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9일. 주말을 앞두고 마음도 가벼운 금요일 아침 7시 기자실이 갑자기 술렁였다. “백악관 곧 중대발표” 미국발 속보였다. 청와대(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관계자들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돌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글쎄, 들은게 없는데…”
알고보니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실에 직접 들러 “한국이 곧 중대발표를 할것”이라고 깜짝 발언을 한 것이다. 미국은 목요일 저녁 시간. 퇴근하려 짐싸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다시 노트북을 꺼냈다.
이후 정의용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 백악관 앞 잔디밭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음과 같은 발표를 한다.
몇달간 이어진 정신없는 나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20여년만에 다시 북한과 미국이 가장 근접하는 주기의 시작이었다.
북한과 미국 관계는 마치 서로 다른 주기로 공전하는 행성과 같다. 각자 크기가 다른 타원형의 궤도를 돌다보니 만날 기회 자체가 굉장히 드물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보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는것보다 북미가 진지하게 마주앉는게 훨씬 더 어려웠다. 미국이 우호적일때 북한이 마음을 닫거나, 반대로 북한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됐을때 미국은 관심이 없는 식이다.
그 주기는 냉전이 끝난후 대략 20년에 한번 꼴이다. 가장 최근은 앞서 말한 2018~19년의 북미정상회담 시기이고, 그 직전은 20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 북미는 20년 주기로 가까워졌는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주목할만한건 한미 정부 성향의 엇박자 탓이 크다. 다시말해 우리 정부가 진보성향이면 미국에선 보수인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고, 반대로 한국에서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은 진보인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갔다.
북핵문제는 90년대 초반 탈냉전 흐름속에서 시작됐다. 마침 93년 한미에서 김영삼-클린턴 정부가 나란히 출범했는데, 북핵문제와 관계 정상화가 본격적으로 한미동맹의 주요 의제로 부상한다. 이후 한국에선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까지 7명이 등장했고, 미국에선 부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5명의 정권이 들어섰고, 이 문제는 여전히 최우선 현안이 됐다.
그런데 30여년간 한국과 미국 정권의 정치 성향이 겹치는 건 4년 5개월에 불과하다. 무려 25년여간 진보-보수가 엇갈리며 디커플링이 진행된다. 지금도 윤석열-바이든 정부는 보수와 진보의 엇박자 정권이다.
눈에띄는건 20년 주기로 찾아온 북미관계의 최근접 시기가 한번은 성향이 맞을때, 다른 한번은 성향이 다를 때였다는 점이다. 즉 김대중-클린턴 정부 시기의 진보 코드가 맞을때, 다른 한번은 문재인-트럼프 정권의 엇박자 시절이다.
우선 첫번째 주기는 1998~2000년이다. 김대중 정권 전반기이자 클린턴 집권 2기의 후반기와 겹친다. 처음으로 한미 모두 진보정권이 들어서며 코드가 맞았는데, 이는 북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97년 김영삼에서 김대중 정부로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94년 김영삼-김일성 첫 남북정상회담이 성사 직전 무산된후 김영삼 정부가 대북 강경기조로 선회한 것과 대비된다.
북미관계도 급진전됐다. 2000년 10월 김정일의 최측근이자 군부를 대표하는 실력자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에 갔다. 조명록은 백악관을 방문한 첫 북한 고위급 인사였다. 곧바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답방했다.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위한 사전답사였다.
김정일과 올브라이트는 주석단에 앉아 10만명이 동원된 대규모 카드섹션 공연을 관람했다. 대포동 미사일이 날아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러자 김정일이 올브라이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때는 김대중-클린턴 정부의 원활한 한미관계가 우리정부의 대북정책 자율성 넓혀주고, 이에따른 남북관계 진전이 북미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시기였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점진적 개혁 개방을 유도하려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괘를 같이하며 멀어지던 북한의 궤도를 강하게 끌어들였다.
하지만 무르익던 관계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플로리다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끝에 승리하면서 급변한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대로다. 미국과 관계 정상화에 기대가 부풀어있던 북한은 갑자기 ‘악의축’으로 전락했다. 짧은 시간 옷깃만 스친 북미는 기약도 없이 다시 각자의 머나먼 공전 궤도로 돌아간 셈이다. 클린턴은 훗날 “나한테 1년만 더 있었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북한과 미국의 거리가 다시 가까워진건 그로부터 20여년후. 앞서말한대로 문재인-트럼프 정권 시기다. 마치 4년 임기 미국정부와 5년 단임의 한국정부가 최소공배수를 맞추듯 공교롭게 20여년만에 기회가 찾아온다.
북미정상이 만나기 직전 무산된 1차 시기와 달리 이번엔 실제 만남이 성사됐다. 그것도 무려 3번이나.
흥미로운 점은 한미간 진보-보수 성향 차이가 났음에도 북미관계 개선의 기회가 왔다는 점이다. 정권 성향이나 코드가 다른 디커플링 기간이었고, 역사적으로도 지난 30여년중 25년이나되는 엇박자 기간동안 이렇다할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않았음에도 이 틀을 깨고 가장 극적인 흐름이 만들어진건 왜일까.
주목할건 트럼프라는 개인적 캐릭터다. 북미관계는 그동안 낮은단계부터 계단을 밟아올라가는 바텀업(Bottom Up) 스타일이 일반적이었다. 시간이 많이 드는 귀납적 방식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가장 높은 정상단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톱다운(Top Down) 스타일을 구사했다. 기존 북미관계선 한번도 사용되지 못한 방식이다. 전격적인 북미정상회담은 톱다운 방식의 대표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은 이를 너무 기대한 나머지 “고르디우스 매듭 끊듯 일괄 타결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예측했다 두고두고 발목이 잡혔다)
트럼프는 기존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북한 이슈를 우선순위로 끌어올렸다. 역대 대통령의 리스트에서 북한은 늘 뒷전이었다. 백악관 오벌오피스 책상에 미국 대통령의 투두 리스트(To Do List)가 놓여있다면 중동, 중국, 유럽, 러시아, 이란 등으로 이어졌고, 북한은 맨 아래나 페이지를 넘겨야 나오는 수준인 것이다.
사실 북미관계에서 을의 위치는 전적으로 북한이다. 북한의 위시 리스트(Wish List) 맨 위엔 미국의 관심끌기가 적혀있다. 핵을 실험하고 미사일을 쏴대는 것도 미국의 관심을 붙잡아 체제보장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여느 대통령과 달리 북한을 앞쪽으로 끌어올렸고, 20년만에 다시 북미가 가장 근접한 거리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모두가 아는대로다. 북미는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두번 만나고, 판문점에서도 만났지만 사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고, 김정은은 지난해 역대 최대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다시 짧은 시간 스친 북미는, 이번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지만 서로의 입장차를 줄이지못한채 다시 각자의 머나먼 공전 궤도로 돌아간 셈이다.
지난 30년간 북핵문제나 북미관계는 수축과 이완의 무한 루프였다. 외연을 확장하는 듯했지만 알고보면 더 큰 원을 그릴 뿐이었다. 결국 지난 30년간 75%나 되는 한미정권 성향의 엇박자 기간이 해법 도출을 어렵게 한 원인중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사이 미국과 북한 자체가 변했다. 미사일만 날리던 북한은 그 속에 핵을 실을 능력을 갖게됐다. 90년대 클린턴 정부는 핵 없는 북한을 마주했지만, 2023년의 바이든 정부는 핵을 쥔 북한을 상대해야 하기에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도 접근법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알 수 없다. 현재로선 오랜 기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20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