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달리는 사람

by 도토리

많은 일은 언제나 계획 없이 찾아온다. 내게 이번에는 달리기가 그렇다. 동생처럼 아끼는 후배가 작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하더니 지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에 나가 10km를 완주하기 시작했다. 대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보내오는 후배의 신명 난 사진들은 근사했고 슬금슬금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나도 달려볼까?' 하는 찰나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에서 챗바퀴를 돌리는 햄스터처럼 잠시 달리는 나에게는 찾아올 수 없는 먼 세계였다.

"다음에 대회 신청할 때 나한테도 알려줘. 나도 하고 싶다." 후배에게 덥석 말을 해놓고 이내 후회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 말이었던 내 말을 후배는 잊지 않았다. 2월의 어느 날, 카톡으로 마라톤 대회 신청 링크를 보내온 것이다. 잊지 않고 보내준 후배의 고마운 마음을 카톡 화면에서 느끼며 대체 마라톤대회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청 링크를 눌렀다.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 애초에 신청을 하려고 들어간 사람처럼 개인정보를 차례차례 넣었다. 일 년에 몇 번 꼭 극단적으로 무계획적인 일을 저지르는 나의 허튼 감각이 솟아오르는 순간이었다. 호기로움도 잠시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얼음을 외치며 제자리에 멈춰 서듯 손가락을 멈췄다. 아무리 봐도 5km는 보이지 않았고 신청할 수 있는 최소 거리가 10km였다. '건강 달리기 코스는 없는 건가' 후배에게 최소 거리가 10km인 게 맞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나 할 수 있을까?"

"네네 걸어도 되어요! 5km는 뛰고 5km는 걷는 분들도 있어요." 후배의 말에 안되면 걷자 싶은 마음에 신청을 완료했다. '우리는 러너'라는 답톡을 받고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은 설렘이 시작됐다.


덜컥 마라톤대회 10km를 신청하고 뭘 해야 될지 몰랐다. 뭐든 감정이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지르고 마는 월드클래스급 무모한 실행력 때문에 이번에는 몸이 고생하겠구나 싶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인터넷에서 간단하게나마 러닝자세, 초보러너가 알아야 할 기본 상식들을 알고 시작했으면 좋았으련만. 마음만 앞선 채 달리기는 달리기로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집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당장 10km는 말도 안 되니 반인 5km라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 것일지 체감해야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달리기는커녕 바빠서 운동을 거의 못하고 10시도 되기 전에 쓰러져 잠드는 일상을 가졌던 내 몸이 달리기 시작하자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호흡은 너무 가빴으며 심지어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바로 달리기를 멈췄겠지만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꼭 5km를 달려야만 한다는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그렇게 달리고 기록을 보니 41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5km를 쉬지 않고 달려본 기록이었다. 머리와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의 쿵쾅거림은 5km를 완주한 후에도 여진처럼 계속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무모한 달리기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돌아보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처음부터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5km를 겁도 없이 뛰겠다고 한 나의 무모한 용기에 박수가 아닌 따끔한 논총을 보내게 된다.


불과 찬 바람이 여전했던 3월 초의 이야기다. 우연하게도 달리기는 이렇게 내 삶에 들어왔다. 그 뒤로 일주일에 3번은 어김없이 5km를 야외에서 뛰고 있다. 울에서 봄이 되었듯 기록도 많이 좋아졌고 처음보다 많은 부분에서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뛸 때마다 힘들어 뛰는 도중에 만둘까 하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된다. 래도 멈추진 않는다. 난 이제 5km를 달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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