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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Nov 14. 2023

어떻게 미국은 결정적 순간마다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지금은 LG전자로 바뀐 금성사의 브라운관 TV 제품 광고다. 자기네 제품이 튼튼하다는 걸 강조한 광고지만, 인생이 수많은 선택과 그로인한 후회의 연속이라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문구다. 

그런데 이걸 누가 모르나. 사실은 너무 잘 알아서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 공중화장실 벽면에 붙어있을법한, 읽으면 찌릿하기보단 지릿한 냄새가 먼저 떠오르는 퀴퀴한 명언쯤 되겠다. 

어디 전자제품 뿐인가. 한국 사회에선 특히 부동산이 10년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으로 기대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거나, 예상보다 더 많은 피해를 보는게 부동산 시장의 특징이다. 대로변 모델하우스에 우연히 들렀던 친구는 강남 1 급지에 입성하지만, 그냥 지나친 친구는 여전히 무주택자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야말로 부동산 투자를 잘해야한다. 단순히 영토를 획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가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정학의 대가 니컬러스 존 스파이크먼은 “지리는 가장 영속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외교정책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요소다. 장관들은 바뀌고 심지어 독재자들도 죽지만, 산맥은 동요없이 그대로 존재한다”고 분석했다.(『강대국 지정학』 p.75)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지정학이란 쉽게말해 부동산 투자와 비슷하다. 지리의 힘을 이용해 국가 안보를 극대화하는 건 목 좋은 곳을 선점하고 투자하는 행위와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적은 돈으로 로또분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겼다면, 그 나라는 지금쯤 당연히 강대국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경쟁국들이 통째로 차지하지 못하게 세계 곳곳에 지분을 넣어놨다면, 그 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슈퍼파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는데 2번의 결정적인 지정학적 투자 기회가 있었고 모두 대박을 터트렸다.   

전무후무한 부동산 대박 ‘루이지애나 매입’

개국한지 200년도 안된 미국이 이미 1900년대초 구대륙의 내로라하는 열강들을 제치고 초강대국 지위를 차지한건 독보적인 입지 선정 능력을 빼놓곤 설명할 수 없다. 건국 초기 과감한 부동산 투자로 지금과 같은 입지 끝판왕 자리에 올랐다고 봐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부동산 투자의 귀재였던 셈이다. 

대표적인 투자 성공 사례가 바로 루이지애나 구입이다. 3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중 한명인 토마스 제퍼슨은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땅을 사들였다.

제퍼슨은 “루이지애나를 소유한 프랑스는 폭풍의 씨눈이다. 이 폭풍은 대서양 양안에 위치한 국가들에 휘몰아 치고 그 여파는 그들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p.68~69)

루이 14세의 이름을 딴 루이지애나는 ‘루이의 땅’이란 뜻이다. 루이지애나는 지금의 루이지애나가 아니다. ‘재즈의 도시’ 이자 2005년 카트리나로 수천명이 죽었던 뉴올리언스가 있으며 미국 50개주에서 못사는 걸로 늘 상위 5위안에 드는 남부의 한 주라고만 생각하면 안된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멕시코만에 접해있는 지금의 루이지애나주를 비롯해 아칸소, 오클라호마, 미주리, 캔자스, 네브래스카는 물론 캐나다와 맞닿은 미네소타를 거쳐 서쪽의 로키산맥과 연결된 몬태나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땅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그리고 독일을 다 합친 넓이와 비슷하다. 

제퍼슨은 이 광활한 영토를 단돈 1500만달러에 매입했다. 지금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1평당 겨우 0.7원을 지불한 셈이라고 한다.(『삶이허기질때 나는 교양을 읽는다2』 p.331). 

야수의 심장으로 영끌투자를 해도 수만배 남는 장사인데, 불과 1500만달러로 당시 미국 영토를 두배로 늘리고, 서유럽 전체와 맞먹는 땅을 얻게 된 것이다. 인디언이든 프랑스든 스페인이든 그 누구도 북미에서 이런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를두고 미국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는 “미합중국이 투자대비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은 일은 이제껏 없었다”고 말했다.(『지리의힘』p.63) 


우선 경제적으로 나라 살림이 눈에띄게 폈다. 루이지애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미시시피강은 풍부한 수량과 운송 능력으로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됐다. 미시시피 주변의 평지는 알고보니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씨를 뿌리기만해도 자라는 1등급 토지 절반이 미국에 있고 상당수가 이곳에 속한다. 못해도 대부분 3등급안에 들어간다.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호남 평야가 5등급이라고 한다. 비료를 뿌려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삶이허기질때 나는 교양을 읽는다2』 p.332)

정치적으로도 남는 장사였다. 나라가 커지니 국내 정치가 안정되는 효과가 생겼다. 오히려 큰 나라보다 작은 나라에서 지역감정이 더 불거지기 십상이다(우리나라 정치를 보라). 실제 재퍼슨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연합체의 규모가 클수록 국지적인 정서에 덜 흔들리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미시시피강 서쪽 지역을 이방인 집안보다 우리 혈육이 차지하는게 훨씬 바람직하지 않은가?”(『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p.71)


입지 끝판왕의 상급지 갈아타기

루이지애나를 손에 넣은 미국은 서쪽으로 내달려 마침내 태평양 앞바다까지 진출했다. 1776년 시작된 부동산 투자는 70년후에 사실상 완성됐다. 대서양에서 반대쪽 태평양 연안까지 거리가 4828km나 되는 거대한 대륙국가가 완성됐다. 1819년 즈음 당시 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결정적으로 태평양 방향의 경계선을 획득한 것이 우리 역사에 위대한 시대를 열게 한다”.(『지리의힘』 p.65)

그런데 루이지애나가 없었다면? 당시 미국은 동부지역만으로도 이미 유럽의 여느 나라보다 웬만큼 큰 나라였다. 다시말해 이미 큰 평수의 1주택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만족하지 못한 셈인데, 왜 이렇게 집요하게 부동산 투자에 나섰을까. 

조지 프리드먼은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에서 “제퍼슨 등은 대륙국가로서의 힘이 없으면 미국은 파괴되리라고 믿었다. 북아메리카에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국가들과 정착지와 마찬가지로”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북아메리카의 일부로 남는다면 자력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는 것이다. 북미 대륙에 유럽처럼 수많은 국가들이 어깨를 맞대고 빼곡히 들어찬다면, 역시 유럽처럼 갈기갈기 찢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p.88) 


게다가 영토가 갑절로 커지면서 미국 안보에 전략적 깊이를 더해줬다.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 태평양이란 엄청난 자연 장벽을 갖게 되면서 대륙 밖의 어떠 나라도 미국을 침공하기 어려워졌다. 땅덩이가 작으면 외부의 적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기 십상이다(우리나라 역사를 보라). 하지만 땅 크기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면 외부에선 아예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설사 침략해도 백전백패다.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는 호기롭게 러시아를 침공했지만 영토가 너무 넓어 긴 보급로를 유지하지 못해 처참하게 패배했다. 19세기말에 이르면 당시 유라시아대륙 어떤 국가들이 연합한다해도 미국의 안보에 유의미한 위협을 가할 수 없게 된다. 신생국 미국은 마침내 누군가 침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동서 해안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떨어져 있다보니 오히려 영향력이 계속 커지게 된다. 국제관계에서도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 대다수 국가들은 같은 지역에 있는 이웃에 대해선 언제 침략자로 돌변할지 몰라 경계했지만, 멀리 바다 건너 있어 쳐들어올 가능성이 적은 미국엔 앞다퉈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루이지애나 땅을 사야한다는 순간의 선택을 통해 안으로는 전략적 깊이를 확보함과 동시에, 밖으로는 국제질서에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셈이다. 제퍼슨과 앤드루 잭슨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의 생존을 위해선 북미 대륙을 반드시 하나의 국가로 건설해야한다는 판단을 했고 이 선택은 70년만에 세계를 지배할 지리적 여건을 만들어냈다.

 

‘소련 봉쇄’라는 부동산 리츠 투자

그런데 미국의 성공투자 스토리가 여기서 끝났다면 절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다. 20세기 들어 글로벌 강자로 부상했지만 유라시아 대륙엔 여전히 경쟁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대륙의 신생국 소련(러시아가 아니라)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소련은 미국과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파트너였지만 전쟁이 끝나자 패권국으로 급부상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사실상 초토화되면서 무주공산이 된 유라시아 대륙을 독차지하게 된 셈이다.  

거대하고 단일한 영토는 초강대국으로 가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일단 울타리를 만들었으면 다른나라가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하는 법. 여기엔 두가지 길이 있다. 내부에서 울타리를 더 튼튼히 보강하거나, 아니면 아예 문밖 마을로 나가 잠재적 위협인물을 미리 꺾어놓는 것. 

미국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자기집 울타리만 튼튼히 유지보수하는 걸로는 불안하니까 이참에 동네 전체의 치안에 관여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게 바로 미소 냉전의 시작이 된 소련 봉쇄정책(A Containment Policy)이다. 봉쇄 방법은 간단하다.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을 갈아끼워 거리를 환하게 밝힌다든가 주요 길목에 경비실을 설치해 낯선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난한 집들이 이웃 동네 힘센 부자에게 줄서지 않도록 쌀도 대주고 돈도 대주는 것이다. 다시말해 소련의 팽창권역에 들어갈만한 곳을 선점해 미국의 영향권으로 만들고, 마셜플랜으로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루이지애나를 매입한건 부동산에 직접 투자한거라면, 소련 봉쇄는 우호 지분을 사들이는 부동산 리츠 투자에 가깝다.


봉쇄정책은 조지 F 케넌이 1947년 7월에 처음 언급한 용어다. 케넌은 1년전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소련의 팽창주의를 간파한뒤 본국에 전하는데, 그 유명한 ‘긴 전문’(Long Telegram)이다. 케넌은 이후  자신의 신분을 감춘채 ‘X’라는 필명으로 이 내용을 외교잡지 포린어페어에 기고하는데 핵심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대소련 정책의 주요 요소가 소련의 팽창 경향을 장기적이고 끈기 있으면서도 확고하고 주의 깊게 봉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X” the source of soviet conduct. Foreign Affair. xxv. (jul 1947), 『조지 케넌의 미국외교 50년』 p.267) 

케넌은 소련이 팽창하려는 건 서구 진영이 무엇을 하든 말든 아무 관계없는 소련 정권 내부의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케넌은 “소련의 당 노선은 국경 너머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토대로 정해지지 않는다. 소련 내부의 필요에서 비롯된다. 크렘린 지도자들은 정교하지 못해 억압 말고는 달리 통치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바깥세계를 ‘사악하고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그리는게 그러한 핑계를 정당화하는 방편이라고 분석했다.(『미국의 봉쇄전략』p.48)

아울러 케넌은 이런 내부적 요인때문에 당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소련이 언젠가는 소멸할 것으로 예측했다. 

“크렘린이 여전히 발하는 강한 불빛이 실제론 소멸하고 있는 별자리의 강한 잔광이 아니라고 그 누가 확언할 수있겠는가…소비에트 권력이 자신이 파악하는 자본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그안에서 자멸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이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과정이 착착 진행되고 잇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그리고 내생각엔 이 가능성이 유력하다)”(『조지 케넌의 미국외교 50년』 p.275~276)

케넌의 이런 생각은 곧바로 미국의 대소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케넌이 ‘소련 봉쇄 정책의 아버지’ 로 불리는 이유다. 


상대가 살만한 곳을 미리 확보하기

그럼 어느 길목을 지키고 누구를 도와줘야하는가. 바로 여기서 부동산 흐름을 살피면서 핵심 입지를 선점하는 투자 안목이 필요하다. 

케넌이 제시한건 거점방어 전략이다. 절대로 소련이나 적대세력의 손에 들어가면 안되는 지역들을 선별해 방어하는 개념이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역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추구할 이익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넌은 당시 산업화 정도와 군사력 등을 토대로 지정학적 세력권을 5개로 나눴는데, 미국, 소련, 영국, 유럽, 일본 등이다.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가 거점 방어 지역인 셈인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지역들을 열거했다. 

  a. 대서양 공동체 지역, 캐나다, 유럽 대부분. 아프리카 서부 해안 불록 튀어나온 지역. 남미 북부 블룩하게 튀어나온 지역부터 시작되는 국가들
  b. 지중해 국가들과 이란 포함 동쪽 끝까지 아우르는 중동
  c. 일본, 필리핀  

거점방어 개념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개디스 교수는 『미국의 봉쇄전략』 에서 “거점 개념은 미국에 모든 이익이 동등하게 중요하진 않다는 전제, 미국이 특정 변방 지역을 상실해도 그 상실로 인해 반드시 지켜야할 지역을 방어하는 능력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그런 상실은 용인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p.104)  

트루먼 대통령이 마셜 플랜을 승인하는 '대외원조법'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실제 지도를 펼치고 확인해보라. a,b,c 지역을 전부 연결하면 소련이 밖으로 팽창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지구라는 바둑판에 포석을 잘 두어 소련을 미생으로 묶어놓는 전략이다. 

당시 거점방어 지역에서 한반도는 제외됐다. 그때만해도 남한은 미국입장에서 중요한 투자처가 아니었던 셈이다. 만약 한반도가 소련에 먹히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딱히 손해는 없는 자투리땅 정도 되겠다. 1950년 1월 미국의 방위 목표에서 한국을 제외한 이른바 ‘에치슨 라인’이 나온 것도 이때문이다.   


거점 투자에서 자투리 땅까지 싹쓸이 투자로

거점방어 전략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크게 변한다. 애초 케넌은 봉쇄 전략이 군사적 수단보다 마셜플랜처럼 경제적 수단에 집중해야한다고 봤다. 그런데, 소련의 위협(엄밀히 말하면 소련의 위협이라는 미국의 불안감)이 짧은 시간 급격히 커지면서 군사적 수단의 비중을 늘려야한다는 주장이 비등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에치슨 라인으로 거점 방어의 상징이 된 에치슨 장관이 대표적이다. 

그즈음 미국에선 안보 이익을 필수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으로 나누기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커졌다. 아무리 핵심적 이익이 걸리지 않은 주변부 지역이라도 막상 소련의 공격을 받으면 갑자기 핵심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거점을 선별해 방어하는 기존의 케넌식 전략 대신, 변경을 따라 늘어선 지점들이 골고루 중요한만큼 모든 변경을 방어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된다. 농구경기로 치면 지역방어가 올코트 프레싱 전략으로 바뀐 것이다. 목 좋은 곳의 알짜 부동산에만 투자하는게 아니라, 자투리 땅이든 못난이 땅이든 어디든 다 사재기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세계 그 어디서든 소련이 영토를 취득하거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더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소련 봉쇄전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게 바로 트루먼 행정부가 1950년 내놓은 군사안보전략 NSC68이다. ‘냉전의 서문을 연 문서’인 NSC68은 소련 봉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군사적 대응을 맨 앞에 뒀다. 존 루이스 개디스 예일대 교수는『미국의 봉쇄전략』에서 “NSC68은 어떤 도발이라도 그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결국 이미 때는 늦고 대응할 힘도 없게 되며, 회의와 자책에 빠지고 대안이 점점 줄어들어 절박해지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경고했다”고 적었다.(p.158)

당시 봉쇄 정책의 방향성을 놓고 워싱턴에선 설왕설래가 이어졌는데, NSC68이 힘을 얻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한국전쟁이 터진 것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에치슨 선언은 스탈린에게 용기를 줬다는 분석이 다수설이다. 남침을 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거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기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막상 38선을 넘어가자 갑자기 트루먼은 소련과 한판 붙어보기로 결심한다. 스탈린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불과 몇달전만해도 ”한반도엔 관심없거든“이라며 빼놓고 선을 그어놓고선, 막상 전쟁이 나자 ”소련이 먹는건 못보겠거든“ 한 셈이다. 

당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안보를 의탁할만한 존재인지 시험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도 이를 모를리 없었다. 

결국 트루먼이 한국전쟁에 뛰어들기로 한건 남한 자체가 핵심일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공산주의 노골적 공격을 저지하는데 실패하면 보다 중요한 지역에서 미국이 쌓으려고 애쓰던 신뢰가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p.241) 

이때문에 정작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뺐던 에치슨은 나중에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역사는 미국에 친절했다”

봉쇄 전략은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이익과 직접 연관이 없는 지구 구석구석 자투리땅까지 군사적으로 개입해 소련이 탐내지 못하게 막는데는 많은 비용과 불필요한 노력이 들어간다.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특히 NSC68은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게 수호해야할 이익을 설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이익을 지속적으로 수호하기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순에 빠지기도했다.(『미국의 봉쇄전략』 p.202)  

하지만 미국이 봉쇄 전략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북미대륙의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만 안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냉전이 시작되지 않았을진 확실치않지만, 냉전이 끝나지 않았을 것임엔 틀림없다. 

결국 미국은 두번의 부동산 투자에서 대박을 터트리면서 지금의 패권국에 올라섰다. 한번은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평생 먹고살 걸 마련했고, 다른 한번은 소련 봉쇄로 냉전을 끝내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스파이크먼의 진단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역사는 미국을 친절하게 대우했고 지리는 미국에 상당한 혜택을 주었으며 기회는 잘 활용됐다. 그결과 오늘날 미국은 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체가 됐다”(『강대국 지정학』p.100)


 [참고문헌]

『강대국 지정학』 니컬러스 존 스파이크먼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조지 프리드먼

『미국의 봉쇄전략』 존 루이스 개디스

『삶이 허기질때 나는 교양을 읽는다2』 지식브런치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

『조지 케넌의 미국외교 50년』 조지 케넌

『지리의힘』 팀 마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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