 그랬을까. 당시 미국민들 대다수는 워싱턴이 ‘프레지던트’란 이름의 왕으로 군림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워싱턴은 스스로 임기를 제한함으로써 선출된 권력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게 바로 대통령제의 본질임을 증명했다.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그대로 ‘민주주의’ 제도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그러자 무려 230년간 독재나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장기 집권과 일당 독재, 이에 반발한 군사 쿠데타가 빈번한 ‘무늬만 대통령제’ 국가가 많다는 점에 비춰볼때, 미국의 성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김봉중 전남대 교수는 “어느 국가든 위기는 있게 마련이다. 그 위기는 대체로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이나 그 초기에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예외였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중심으로 의외로 단단한 결집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1800년 3대 대통령으로 토머스 제퍼슨이 당선되면서 평화스러운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이 모두가 미국으로서는 행운이었다.”고 평가했다.(『미국을 움직이는 네가지 힘』p.284)   


이처럼 조지 워싱턴 이래 미국은 대통령제에 기반한 대의 민주주의 정치 실험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건국 초기 한번 세팅해놓자 이 제도는 200년이 넘도록 크게 바뀌지않고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처럼 굳이 고려나 조선시대 사극의 형식을 빌리지않고 ‘민주당’ ‘공화당’ 실명을 써 정치 드라마를 만들고, 정치적 논란도 피할 수 있는 배경엔 안정적으로 발전해온 정치문화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우리나라처럼 초대 대통령이 국부인지 아닌지 논란이 없다. 워싱턴은 그냥 국부다. 수도 이름이 워싱턴인 이유다. 감히 소련이나 북한도 모스크바나 평양을 스탈린이나 김일성으로 바꾸진 못했는데 미국은 한거다.


프로야구 응원팀처럼 굳어진 지지 정당  


미국 대학은 미국사를 미국사Ⅰ, Ⅱ로 나눠서 설명한다는데 그 경계가 바로 남북전쟁이다. 특히 미국만의 독특한 양당체제는 남북전쟁의 산물이다. 1860년 노예 해방을 내건 링컨 대통령이 공화당으로 당선된뒤 남북전쟁이 터졌고 사실상 이때부터 지금의 민주-공화양당 체제가 자리잡는다. 150년 넘게 두 당이 명칭 한번 바뀌지 않고 존재하면서 어느새 민주당과 공화당은 미국인의 실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 본 미국정치』(박홍민, 국승민)에 따르면, 대게 어린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당에 소속될 것인지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있고, 한번 형성되면 비교적 오랫동안 변하지않고 여러 선거를 걸쳐 지속되며 강화된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아버지의 고향이나 응원팀이 어디냐에  따라 자녀의 프로야구 응원팀이 결정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특히 이는 미국 투표성향분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진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을 형성하는 배경이된다. 정당일체감이란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해 심리적으로 가까이 느껴 선거뿐만 아니라 정보수집, 정책 지지 여부 등 정치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항을 결정하는걸 지칭한다.(『미국에서 본 미국정치』p.27~8) 그러니 정치 드라마를 만들면서 ‘민주당’을 ‘민국당’으로 ‘공화당’을 ‘국민당’으로 바꾸지 않아도 정치적 논란이 크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민주-공화 양당은 명칭만 그대로일뿐 지지 기반과 텃밭, 정당 이념은 180도 달라졌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가 아니라 ‘이름’만 빼고 다 바꾼 것인데, 이렇게 해서 양당은 150년이 넘는 역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려진대로 남북전쟁을 이긴 곳은 북부다. 이 승리로 북부는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공화당의 텃밭으로 변한다. 이때부터 북부에선 공화당이 기업과 중소상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민주당은 주로 유럽에서 건너온 가난한 이민자들을 대변했다. 반면 남부에선 흑인을 배제한 백인들만의 민주당(북부 민주당과 비교해 남부민주당으로 부르기도 한다)이 사실상 일당 독재를 했다.


1920년대 시작한 대공항을 거치며 정당의 관심사가 노예제에 대한 찬반보다 경제 불평등과 이에대한 연방정부의 역할론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런 정치경제적 변화 속에서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른바 ‘뉴딜연합’으로 백인과 흑인, 북부 기업인과 남부 농업인의 지지를 하나로 엮는데 성공한다. 남북전쟁 이후 사실상 ‘한지붕 두가족’이었던 북부와 남부 민주당을 하나로 규합한 것이다.

그뒤 1960년대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민권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민주당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남부 민주당의 보수 성향을 포기하고 이념적으로 진보 스탠스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링컨의 공화당을 지지해온 흑인계층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다.  


그러자 공화당도 가만히 있지않았다. 1968년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은 무주공산이 된 남부 백인 표를 공략하기위해 이른바 ‘남부전략’을 시작한다. 1980년 레이건을 거치면서 낙태 반대, 이민 제한, 공립학교 기도 부활 등 보수 색채를 선명하게 강화하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다 품은 미국인들


이제 과거의 공화당은 민주당이 되고, 예전의 민주당은 공화당이 됐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나는 너고 너는 나다!!

그래서 미국 국민들도 양당에 대해 중첩된 이미지를 갖는다. 실제 ”구체적인 정책 또는 개별 법안에 대해 미국인 과반수는 민주당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반대로 미국적 가치로 표방되는 커다란 이념적 담론에 대해서는 공화당의 입장을 더 선호한다“는 분석이 있다.(『미국에서 본 미국정치』 p.36)


다시말해 ”미국 선거조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정부 개입의 적정한 수준에 대해 물어보면 진보, 보수의 견해가 35대 65 정도로 보수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거시경제 정책은 진보, 보수가 60대 40, 교육 정책은 70대 30, 환경 정책은 75대 25로 진보에 더 가깝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보수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수준에서 진보적인데,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의 포인트를 공략해왔던 것이다.(위의책 p.53)

이건 미국만의 독특한 정치문화로 봐야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동시에 지지하는게 가능할지 생각해보라.


게다가 미국에선 상대방의 정치 성향을 따지기보다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캘리포니아나 뉴욕 사람들은 텍사스를 겨냥해 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지 묻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거 결과는 이미 구축된 지역 성향보다 남과 북의 경계주,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의 향방에 달려있다”(『미국을 움직이는 네가지 힘』p.249)

이런 흐름이 가능했던 건 남북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전쟁의 책임을 지고 처형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부전쟁 당시 남부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전쟁에 패한뒤에도 목숨을 다할때까지 남부가 옳았으며, 남부 정신이 부활해야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누구도 그를 막지 않았다.(위의책 p.250)


결국 이러한 미국만의 역사가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사극보다 정치 드라마가 더 인기가 많고, 드라마 속 대통령이 현존하는 ‘공화당’ 출신으로 설정되거나 멋있는 주인공이 ‘민주당’ 소속으로 나와도 별다른 정치적 논란이 생기지 않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참고문헌]

 『미국에서 본 미국정치』 박홍민 국승민

 『미국을 움직이는 네가지 힘』 김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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