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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Oct 12. 2022

어리석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삼 주전이었다. 발가락 골절이 혹시 더 큰 문제로 비화될까 봐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롭게 친구가 된 희영에게 노트북 옮기는 걸 부탁했다. 나의 딱한 사정을 안타까워하던 그녀였어서 이 정도는 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 집은, 가운데 자리 잡은 제법 넓은 마당을 감싸 안고, 방들이 디귿자 모양으로 들어선 구조다. 어느새 일교차가 심하고 벌써 밤 기온이 서늘하다. 고유가 시대를 잘 버텨내려고 나는 전기온돌 패널이 깔려있는 디귿자 한쪽 끝머리에 붙어있는 작은방을 내 침실로 쓰고 있다. 낮에는 기름보일러 난방을 쓰는 본체로 이동해 주방 겸 거실 공간을 작업실로 쓰면서 말이다.


그 거실 겸 주방과 개인 상담실 앞을 방부목 데크로 깔아 공간을 확장시키고 귀퉁이에 계단을 만들어 두 체를 서로 연결시켜 놓았다. 그래도 현재의 침실에서 다목적실로 가려면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많다. 더욱이 익숙지 않은 목발로는 작은 물건 하나라도 쥐고  다니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행히 희영은 전화를 끊고 바로 와주었다. 그녀 덕에 글쓰기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사람과 잘 지내는 일이, 그것도 알게 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사람과 서로를 이해하며 일상을 공유한다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나 보다. 말 섞기가 편안치 않아졌다.


이 주 전이었다. 철물점에서 사다 설치해 놓은 방충망이 낡고 여기저기 구멍 난 게 꼭 현재 나를 상징하는 거 같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보기 싫었다. 그래서 아직도 모기가 극성일 거라는데도 방마다 달아놓은 간이 방충망을 다 뜯어냈다. 그 바로 전에, 뚜껑이 잘 닫히지 않을 정도로 넘쳐나는 쓰레기 통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어 희영에게 비워줄 것을 부탁한 터였다.


그녀가 열려있는 방문을 막 들어섰을 때, 난 뜯어놓은 방충망에 달려있는 자석들을 가위로 잘라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녀가 쪼잔하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그런 건 그냥 버리라고 핀잔주듯이 몇 마디 툭 던졌다. 불쾌감이 확 올라왔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더군다나 내가 쪼잔하다고? 어이가 없었다.


나의 행동을 함부로 단정적으로 평가하고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 그녀의 언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내가 요즘 힘들어서였는지 편히 받아넘기질 못했다. 언짢아진 기분이 영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은,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언행을 자기 기준에서 평가하고 깎아내리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토해내고야 말았다.    


희영은 거기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태우는데 문제없는 것만 태우겠노라고 웅얼거리며 쓰레기 통을 들고나갔다. 커피 물을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의 모습이 감감 이었다. 좀 기다리다가 전화해 보았더니 쓰레기 통은 데크에 올려놓았다며 그냥 자기 집으로 갔다는 거다. 그래? 당황스럽긴 해도, 나도 별달리 할 말도 없어 알겠다며  그냥 끊었다. 자기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친구였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그녀가 떠올랐다. 친화력이 제법 높다는 나였지만 이 친구와는 어찌해야 좋을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열흘 전 오후였다. 떡 봉지를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희영의 모습에 난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녀를 맞이했다.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지 세어 볼 수 없을 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난 물을 끓였다. 내가 참 반갑다 했더니 그녀가 고개만 끄덕거렸다.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 모서리 늘 앉는 자기 자리에서 희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작심을 한 듯 나에 대해 이러저러한 나름의 평가를 늘어놓았다. 계속 봐야 될지 헷갈렸다고 털어놓으며.


선택과 결정 등에 대한 회의감으로 요즘 마음고생을 하는 나에게 그녀의 이런 말은 좀 혹하게 들렸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참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한껏 자랑하며 행복해했는데... 혼란스러웠다.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에서의 내 마음과 생각에 충실해서, 내 감정과 내 언행을 일치시키는 게 진솔한 삶의 정석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외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나누는 일이 정직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 왔다. 함께 지켜보는 일들에 대한 작고 커다란 내 선택의 근거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게 상대방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견지에서는 그런 나름의 원칙에 따른 나의 언행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가 보다. 뭐라 해야 좋을지 몰라 가만히 있다가 몇 마디 덧붙였는데 구차스러운 변명 같아 뒷 맛이 씁쓸했다.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NLP 전제가 있다. 의사소통의 결과와 의미는 상대방이 자신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그 명제를 충실히 따르지 못한 거였다. 왜 그랬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니 그 까닭은 명확했다. 상대방을 파악할 시간도 마음도 내게는 없었던 탓이었음을. 나의 경솔함을 인정해야 됐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들의 기준에 끼워 맞춰지지 않기를 바랐던 내 욕구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희영의 여러 모습을 일반적 관점을 넘어 높이 인정해주고 있었으니까 희영도 내 방식의 독특함을 인정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 무슨 시답지 않은 바람이었는지. 그건 그녀에 대한 존중도 아니었고 그저 내 기대에 의거한 착각에서 비롯된 거였다. 내 인격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입장이 이해됐다.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녀의 기준에서 나는 변덕스럽고 가벼운 사람이었던 거다.


가만, 그녀의 기준에서 만은 아닌 듯싶다. 내가 좀 진중한 편은 아니잖은가? 그리고 젊은 시절, 연애하던 남자들에게 나 스스로를 박 변덕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잖은가? 픽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맞다. 나는 그렇게 가볍고 변덕 심할 때가 있다. 물론 늘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거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다행히 이번 이슈들은 내가 수용할 만했다. 그러나 언제나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을 거다. 표현의 빈도와 정도를 수치화해서 나타낸다면 조금 과장해서 나는 거의 10 쪽에 가까웠고 그녀는 거의 0 쪽에 가깝다고도 하겠다. 우리는 의사소통은커녕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은 케이스가 아닌가?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한다. 관계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깨우쳤으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나와 의사소통을 잘하고 있는 이는 사실 손가락을 꼽을 만큼뿐인 거 같다. 내 행보에 편안하게 장단 맞추는 사람이 극히 적다는 얘기다.


"이미 지고 있는 전쟁인데 전투에서 이기려 나서는 무모한 도박" 20세기 폭스사를 인수하려던 디즈니의 아이거 밥스에게 언론이 했던 비판이었단다. 이전에 획기적인 인수합병을 여러 번 성공시킨 그였음에도 이런 시선을 받았었다.


상황이나 스케일 면에서,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나도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모한 도박을 벌이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 듯하다. 속상하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은 거는 확실한 거 같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특히 남편에게 나는 양치기 소년이다. 아니 청개구리다. 그는 내가 그가 바라는 길 반대쪽으로만 가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나도 아이거 밥스처럼 내가 하려는 게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다 만났다. 정일근 시인의 시구 하나를.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시인이 쓰는 언어는 파워풀했다. 고단했던 몇 달이 그냥 가볍게 솟구쳐 공중에서 스러졌다.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핀잔받을 만한 내 선택에 후회와 자책으로 속상해하던 나였건만 시인의 이 구절은 잠시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정말 잠시였다. 달콤한 위안을 주는 이 문장이 내게도 진실이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따져봐도 난 잠시 흔들린 게 아니라 깨지고 무너진 거였다. 그게 문제였다.  


난 언제나 우려나 걱정보다 기대나 지지받기를 원했다. 잘 될 거라고 내 선택에 기운을 북돋워 주기를 바랐다. 결과는 언제나 내 거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의 부정적 반응을 대할 때마다 나는 내가 늘 뭘 잘 못하는 사람처럼 여겨져 힘들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설명하거나 변명해야 되는 상황이 너무 싫어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난 걱정이나 염려라는 단어를 경원시했었다. 그 단어들을 쓰는 사람들 의식에 전제되어 있는 그들의 부정적 미래관과 내 능력에 대한 그들의 불신과 그들의 비관주의적 세계관이 싫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정적 결과를 예측하도록 강요받는 거 같아 정말 수용하기가 싫었다. 이런 내 태도가 듣기 싫은 소리를 참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한다는 걸 명확히 의식하면서도 난 고집스럽게 내게 함부로 부정적 견해를 표하지 말라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요구하곤 했었다.


그랬었는데. 요즘은 내가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참을성을 발휘하고 있다. 사는 게 진짜로 참 녹록지 않다는 걸 절감하면서 그들의 우려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노파심에 깔려있는 나에 대한 마음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더 큰 이유는 그들이 내 선택과 행동에 대해 비난하고 비판하는 걸 반박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내 선택과 행동의 결과가 내게서 그치질 않고 그들에게까지 미쳤으니까. 그건 내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어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부탁을 들어주면서 틈만 나면 나를 갈구는 사람들과 씨름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부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괴감에 빠져 잠깐 허우적 대기도 한다. 후회와 참담한 마음에 기운을 잃을 때도 있다. 곧 다시 힘을 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자초한 건데 어쩌겠어. 내가 점점 인내심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음을 그나마 수확이라고 고마워한다. 삶은 내게,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한다고 믿고 있는 존엄성과 존중이, 아니 적어도 나의 존엄성과 사람들이 내게 보여줘야 하는 존중이, 천부의 권리도 아닐뿐더러 얼마나 얻기 어려운 덕목인지 알아차리고 명심하라고 자꾸 일러주는 거 같다.   


솔직히 난 사람들의 염려와 우려에 진실로 고마워한 적은 사실 없었다. 비열함과 불평등과 부당함에 베어져 상처가 난 경험이 별로 없어서일까. 나보다 더 큰 힘으로 내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친 개인은 내게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런 걸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서너 번 계속됐던 동생의 국회의원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초래된 힘든 상황이나 외국인 남편을 택하면서 잃은 한국 생활에서의 가능성 따위도 다 내 선택의 결과였으므로 원망할 대상이 내게는 없다. 내 삶의 현재 모습은 그냥 내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비난과 비판 없이 그냥 나를 응원하면서 내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들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고 그래서 난 그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하는 거다.


오른쪽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통 깁스를 하고 있는 나는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아니면 누워서 가능하면 발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던 나는 잊어야 했다. 마당의 돌멩이들을 주워다 공그리 치는 곳에 부어주고 본체 입구에 깔아놓은 데크 위에 오일스텐을 칠하고 새로 지을 창고 기둥으로 쓸 각관에 철제용 페인트 칠을 하면서 덤으로 얻었던 노동의 기쁨과 비용 절감의 실익도 당연히 사라졌다.


지금은 노트북과 책과 TV를 친구 삼아 다른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들여다보는 일에 골몰할 뿐이다. 삶의 현장들을 유려한 언어로 구성해 놓은 멋진 글들, 가슴을 움직이는 글들과 말들에 매혹되어 이게 웬 축복인가 만끽하면서 노트북에 혹은 모바일에 몇 자 적어 놓곤 한다.  이런 거였다. 내가 어린 시절에 꿈꾸던 삶은. 아하! 모멘트의 연속.


끊임없이 지난한 현재에 매몰되어 귀 닫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단순히 게으름 탓이었을까. 잃을 뻔한 세상에 되돌아온 기쁨을 만끽하면서 내면의 귀를 여는 훈련에 열중할 것과 좋은 글 읽기에 공들일 것을 다짐해 본다. 그걸로 발가락 골절의 보상은 충분하다.     


현상을 입력하는 시각의 기준에 따라 상황이 변동을 부린다. 경험이 언어에 의하여 해석이 바뀌어 다른 색깔로 채색되고 다른 무게로 기억에 저장된다. 일상 대화 속에, 혹은 혼잣말 속에 숨어있는, 사람을 약화시키는(disempowering) 제한적 언어들을 찾아내 바꾸며 신나 하던 트레이닝 현장이 그리워진다. 그 작업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진다. 무심코 던지는 말속에 깔려있는 전제를 일깨우는 언어 작업은 개인의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난 언제나 트레이닝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삶의 지혜는 대학원의 높은 상아탑에 있지 않다는 어느 작가의 말(내가 필요한 모든 건 유치원에서 모두 배웠다의 저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엄청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공부에 투자한 나로서는 좀 아쉽긴 해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식과 지혜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작금의 트렌드를 환영한다.


실질적 보상이 그다지 크지 않은 나의 학위증과 자격증들을 후회하지 않는 까닭은 내 삶의 본질적 역동, 두근거림과 설렘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캠퍼스들을 오가며 잉태된 아이디어들과 수많은 강의실에서 번뜩이는 사고와 논쟁을 벌이면서 맛본 지적 향연 때문이다.

 

맞다. 난 아직 완전히 깨지거나 무너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좋은 글을 읽고 감동하며 따스한 휴먼스토리에 훈훈해한다. 나와 다른 삶들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깨치며 행복해하며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결이 다른 깨우침을 곧 공유할 수 있는 교실문을 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그냥 어리석어 자꾸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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