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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May 28. 2023

왜 미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을  벌였을까

 

20년만의 야반도주

 

2021년 8월 30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콘 벙커에 모여 초조하게 화면을 응시한다. 카메라가 가리키는 곳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AP통신 등에 따르면, 침묵이 너무 무거워 바닥에 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마침내 11시 59분, C-17 수송기가 활주로를 이륙하자 여기저기서 숨소리가 들렸다. 그건 안도감일까 아쉬움일까.

다음날, 미 국방부는 사진 한장을 공개한다. ‘아프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The last American soldier to leave Afghanistan)이라는 제목을 달고. 미 82공수사단장 크리스토퍼 도너휴 장군이 부하들이 전부 탑승한걸 확인한뒤 마지막으로 C-17 에 오르는 장면이다. 야간투시경 푸른 빛깔의 마지막 미군이 발산하는건 안도감일까 아쉬움일까.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시작돼 무려 20여년간 이어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그렇게 끝이났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오랜기간 전쟁을 치렀지만 남은 것이라곤 세계 최강 미군이 야반도주하는 이 한장의 사진 정도다.

<미 국방부, AP>

그후 2년여. 오랜만에 전쟁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했건만 왠지 어색하다. 지금처럼 전쟁이 멈춘 평시가 미국엔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데, 마치 월요병때문에 쉬어도 편치않은 일요일 오후쯤이랄까.

미국은 전체 역사의 4분의 1동안 전쟁을 했다. 2차 대전 이후로 좁히면 2분의 1을, 다시 21세기로 좁히면 거의 매일 전쟁을 해왔다. 사실상 전쟁이 일상이었던 나라였기에 전쟁이 멈춘 지금이 오히려 어색한 순간이다. 말하자면 비정상의 일상화가 미국의 또다른 모습이다.


미국, 역사의 4분의 1을 전쟁한 나라


미국은 건국이래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영국 식민지 신세에서 전쟁을 치르고 독립을 쟁취했으니 탄생부터가 전쟁이다.   

쑥과 마늘만 먹던 곰이 인간으로 변신했다거나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왕이 나라를 창건하는 건국 신화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전쟁의 역사 만큼은 여느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였던 앨런 그린스펀과 이코노미스트지 정치에디터 에이드리언 울드리지에 따르면, 미국은 독립전쟁을 시작한 1775년부터 2014년까지 24.6% 기간이 전시였다.(『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p.315)

전체 역사 240여년의 4분의1인 59년 동안 전쟁을 치른 셈이다. 이후로도 아프간전쟁이 2021년 8월까지 이어졌으니 지금은 소수점 뒤가 늘었다. 정확히 26. 6%가 전시기간이다.

미국은 1775년부터 영국에 맞서 8년간 싸워 독립한뒤 30년이 지난 1812년 다시 영국과 전쟁을 치렀다. 그로부터 34년뒤 멕시코와 싸웠고 약 13년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그후 북미 대륙의 인디언 국가들과 전쟁이 이어졌고 1898년엔 스페인과 전쟁이 붙었다. 다시 16년후 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23년후 2차 대전이 일어났다. 뒤이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이 숨가쁘게 이어졌고 15년후엔 걸프전쟁이 터졌다. 그로부터 다시 10년후인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고, 사실상 21세기 내내인 20년동안 전쟁을 계속했다.

전쟁의 성격도 가지가지다. 초기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영토를 확장하거나 식민지를 뺏기위해(멕시크전, 스페인전) 전쟁을 벌였다. 나라의 국체를 결정하기위해 내전도 감수했다. 반면 하고싶지않았지만 어쩔수없이 휘밀리거나 (1, 2차 세계대전), 쓸데없이 참견한 전쟁(베트남전)도 있다.

이쯤되면 미국을 상시적 전시동원 국가로 봐도 무방하다. 북한식 선군정치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전쟁으로 국력과 영향력을 확대해온 전쟁 친화적인 국가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중 엔드루 잭슨, 재커리 테일러, 율리시스 그랜드, 시어도어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5명이나 군 지휘관 출신이다.


미국은 전쟁광인가


미국은 왜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을 해왔을까. 전쟁광이라서? 아니다. 고대 지중해 도시국가든 현대 강대국이든 안보를 위해 전쟁하는 경우는 있어도, 전쟁이 좋아서 전쟁을 하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호전적인 국가가 정작 국내에선 고도의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전시동원체제를 국가 통치모델로 삼는 병영국가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주의국가이다.  

그럼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위해서?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미국은 지구 반대편까지 군사력을 투사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지만 제국이 되려는 의도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특유의 고립주의 기질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참고: 왜 미국은 툭하면 고립의 유혹에 빠질까)

<나무위키>

제국이 되려는 의지도 약하지만 실익도 크지않다. 바로 경제적 이유나 무역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제국을 구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겨우 13%에 불과한데, 거의 50%나 차지하는 독일이나 20% 이상인 중국과 비교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동시에 미국은 세계 최대 수입국이지만 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5%다. 해외무역은 미국에 유용하긴 하나 그것을 보장하기위해 제국을 강요해야할 만큼 유용하진 않다는 뜻이다.(『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p.137~138)

결국 질문을 바꿔야 의문이 풀린다. 미국이 왜 자기나라 역사의 4분의1동안 전쟁을 했는지가 아니라 왜 과거와 근래의 전쟁이, 구체적으론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전쟁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지를 물어야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독립을 하려면 싸워야했고 외세가 나라를 위협하니 싸워야했으며, 연방을 탈퇴하고 나라를 분단시키려는 세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없으니 싸운 것이다.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를 극단의 시대, 2차 대전까지는 파괴의 시대로 규정했는데,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판치는 극단과 세계의 파괴를 막을 유일한 보루는 미국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더 큰 파괴를 막는 역설의 시대였던 것이다. 문제는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다.

  

미국은 전쟁의 시대가 끝나도 전쟁을 멈추지 못했을까


미국은 오히려 전쟁의 시대가 끝나자 더 심하게 전쟁의 늪에 빠졌다. 1945년 9월 2일 2차 세계대전 종료후 지금까지 77년여간 전쟁기간은 44여년(한국전 1950~1953, 베트남 1955~1975, 걸프전 1990~1991, 아프간전 2001~2021)으로 무려 57%에 달한다. 2년에 한번꼴로 전쟁을 치른 셈이다.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정작 미국의 전쟁은 더 격화되는 아이러니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 왜 2차대전이 끝났음에도 미국은 전쟁을 멈추지 못했을까. 여기서부터 미국은 그동안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소를 위해 물을 뺀 워싱턴 D.C 리플렉팅풀


미국의 선택이 달라진 결정적 사건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다. 독립국가가 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자국 영토가 공격당하자 미국 밖의 패권국이 존재하는한 미국의 생존과 안녕은 어렵다는 생각이 각인된 것이다. (1812년 영국이 워싱턴까지 쳐들어와 백악관을 불태운적이 있지만, 당시만해도 독립 초기인데다 현재의 미국 국경이 완성되기 전이라 영토개념이 지금보다는 희박했다)

진주만 공격은 미국에 어디서 위험이 출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줬다. 이제 미국은 진주만 공습과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않도록 끊임없이 대비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됐다. 끊임없이 관여하지 않으면 위험을 조기인식하고 제거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때부터 미국의 안보전략은 고립의 전통을 잠시 뒤로 미뤄놓고 적극적인 관여 정책으로 자리바꿈한다. 미국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 위협에 맞서는 방식으로서 전쟁을 하는게 아니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위협이 될 수 있는 리스크를 미리 제거하는 예방전쟁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소련과 양강구도를 형성한 냉전시기 이러한 안보개념은 더 고착화된다. 그 결과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이 벌어졌으며, 제3세계에서 반미정권을 전복하거나 친미정권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하는 정치 공작이 횡행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이끌던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세계 전체가 이념적으로 안전한 곳이 될때까지 미국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고 선언했는데, 당시 미국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미국외교의 거대한 환상』 p. 263)

소련이 붕괴되자 이런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듯 했다. 주적이 사라졌으니 이젠 예방전쟁을 끝낼때도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80여년전 ‘진주만 쇼크’를 능가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다름아닌  ‘9ㆍ11 테러’다. 하와이의 진주만은 육지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영토지만, 9ㆍ11은 북미대륙안에서, 그것도 미국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더 격앙됐다.

그결과 미국은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2000년이후로 좁히면, 21세기 들어선 최근 2년여를 제외하곤 하루도 빠지지않고 전쟁을 치르게 된 이유다. 미국은 탈냉전후 명실상부 1인자로서 자유주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계 곳곳에 개입했고 더 많은 전쟁에 연루됐지만, 그 결과는 알다시피 대체로 실패했다. 그 책임의 한축에는 바로 네오콘이 존재한다.


네오콘이든 진보든 전쟁엔 같은 마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전략을 고안했는데, 세 가지 기본 전제가 바탕에 깔렸다. 그레이엄 앨리슨에 따르면, 첫째 소련의 존재자체가 위협이란 점, 둘째 미국 외교의 근본 목적은 “자유국가인 미국의 기본적인 제도와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란 사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동맹관계로 얽히는 걸 피해온 그간의 태도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하는 것이다.(『예정된 전쟁』 p.310)

냉전이 끝나며 첫째 조건은 중국으로 대체됐다. 미국은 정권에 따라 고립과 관여 정책이 변하기도 하기때문에 셋째 조건 역시 유동적이다. 변하지 않는건 두번째 전제, 즉 미국식 가치를 수호해야한다는 인식 뿐이다.  

미국식 가치를 수호해야한다는 인식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조지 프리드먼은 “미국이 우선적으로 추구해야하는 사명은 도덕적 미덕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고 미국의 힘을 이용해 미국이 표방하는 원칙을 수호하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며 “여느 나라처럼 행동하면서 자국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만 방어한다면 미국의 사명을 저버리는 셈이란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문제는 대부분이 나라들이 미국이 세운 도덕적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다는 점이며 이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p.131)


이런 인식을 체화한 세력이 바로 네오콘이다. 미국이 탈냉전 이후에도 전쟁을 더 자주 벌인건 네오콘을 빼놓곤 생각하기 힘들다. 네오콘은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세력으로 힘이 곧 정의라는 믿음아래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을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안녕을 위해선 미국식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세계 구석구석에 전파해야하며 이를위해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01년 부시 정권이 집권하며 네오콘의 거두 딕 체니를 비롯해 도널드 럼즈펠트, 존 볼턴 등 네오콘이 전면에 부상한다. 마침 9ㆍ11이 터지면서 이들은 날개를 단다. 미국적 가치를 위협하고 말살하려는 세력이 과거의 공산주의에서 중동의 테러리즘으로 바뀌었더라도 여전히 국가적 차원의 전쟁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름을 딴 ‘부시 독트린’을 내놓고 보다 합법적으로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뉴욕이 공격당하자 응징이 필요하다는 생각엔 동의했지만, 누구를 응징해야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인식하는게 쉽지않았다. 과거엔 '공산주의 화신'이자 '악의 제국' 소련이 명확히 존재했지만, 소련이 사라진뒤 비집고 들어온 테러리즘의 실체는 불분명했다. 그러니 소련에 대응하듯 군사력을 동원하는건 과도한게 아니냔 의문이 생길법한 것이다. 그러자 네오콘은 일반인들이 적을 '쉽게 인식하는걸' 돕기위해, 그래서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얻기위해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바로 테러지원국이자 '악의축'의 한축으로 명명된 이라크다.

딕 체니 부통령의 생애를 그린 블랙코미디 영화 '바이스' <넷플릭스>


그러자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하고 오사마 빈라덴을 잡겠다며 황량한 아프간 산악동굴지대로 무모하게 들어가더라도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네오콘은 미국식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뿐 자신들이 호전광이라서거나 군산복합체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외치는게 아니라고 억울해한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C-17 수송기를 타는 마지막 미군의 사진은 네오콘의 정책이 공식적으로 실패했다는 걸 증명한다. 21세기들어 미국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네오콘의 거친 신념이 실제로 구현되면서 기회를 잃은 셈이다.  

무엇보다 애당초 도덕적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미국의 힘과 무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모순에 가깝다. 공격적 현실주의이론의 대가 미어샤이머는 애당초 전쟁을 도덕적 신념에 근거한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 수단으로 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자유주의 국가는 다른 나라에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 뿐만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의도에서 전쟁을 치르려는 경향을 갖고있다. 그것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안보위협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기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상에 독재국가들, 심각한 인권유린 국가들, 군사적 위협이 되는 나라들이 결코 적지않다는 점을 생각할때 미국이 자유주의적 패권을 자유롭게 추구하게 놔둔다면, 영구적인 전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미국외교의 거대한 환상』 p.265)


그런데 네오콘만 전쟁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미국 민주당이나 좌파 역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볼때가 있기때문이다. 이들 역시 때로는 미국이 힘과 영향력을 이용해 건국 토대인 자유민주주의 원칙인 인권을 침해하는 정권을 처벌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네오콘 세력보다 무력 사용을 조금 자제하는 입장이지만 르완다나 리비아처럼 국가가 자국민을 해치는 경우에는 무력사용을 지지한다. 아프간전쟁은 부시정권이 일으켰지만, 뒤이어 들어선 오바마정권은 곧바로 철수하지 않았다. 프리드먼은 ”좌익과 우익은 서로가 상대방과 반대 입장이라고 여기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을뿐 미국의 힘은 미국의 원칙을 투사하는 데 써야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했다.(『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p.132)

미국은 전체 역사의 4분의 1동안 전쟁을 해온 전쟁 친화국이지만, 2차 대전 이후로 좁히면 2분의 1을, 다시 21세기로 좁히면 거의 매일 전쟁을 해왔다. 전쟁과 광기의 시대가 지나간 뒤에 오히려 미국의 전쟁은 격해졌다. 미국식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자신의 생존과 안녕을 도모할수록 정작 전쟁 빈도는 급증했고 이는 결국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생명과 자유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위한 전쟁으로 정작 자유가 억압되는 건, 마치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체벌을 한다거나 연인을 너무 사랑해 떠난다는 것과 같다. 말이 안된다는 말이다.  


  [참고문헌]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 조지 프리드먼 2020

『미국외교의 거대한 환상』 존 J 미어샤이머 2020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2020

『예정된 전쟁』 그레이엄 앨리슨,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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