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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Mar 12. 2023

왜 미국은 과거사 문제에서 우리 편을 들지 않을까

2015년과 2023년, 그리고 웬디 셔먼

“민족주의 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지역 협력의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2015년 2월말, 미국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작심하고 발언한다. 미국 국무부 서열 3위가 사실상 한국을 향해 언제까지 과거사에 얽매여 있을거냐며 공개적으로 훈계를 한 거다. 미국 고위급 인사가 대놓고 반성은 커녕 과거사 지우기에 나선 일본 아베정권을 두둔한거다.

3.1절을 불과 하루앞두고 나온 ‘값싼 박수’ 발언에 우리나라는 발칵 뒤집어졌다.

 정치권은 물론 진보보수 가릴것없이 망언에 가깝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박근혜정부도 상황이 엄중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국안에서조차 부적절하단 비판이 나왔다. 셔먼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일단 물러났고 이때문인지 실제 8개월 뒤에 물러났다. 그럼에도 그전까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개 비판하던 미국 민주당 기류가 갑자기 달라진게 아니냔 의구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해 말 10억엔을 받고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못박은 위안부합의가 전격적으로 타결된다.

웬디 셔먼 <파이낸셜타임스>


그로부터 8년후. 지난 2월 13일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워싱턴 D.C를 찾는다. 우리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배상방안을 막바지로 다듬던 시기다. 조현동 차관은 우리정부 방안을 들고 셔먼 국무부 부장관을 따로 만났다. 바로 그 웬디 셔먼이다. 8년전 “과거사를 거론해 값싼 박수를 받는다”며 오히려 피해자 한국을 훈계했던 그 셔먼이다.

셔먼은 우리 정부가 만든 해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백악관 뒷편에 있는 블레어 하우스로 조 차관을 불러 와인을 같이하며 오랜시간 얘기를 나눴다. 8년전 ‘값싼 발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렀던 셔먼은 예전처럼 공개적으로 거칠게 한국을 밀어붙이는 대신 이번엔 물밑에서 조용히 은은하게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은 2015년의 위안부합의와 여러모로 닮았다. 8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8살 터울의 형제같은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위안부 합의가 오바마 집권 2기 3년차에 나왔고, 강제동원 배상 해법도 바이든 정권 3년차에 나왔다는 점이다. 과거사 해법 두 건이 모두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시기에 나왔다. 다시말해 오바마, 바이든 정권 모두 다음 선거를 위해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시점에 한일관계가 ‘급작스럽게’ 개선된 셈이다.   


과거사에 대처하는 ‘오바이든’ 정권의 자세

바이든정부야 말로 오바마 정권과 4년 시차를 두고 태어난 4살 터울의 형제지간이다. 그 시절 위안부합의에 직간접 개입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바이든 정부 도처에 있다. 강제동원 해법을 “역사적 발표”라고 두손 들고 환영한 블링컨 국무장관은 오바마 행정부 2기 국무부 부장관이었다. 말수는 줄이돼 행동으로 보여준 웬디 셔먼은 오바마 정부 정무차관에서 부장관으로 승진했다. 무엇보다 현지시간 한밤중 “신기원적인 새 장(a groundbreaking new chapter)을 장식할것”이라며 사실상 물개박수를 친 바이든 대통령조차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이었다.  한마디로 오바마 정부의 ‘부(vice)’들이 모여 만든 게 바로 바이든 정부다.

 ‘오바이든’ 정권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인권 가치가 아닌 안보 이슈에 가깝다고 보인다.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외교노선은 자유,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한다. 이들 개념은 미국적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며, 미국은 이를 전파하기 위해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본다(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공화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는게 단적인 예다). 인권 이슈는 ‘가해-피해/사과-용서/책임-배상’ 의 이항 대립이 명확한 문제에 속한다. 다시말해 “둘 다 잘못했다”는 양시양비론이나 “네가 손해봐도 그냥 참으라”는 양보론으로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수 없는 셈이다.


그런데, 오바이든 정권은 유독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만큼은 전통 민주당 노선에서 벗어나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빨리 해소해야할 걸림돌로 보는 측면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 부통령으로서 막후에서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중재했다. 2016년 8월 26일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이 ‘지정학 치료사(The Geopolitical Therapist)-조 바이든 부통령과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바이든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서 바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합의를 만드는 협상을 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박근혜ㆍ아베)과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고 그들이 나를 신뢰했기 때문에 결국엔 교섭 담당자가 될 수 있었다. 부부관계를 복원시키는 ‘이혼 상담사’ 같았다”

<뉴시스>

부부싸움은 ‘가해-피해/책임-배상’이 명확히 구분되는 공적 영역이 아니다. 집안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잘못이 없어도 먼저 접고 들어가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사과-용서’만이 가능한 사적 영역이다. 한일간 첨예하고 민감한 역사 문제를 부부싸움에 비유하거나 스스로를 ‘이혼 상담사’로 규정한 건,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시말해 당시 오바마 정권은 ‘위안부’ 합의가 아니라 위안부 ‘합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실토한 것이다. 부부싸움은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것보다 서둘러 화해시키는게 더 중요한거다.

결국 미국은 한일 과거사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보다 빠르게 해결하는데 더 깊은 관심을 뒀고, 그 연장선상에 나온게 바로 강제징용 해법과 8년전 위안부합의였던 셈이다.  


미국적 가치가 '값싼 박수'가 된 사연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도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일 역사문제를 전통적 외교 노선에 맞게 보편적 인권이자 미국의 가치로 접근했고 우리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이다.

2012년 7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위안부(comfort women)’ 대신 ‘강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지칭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 일제의 전쟁범죄를 더 적확하게 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2014년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끔찍하고 지독한(terrible, egregious) 인권 침해”라며 우리 입장을 지지했다. 일본은 “틀린 표현”이라며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달리 할게 없었다.  

게다가 아베 전 총리가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우익 노선을 더 노골화하자 오바마 정권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2차 대전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된 곳에 참배한다는 건 마치 독일이 나치의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미국은 아베의 반역사적 노선이 오히려 동북아 동맹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2차대전이후 일본을 소련에 맞서는 방파제로 되살려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는건 철저히 막았다. 그런데 아베는 미국의 이런 우려를 정면으로 거스른 셈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  미 국무부의 성명 원안에는 `실망‘(disappointed)했다는 문구가 없었으나 백악관 내 최종 조정 과정에서 ’실망‘ 표현이 들어갔으며, 그것을 주도한 것은 바이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며 미국이 기류가 급변한다. 대략 2015 전후를 기점으로 일본의 과거사 폭주를 공개적으로 나무라는 빈도가 줄었다. 앞서 웬디 셔먼의 ‘값싼 박수’ 발언이 나오는 바로 그 시기와 일치한다.

그동안 한국 편에 서 2대1로 일본을 지적하던 미국이 우리와 일본의 중간쯤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하면서, 전쟁범죄의 과거사 문제는 한일간 1대1 대결로 변한다. 미국은 형사재판소가 아니라 부부싸움을 중재하는 가정법원 역할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된다.


미국의 입장이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바마정권은 2012년을 기점으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한다. 오랜 분석 끝에 중국의 급부상이 미국의 잠재적 위해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탈냉전이후 다극적 대응, 중동 중심의 테러리즘 대응 전략을 중국을 겨냥해 수정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동북아 핵심 동맹인 미일 동맹의 성격도 다시 규정할 필요가 생겼는데, 아베는 마침 기다렸다는듯 이를 ‘인도태평양 개념’으로 만들어 놨다. 미국 입장에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한마디로 ‘유레카’였다.

아시아 동맹을 재편성할 필요성이 커진 오바마 정권 입장에선, 당시만해도 중국 역할론에 기대를 걸고있던 박근혜 정부보다, 기다렸다는듯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아베 정권이 더 고마운건 인지상정!. 평소 제멋대로에 이기적이던 둘째를 점잖게 혼내던 큰형이, 옆동네로 이사온 힘센 깡패를 제압하기위해 동생과 힘을 합치는 것과 비슷하다. 둘째형이 때린다며 말려달라고 호소하는 막내는 이제 철없이 떼만 쓰는 아이처럼 보이게 된다.

결국 과거사 영역에서 한국 편을 들던 미국은 스스로 위치를 가운데로 분명히 옮기면서 한일을 화해시키는 것 자체 우선순위를 두게된다. 보편적 인권 문제인 과거사 이슈가 미국의 안보 전략의 하위 문제로 변화된 순간인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한미일 안보 협력 전략은 오바마 정권에서 시작해 바이든 정권에서 거의 완성되기 직전까지 온 셈이다.


 [참고문헌]


『신냉전에서 살아남기』최용섭

연합뉴스, [팩트체크] 바이든은 ‘친일’ 인사다?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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