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걸 정당화할때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다이내믹한 정치의 본성을 나타내는 레토릭쯤 된다. 그런데 정치판보다 더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국제관계다. 국제정치야말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치가 그냥 생물이라면 국제정치는 파닥파닥 뛰는 활어쯤 된다. 정치가 일반 커피라면 국제정치는 원빈 커피다.
대표적으로 미일관계가 그렇다. 진주만을 공습하고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맞으며 싸운 게 불과 80년전인데, 지금은 우주 방어까지 논의하는 사이가 됐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서 비켜서있는 특이한 관계가 있다. 바로 북미관계다. 미국과 직접 싸운 나라중 지금까지 적대관계는 사실상 북한밖에 없다. 왜 그럴까.
역사적으로 슈퍼 파워 미국은 많은 나라와 싸우며 힘을 키웠다. 1783년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영국을 이긴 이래 2022년 아프간에서 철수할때까지 스페인, 독일, 일본, 북한, 베트남, 파나마, 이라크 등 많은 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전 의장에 따르면,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전체 역사의 24.6% 기간 전쟁을 했다. 나흘에 하루 꼴로 싸운 셈이다. 역대 미 대통령중 시어도어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5명은 군 지휘관 출신이다.
그런데, 북한만 제외하곤 미국과 직접 총부리를 겨눈 나라들 대부분은 미국과 우호관계로 발전했다. 240여년전 독립을 놓고 전쟁했던 영국, 120여년전 쿠바를 놓고 전쟁을 벌인 스페인은 나토로 묶인 동맹관계다.
1,2차 대전에서 세게 맞붙은 독일 역시 유럽의 최우방이 됐다. 유럽에 독일이 있다면, 아시아엔 일본이 있다. 가미카제 자살공격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주고받은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우주단위로 발전하고있다.
혹시 이들 나라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감히 미국에 다시 대들기 무서워서일까. 참패의 경험이 깊이 각인돼 아예 미국 편으로 돌아 선 것일까. 그렇다면 냉전이후로 좁혀보자.
50여년전 베트남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이겼지만 지금은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던 정식 수교국이 됐다. 6.25때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펼쳤고 여전히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중국은 미국과 국교를 맺은지 40년이 넘는다. 지금은 미중갈등이 다시 심화되고 있지만 중국과 미국은 엄연히 국교를 맺은, 대놓고 적국은 아닌 셈이다.
그럼 미국과 불편하거나 적대적인 러시아, 이란, 쿠바 등은 어떨까.
러시아는 우크라전쟁 이후 급속히 사이가 악화됐지만 냉전이후 이정도로 나쁘진 않았다. ‘악의축’으로 불렸던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까진 미국의 무기를 수입하던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였다. 닉슨 대통령은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적 대리인으로 이란을 선택했다. 한때 소련의 미사일 전진기지로 각광받았던 ‘미국의 역린’ 쿠바도 2015년 국교를 다시 정상화했다.
이들 나라는 미국과 관계가 좋을때도 나쁠때도 있었는데, 북한처럼 일관되게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미국과 직접 전쟁을 벌인 경험은 없다.
결국, 미국과 직접 전쟁을 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수 없는’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건 북한뿐이다. 한국전쟁에서 같이 싸운 중국도, 배후 지원 소련도 입장이 변했는데, 북한만 여전히 미국과 ‘철천지 원쑤’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북미관계만 놓고보면 어제의 적은 그냥 적이다. 국제정치는 생물이 아니라 고사 식물이다.
왜 북미관계만 예외적 법칙이 적용되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 이유는 전쟁의 성격에서 찾을수 있겠다.
한국전쟁은 냉전의 서막이란 의미가 크다. 북미가 싸웠던 한반도는 2차 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냉전의 약한 고리였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패권 다툼이 고조되면서 양 진영의 갈등은 결국 물리적인 폭력으로 분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기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한반도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던 셈이다.
냉전 초기 미소 양 진영이 진검 승부를 벌인 전쟁은 3년을 끌었지만, 어느쪽도 이기지 못하고 중단됐다.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은 전쟁은 어정쩡한 휴전상태로 이어졌다. 미국의 핵우산과 소련의 철의 장막이 직접 대면하는 최전선이 수십년간 긴장을 유지해왔고, 이는 북미간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장애가 된 것이다. 결국 냉전의 지정학이 순도 99%급으로 응결된게 바로 북미관계인 셈이다.
반대로 대부분의 국가는 냉전 이전에 미국과 싸웠다. 대표적인게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이다. 미국은 이들이 다시는 전쟁을 꿈꾸지 못하게 철저히 밟아놓으려고 했으나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는 전위대로서 미국 편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지정학적 효용가치덕에 미국은 이들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급속한 우방화를 선택한 것이다.
베트남전의 경우 비록 냉전 시기 발발했지만, 냉전과 직접적 연관이 약한 독립전쟁 성격이 강했다. '냉전의 설계자'로 유명한 조지 F. 케넌은 베트남전에 대해 "모스크바는 당시 베트남에서 권력을 잡으려한 호치민의 시도와 거의 관계가 없었다"며 "호치민은 본래 민족주의자였으며 비록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수사적으로 활용하긴했지만 공산주의 세계와 미국 사이 일정한 균형을 유지할수 있다면 기꺼이 반겼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정학적으로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물러설 수 없는 교두보라고 하기엔 전략적 중요성이 약했다. 미국과 베트남이 직접 전쟁을 치르고도 이후 관계가 복원된건, 베트남전이 냉전의 대리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막을 내린 이후에는 왜 북미가 화해하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냉전 직후인 90년대가 그랬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소련이 망하고,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어쨌든 우방인 중국이 미국편에서 경제성장에 집중할때, 북한은 갑자기 고립무원 신세가 됐다. 체제보장의 흐름에서 94년 북미제네바 합의가 나왔다. 무산됐지만 YS와 김일성간 남북 정상회담도 목전에 있었다. 클린턴-DJ 정부 시절인 2000년엔 결국 울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 교차 방문하며 북미수교 직전까지 갔다.
결국 양측은 서로 총부리를 겨눈뒤 40여년이 지나 적대관계를 청산할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속내로 시간을 끌면서, 그사이 김일성이 죽어 북한 내부 권력이양 문제가 불거지면서, 클린턴에서 부시 정부로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미국과 직접 싸운 나라중 여전히 북한만 ‘철천지 원쑤’로 남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