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신청한 나의 첫 마라톤 대회. 최소 거리가 10km여서 일단 10km를 신청을 했지만 정작 대회 당일까지 한 번도 10km를 뛰어보지 않은 채로 대회일을 맞았다. 안되면 걷자라는 마음이 앞섰지만 어쩐지 꼭 완주를 해보고 싶다는 근거 없는 욕심도 나와 함께 했다. 아침 7시까지 모이라는 대회 주최 측의 공지에도 개막식은 굳이 안 가도 되지 않나 싶어 가볍게 무시하고 늦게 출발했다. 일요일 아침이니 출근 차량도 없을 것이라 평소 자주 가는 그 길은 어느 때보다 한산할 것이라 예상했다. 역시나 난 지극한 마라톤 초보였다. 가는 길 따라 왜 그리 차가 많은지, 단 한 번도 정차해보지 않았던 한적해야만 하는 외곽 도로에서 모든 신호등을 다 받아가며 가야 했다. 대회장에 도착해서도 주차할 곳을 찾아 고개를 빼꼼거리고, 긴 화장실 대기줄에 놀라고, 운동장 가득 찬 사람들에 한번 더 놀랐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내가 있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모두 같은 셔츠를 입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틈에서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출발선에서 먼저 출발하는 풀코스, 하프코스 주자들의 남달라 보이는 기운에 놀라다 얼떨결에 출발했다. 워치에서 달리기를 누르지도 않고 뛰다 출발해서야 황급히 누르는 내 어설픈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사람들이 꽉 메우고 달리는 눈앞의 장면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각자의 보폭으로 왼발 오른발을 내딛을 뿐이었고, 모두의 발소리가 더해져 처음 느껴보는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모두의 설렘과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길 위에 흩뿌려졌다.
금세 1km 지점에 다다랐다. 1km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나? 오버페이스를 하는 건 아닌지 워치를 보니 평소보다 속도는 빠르고 심박수는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혼자 달릴 때는 보지 못했던 수치들에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소위 말하는 러너스 하이 인가? 마라톤 대회 효과인가? 모든 게 새롭고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늘 연습했던 5km 반환점을 도는데 30분 정도로 기록이 꽤 좋았다. 연습때와 달리 뛴 거리만큼 남은 거리를 생각해야 했고 얼굴과 몸은 이미 땀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견딜 수 있는 설렘이 밀려왔다.
첫 마라톤 대회의 행운은 여기까지였을까?
반환점을 돌고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바깥쪽 무릎에서 약한 통증이 시작됐다. 속도가 너무 빨랐나? 갑자기 왜 아픈 거지? 5km 이상은 역시나 무리인가? 머릿속이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처럼 차곡차곡 예시 답안을 만들어 내는 동안에도 통증은 조금씩 지속되고 있었다. 느리더라도 멈추고 싶지는 않았는데 결국 통증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를 스쳐 지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릎을 살피며 잠시 걸었는데 뛰고 싶었다. 이대로 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뛰고 통증이 밀려오면 잠시 걷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8km 지점을 지나니 익숙한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희망은 나에게 달릴 힘을 주었다. 결승점에 다다르자 이제 금방이라며 먼저 도착한 선수들의 길거리 응원이 이어졌다. 끝이 보인다는 희망과 응원은 작은 마리오가 버섯을 먹고 슈퍼마리오가 됐듯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결승점을 코 앞에 남겨두고 힘이 어디서 났는지 전력질주를 했다. 그렇게 나는 결승선에 들어섰고, 기어코 나에게 10km 달리기를 선물하고 말았다. 기록은 1시간 6분. 중간에 걸어야만 했던 내 위기를 생각하면 마음에 드는 기록이었다.
나에게 글은 쓰게 되는 글과 쓰고 싶은 글이 있다. 쓰게 되는 글들은 나도 모르게 토해 내듯이 쓰게 되는데 그런 글들은 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쓰고 싶은 글들은 별것 아니지만 내 일상에서 조용하게 내보이고 싶은 글들이다. 그런 글들은 보잘것없는 내 인생을 조금은 볼만한 인생으로 만들어주고는 한다. 올해 내가 꼭 쓰고 싶었던 글은 후자로 내 인생 첫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였다. 마라톤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나 싶은 고작 10km 달리기지만 지난 3월 겨우 달리기를 시작한 나로서는 꼭 성공해서 쓰고 싶은 글이었다.
대회 전날 불현듯 완주한 나를 미리 상상해서 써둘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쓰고 싶었던 글은 이제 더 이상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이렇게 쓸 수 있는 글이 되었다.
"엄마 성공했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이가 방에서 뛰어나오면서 물었다.
"응! 성공했어!"
"오~~~~!" 아이의 외마디 음성이 나를 퍽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허무한 일이 되어버린다는 걸 잘 아는 나이지만, 내게 첫 10km 달리기를 선물한 나를 오래도록 떠올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