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5박 6일 출장을 다녀왔다. 나와 단둘이서만 사는 아이는 엄마가 출장 가면 그 기간 동안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동선을 짜서 최대한 늦게 출발하고 빨리 오려고 했으나 해당 지역으로 가는 비행기가 딱 하나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주일을 혼자 지낼 아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새벽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와 빨래를 해두고, 아이가 스스로 반찬을 꺼내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하고 아이에게 어떻게 해서 먹어야 되는지 단속을 했다. 남자 아이라 한눈에 반찬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으면 안 먹을 것 같아서 반찬 통 옆에 반찬 이름을 하나씩 적어 라벨을 붙여두었다.
"엄마 없어도 잘 지낼 수 있겠어?"
"걱정 마. 도착하면 꼭 연락해. 난 어릴 때 엄마가 비행기 타고 어디 가면 못 오는 줄 알고 불안했어."
아이는 잘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여느 출근길처럼 아이의 점심을 차려두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서는 마음이 가방보다 훨씬 무겁다.
아이가 15살 이어도 매일이 걱정인 출장 기간이었다. 잠은 잘 잤는지, 밥은 먹었는지, 기분은 어떤지, 심심하거나 무섭지는 않은지, 별일은 없는지. 아침마다 아이가 잘 자고 일어났는지 걱정이 되어 매일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해도 아이와 연결이 되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이 되었다.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늘 '엄마 나 늦잠 잤어.' 하며 점심이 다 되어서야 답하는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엄마가 걱정되니까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연락해 줘." 그날부터 아이는 정말 '엄마 나 일어났어.' 한 문장으로 깔끔한 생존신고를 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엄마 없는 자유시간을 무척 잘 즐기며 놀았다. 일어날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방학이 주는 여유로움을 온몸으로 즐겼다. 오히려 나의 잦은 전화에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툴툴대기도 했다. 별 탈 없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기도 하면서도 엄마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아이가 서운할 만큼 아이는 잘 지냈고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5일째 되던 날 아이에게서 먼저 톡이 왔다.
'엄마, 빨래 어떻게 해? 아이에게 세탁기 사진을 찍어보내라 하고 톡으로 설명을 했다. 알았다며 연락이 없는 걸 보니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난생처음 세탁기 앞에 선 아이를 상상했다. 내가 일러준 대로 버튼을 하나씩 누르며, 작동이 되는 그 순간 느꼈을 아이의 안도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출장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아이가 원하는 엄마는 바쁘고 유능한 엄마가 아닐 텐데 하는 일하는 부모로서 드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출장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에 가서 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 넣었다. 일주일이나 집을 비웠으니 집이 더러웠을 것이고, 아이에게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해주자 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순간 집이 너무 깨끗해서 놀랬다. 지난번 출장에서는 아이가 배달음식을 담아두었던 용기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분리수거도 해놓고, 설거지도 해두고, 그 문제의 빨래도 잘해서 건조대에 널어두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집안 구석구석을 보는 것을 본 아이는 되려 자기가 쓰레기는 버리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버리고 오냐며 물었다. '아.. 이제는 정말 다 컸구나.' 대견함과 엄마흉내를 내며 지냈을 아이에게 고맙고도 미안했다.
"엄마 없이 힘들지 않았어?" 저녁을 먹는 아이에게 혼자 있느라 외롭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엄마 10일도 괜찮을 것 같아. 먹는 것만 좀 힘들었어." 오랜만에 먹는 엄마가 차려준 밥을 허겁지겁 먹으며 대답했다.
"엄마 다음에는 출장 가지 말까?"
"무슨 소리야. 출장을 가야지!" 출장을 가기 싫은 엄마와 달리 출장을 가라는 사춘기 아이의 말이 어쩐지 동상이몽 같다.
아이가 커가면서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스스로 해내야만 하기에 세상을 일찍 알아간다는 것은 어딘지 가슴 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