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큰 기대 없이 한 말이 별일로 올 때가 있다. 어버이날도 다가오는데 엄마한테 뭐 없냐고 아이를 쿡 찔렀었다. 아이는 뭘 받고 싶은 거냐고 사춘기스럽게 물었다. 선물은 필요 없고 오랜만에 네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쓴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한다 만다 대답이 없었고 이런저런 아무 말들을 하면서 함께 보낸 일상의 저녁이었다.
다음날 아침 연휴인데도 어김없이 새벽 일찍 깨는 나에게 좀 더 자도 되지 않느냐며 또 다른 내가 달랬지만 역시나 새벽에 일어나고 말았다. 유연성이라고는 하나 없는 내 몸에서 나는 부드득 소리를 확인하며 몸을 일으켰는데 탁자에 종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이가 내게 쓴 편지였다. '엄마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중3 남자아이가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갈했다. 연습장 귀퉁이를 가위로 다스리고 검은색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귀여운 첫인상에 읽기도 전에 내 얼굴에는 미소가 일었다. '어쩌다 오랜만에 내 부탁을 들어줬네?' 이른 새벽 멍한 머리를 깨우며 편지를 읽었다.
<엄마에게>
안녕 엄마. 시간은 정말로 빠른 것 같아. 중1이 중3이 되었고 이제 고등학생에 가까워졌어. 이 과정에서는 정말 바뀐 것이 많아. 하지만 딱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어. 바로 엄마의 나를 향한 마음이야. 엄마는 내가 기분이 좋든 싫든 나에게는 맛있는 밥을 차려주었고, 항상 나를 사랑해 주었어.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버르장머리 없이 말해도 항상 엄마는 내 편이었고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노력했어. 나는 엄마의 그런 꾸준한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어.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아빠가 아무리 엄마를 괴롭혔어도 항상 나를 위해서 행동했어. 본인은 굶주려도 내 배는 배부르게 해 주었고 항상 내 인생의 조언자였어. 내가 힘들 때에는 같이 마음 아파해주고, 항상 나를 도와주려고 애썼어. 엄마는 내 인생의 VIP야. 가끔 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화를 내고 나면 항상 나중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항상 고맙고 미안해.
"내가 언제 굶주렸었다고 그래?" 아이의 편지에서 굳이 트집거리를 잡아내며 눈물을 쏟았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많은 부분들을 힘들어했다. 아빠의 부재, 공부, 친구, 외모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좋아야 되는데 자기는 다 가진 게 없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꾸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혼자 남자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 쉽지 않구나 느끼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노력해서는 얻을 수 없는 부재였고 내가 생각해도 아이는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아이도 나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을 많이 겪었야 했다. 어느 날엔가는 난데없이 화를 내기도 했고, 혼잣말로 거친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순간들이 잦아지면서 힘들다는 말을 어느 순간 마음 가까운 지인들에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의 편지를 읽으며 아이는 진짜 사춘기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이가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자기 존재의 가치로움을 홀대하지 않도록 해주고자 나는 애써왔고 그 과정에서 처음 만나는 불안을 만났었다. 엄마인 나와 사춘기 아이가 느끼는 고민의 층위는 다르지만 어떻게든 삶을 견디어 내려는 노력이 일부였다. 각자 나름의 속도로 커가고 익어가는 것임을 다시 생각한다. 아이를 내가 잘 못 키우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면 나의 노력을 쉬이 탓하고 더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조급하게 찾았던 것 같다. 아이는 아이만의 힘이 있음을 생각한다. 아이를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믿고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사춘기 인생에서 내가 VIP로 살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를 VIP로 만들어 준 너에게>
오늘 이꽃님 작가의 소설에서 다음 문장을 만났어.
'엄마는 목숨 걸고 아이를 낳아 주는 것으로, 아기는 그런 엄마에게 웃어 주는 것으로 엄마랑 자식 간의 빚은 끝이야.'
너는 이제껏 나에게 그 멋진 반달 웃음으로 그토록 많이 웃어줬으니 엄마는 아직 네게 빚이 남아있는 거 같아. 네 마음에 든 엄마의 꾸준한 사랑으로 엄마가 네게 진 빚 천천히 다 갚을 거니까 속상하면 속상한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엄마한테 표현하고 미안해 안 해도 돼. 우리 함께 더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