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계절을 좋아해?"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의 단원명이 될 만큼 사람들은 계절을 좋아할 대상으로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정해놓고 좋아하는 것에는 어색한 나라서 늘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그날의 기분과 생각에 따라 바뀌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의 대답도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과 가을 사이를 오갔다. 그런 내게 누군가 지금 물어본다면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여름을 좋아해."
더위에 약해 여름이 되기도 전부터 무기력해져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는 친구가 이소리를 들으면 나에게 어떤 시선을 보낼지 그려지지만 어쩔 수 없다. 여름을 좋아하게 됐다.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 좋다. 하루가 길어진 느낌이랄까 아침과 밤에 1~2시간씩 보너스 시간을 받는 기분이 든다.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일상의 시간들은 늘 쉽게 사라진다. 겨울에 어둑해지다 못해 깜깜한 길을 걸으며 퇴근할 때는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조금은 처연한 생각도 들고 뭔가 더 해볼 여지가 없다고 느껴진다. 여름은 다르다. 퇴근시간 이후에 뭔가를 더 많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머리를 굴리게 된다. 더위만 적절히 피할 수 있다면 다른 계절보다 빛의 양이 더 오래 많이 쏟아져 내리는 여름에 뭐든 하나는 더 해보고 싶은 이유 없는 열정이 생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여름에 과연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여름날 퇴근 후 달리기를 해보니 이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달려도 누가 내 머리에 물을 쏟아부은 것처럼 줄줄 흘러 달리는 도중에도 여러 번 손으로 땀을 닦아 내야 했다. 누가 양볼이 빨갛고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본다면 굳이 이렇게 달려야 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달리기를 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혼자 돌아오다 땀을 식혀주는 듯한 제법 서운한 밤바람이 불어오면 그렇게나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오늘도 애썼다고 토닥여주는 것만 같다. 그렇게 돌아와서 집에서 찬물로 샤워를 하면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옅어진다. 늘 따뜻한 물로 몸을 달래야만 했던 내게 여름밤 달리기 후 찬물샤워는 또 다른 경험이었고 이제는 나만의 루틴이 됐다.
여름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치자나무 꽃이다.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주변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분 좋은 향기가 밀려왔다. 다들 향기가 좋다면 주인공인 꽃을 찾아 나섰다. '이 꽃 봐라!' 하면서 보게 된 꽃은 처음 보는 꽃이었다. 얼핏 보면 하얀 장미꽃 같아 보이는 꽃이었다. 이런 좋은 향기를 가진 꽃은 알아두어야 한다며 검색을 해보니 치자나무 꽃이었다. 치자나무 꽃이 핀 걸 보니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는 선배의 말에 한번 더 눈이 갔다. 선배의 말처럼 그즈음 장마가 시작됐고 하얀 꽃이 누렇게 말라 갈 즈음 내가 사는 지역은 장마가 끝났다. 첫 만남 이후로 길가를 거닐 때 좋은 향기가 밀려오면 '어디 치자나무 꽃이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우연히 공원 근처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출장 가는 도로변을 따라서 치자나무가 가득 있었고, 출퇴근길 도로변에도 치자나무 투성이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사는 건물의 입구 좁은 화단 한 귀퉁이에도 치자나무가 있었다. 이런 그동안 너를 몰라봐주다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번 여름은 온통 가는 곳마다 치자나무 꽃이 존재감을 뿜뿜 드러냈다. 마주치게 되는 치자나무 꽃들마다 라이킷을 꾹 눌러주고 싶었다.
여름은 더위와 습기로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여름은 다른 계절에서 볼 수 없는 힘찬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름이라는 계절을 다시 보게 되니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니 더 함께 잘 지내고 싶어졌다. 좋아할 이유를 만들고 보니 여름은 내게 행복이다. 행복은 일상을 그저 잘 살아가는 것이라는 어느 책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여름으로 만들며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여름에 나만의 무늬를 새겨 넣고 보니 더 여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