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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Nov 02. 2022

새로운 프로젝트

삶의 차원을 바꾸는 언어 훈련, 그 이상으로 

내가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언어 훈련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차원을 달리하도록 도와주는 거다. 언어  더 정확하게는 문장의 특성과 그 영향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욕심이 생겼다. 물론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나름으로 글 쓰는 이가 되었으니 아스라이 막연하게 품었던 바람이  책을 내고 싶은 마음으로 옮겨간 거다. 그런 관점에서, 탁월한 어휘력과 표현력은 내게 칼 가는 이의 숫돌만큼이나 중요하다. 


헤밍웨이가 그랬다.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쓰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무명인인 나는 그런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을 터니 우선 폭넓게 읽고 쓰고 말하면서 그 힘을 키우려고 한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장착하고 있어야 되는 건 바로 유연하게 사고하는 거니까. 언어를 지배하는 힘?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 힘을 가지고 싶은지도. 아마도 언감생심이어서 일 게다.


어떤 글을 쓰든지 간에 내 삶의 방식을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일은 열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필수 단계라고 생각한다. 존재론적인 방황에서 빠져나왔으니 딴딴해진 몸과 마음으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할 때가 된 거다. 나의 동굴에서 걸어 나가는 거다.     


본질적 욕구, 내 존재와 함께 생성된 소명에 충실히 부합할 일만 남았다. 스스로 짊어지고 있었던 짐부터 내려놓고 말이다. 온갖 장학금으로 남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공부한 탓에 커다랗게 성공해서 '짜잔' 하고 나타나야만 될 것 같았었다. 비록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아도 어쨌거나 지난 15년간 적어도 갚으려고 애썼다는 걸로 그 부채감을 떨구어 내기로 했다. 부주의한 사고와 실수들이 얼떨결에 확보해준 시간과 공간을 지나며 얻은,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귀한 깨달음을 통해서다. 주변을 이따금씩 둘러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 톤에 섬세하게 반응하면서 그렇게 실행하기로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은유를 정신 번쩍 들게 한 니체를 난 대학 시절 얼마나 좋아했었는가. '생각'이나 '사고' 보다 더 깊이 있고 멋진 말, '사유'에 나를 함몰시키며 초인의 삶을 꿈꾸던 시절. 그때의 나로 돌아가도 되는 거다. 학위를 따는 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내 꿈인 양 착각하고 살아온 세월이 마냥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미처 모르는 수확도 어딘가에 조금은 있을 거라 믿으면서.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이 두 컨셉은 생애 전반에 걸친 내 일기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내 지인들에게도 나는 가끔 이 멋진 두 말로 내 근황을 보고하기 일쑤였다. 겉멋에 빠져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고 싶어서 부린 지적 허영이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랬다고 한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말라'라고. 얼마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허구한 날 책 쓴다고 말만 하고 정작 책상 앞에 앉는 일에는 도통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멍청한 배짱을 부리지 못할 거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내놓았으니까. 내 하루는 책상 앞에 앉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셈하는 걸로 가름될 거다. 그러면서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싶어 한껏 고마워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한들 지금 내 마음이 품고 있는 이 절실함과 행복감의 조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싶어서다. 


절실함 속에 숨겨진 행운을 붙들고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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