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

by 도토리

학원을 가려고 준비하는 사춘기 아이의 뒷모습을 늘 한걸음 뒤에서 지켜본다. 콧노래를 부르며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만지작 거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시간에 쫓겨서 허겁지겁 나가느라 잘 다녀오라는 나의 말은 공중에서 사라지는 날도 있다. 어두운 표정으로 걸음걸이가 무겁게 보이는 그런 날에는 아이가 오늘은 학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올 수 있기만을 바라게 된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학원을 가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등 뒤에 대고 잘 다녀오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전부다. 어쩐지 오늘은 유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이라 다른 날과 달리 기어코 한 마디를 보태고 싶어졌다. "올 때 맛있는 거 사와." 아이는 역시나 대답도 없이 사라졌다. 어릴 적 늦게 귀가하시던 아빠 손에 들려있던 간식거리들을 기다리던 아이의 마음으로 학원에 간 아이를 기다렸다.


학원을 갈 때처럼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도 매일 다른 모습으로 들어온다. 사실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 나는 약간의 긴장을 한다. 어떤 날은 해맑은 아이가 들어오고, 어떤 날은 가방을 내팽개치며 불편한 기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사춘기의 아이가 들어오기도 한다. 사춘기의 정점에 들어선 아이는 자주 남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날이면 뾰족할 대로 뾰족해진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매번 뾰족한 마음 말고 둥글둥글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아이의 기분은 늘 제멋대로다.


들어오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오늘은 기분이 썩 좋아 보여 다행이다. 얼굴은 나갈 때보다 더 생기가 있고 들어서자마자 두툼한 외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평소 아이가 즐겨 먹었던 똑같은 과자 두 개였다.

"엄마 나랑 체스하자." 과자를 내게 하나 건네며 말했다.

"그래. 이런 날은 아무리 피곤해도 같이 해야지!" 아이에게 기분 좋은 대답을 하게 된다. 사실 며칠 전 아이는 잔뜩 화가 났었는데 침대 위에서 혼자 초등학교 때 사뒀던 해리포터 체스를 꺼내서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여 "체스할래?"라는 말을 먼저 꺼내봤지만 "됐어!"라는 한마디로 거절당했었다.


체스판에 기물을 올려놓고 게임 준비를 마쳤다. 똑같은 과자를 먹으며 체스를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기물을 두고 한 손으로는 과자를 먹으며 두느라 작은 거실에는 기물을 놓는 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한참 두다 체스 기술인 프로모션을 가지고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엄마와 아이라기보다는 지기 싫어하는 친구와의 실랑이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사실 내가 아이를 체스로 이길 수는 없지만 괜히 일부러 너의 기분을 위해서 져줬다며 나는 위선을 떨었다. 피식 웃으며 아이는 한번 더하자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에너지가 떨어져서 둘 수 없다고 나름 밀당을 벌인다.


아이에게 틈을 만들어 마음을 쉬게 해 주려다가 내 마음이 쉬었다.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한다. 작은 선물 같은 하루. 무탈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잠깐의 안온함을 즐기는 삶. 아이의 삶에 이런 순간들이 하나씩 모여 편안했던 유년의 한 기억의 조각으로 단단하게 굳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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