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님! 한 접시더 주세요

12살 지구인 이야기(12)

by 도토리

아이가 7살 때부터 알게 된 내가 아끼는 후배가 있다. 아이의 자람을 늘 가까이에서 봐오고 항상 바쁜 나를 대신해서 아이의 하교까지도 많이 도와주었던 참 고마운 후배이다. 같은 학교 교사였지만 아이가 유일하게 늘 어색함 없이 이모라고 불렀던 후배. 그 이모가 오랜만에 집으로 놀러 오는 날. 아이는 이모에게 최근에 만들어 본 카나페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이모가 오기 전에 만들어 놓겠다길래 재료를 준비해주고 돌아서는데 뭔지 모르게 신이 난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우리 집에 종 있어?"

"종?"

"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여기 보세요 할 때 땡 하고 치는 작은 종 있잖아."

"집에는 없어. 왜? 필요해?"

"이모가 먹어보고 맛있으면 나에게 종을 땡 치게 해서 내가 또 한 접시 해주고 싶어서."

"와... 아이디어 좋은데?"

누군가를 위해서 이 생각 저 생각 골똘히 하는 아이의 귀여운 생각이 전해져 퇴근 후 지친 몸이 풀린다.


그 사이 이모가 왔고 카나페를 만드는 아이의 뒤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이모는 연신 아이의 이름에 셰프를 더 해 불러주기 바쁘다.

"건혁 셰프님! 건혁 셰프님!"

사실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은 카나페가 전부인데 좋아하는 이모가 셰프라고 불러주니 아이는 더 손이 바빠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히 다 만든 카나페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이모, 더 필요하면 말하세요."

아이의 말 때문일까. 이모는 한 접시를 금방 다 먹고 "셰프님. 한 접시 더 주세요." 한다.

아이의 미래를 앞당겨 자긍심을 높여주는 후배의 따뜻함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고 그것을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내 삶에 이런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모가 돌아가는 길.

아이가 이모의 남편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다고 포장을 했다. 포장 케이스 위에 메모가 적혀있다.

'삼촌 잘 드세요~'

간단한 말이지만 삼촌도 이모처럼 "셰프님! 한 접시 더 주세요"를 외치며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이모를 배웅하며 아이의 어깨를 팔로 감싸 안으며 말했다.

"아들. 엄마한테도 다음에 만들어줘."

"그거야 당연하지. 엄마는 언제든지 말만 해."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른과 달리 생애의 과업을 이뤄나가야 하는 게 많은 어린 시절에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 다른 것 같다.

흔히 저학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소속감과 자신감이라고 한다. 학교 혹은 가정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안정감과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렇다면 고학년 아이인 내 아이게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아마도 자신에게도 잘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 자긍심이 아닐까.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고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에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지지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것 같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그리고 내 아이도. 이 시기에 아이들은 한결같이 다 뭐든 잘 해내고 싶어 한다.

그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꼭 잘 해내 보고 싶다는 열정으로 바꿔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물러나려고 할 때 잘 안돼서 짜증 나려고 하는 그 마음을 오롯이 받아주고 위로해주며 서툴러도 셰프라고 불러주는 이모처럼 아이의 미래 능력치까지 인정해서 긍정의 미래를 그려줄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다음 주 화요일 아이는 또 좋아하는 이모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 어떤 메뉴를 준비할까?"

"브런치 메뉴를 찾아보자."

"안 만들어본 것도 할 수 있을까?"

"이제 엄마랑 해보면 돼."

셰프님과 나는 이렇게 이모를 맞을 준비에 브런치 메뉴를 검색해본다.

아이의 작은 눈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12살 지구인은 지금 이 순간은 셰프님이다.




20210622_203924.jpg
20210611_122134.jpg



이전 07화엄마,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