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재료

by 도토리

SNS를 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작가들의 일상과 강연, 책 소개 및 지역에서 일어나는 행사나 새로 생긴 카페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종종 이용한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사무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훅 하고 온몸에 밀려오는 더위처럼 퇴근 후 하루의 노곤함이 한번에 밀려오는 밤. 한 손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SNS를 스크롤하는 시간은 내게도 일상이다. 끔벅끔벅 졸면서 화면을 내리고 있는데 좋아하는 카페에서 책과 문구를 주제로 플리 마켓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즐겨가는 독립서점들도 여럿 참여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문구라니! 아직도 문구점만 가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문구인인 내가 지나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공지였다. 책과 문구 그리고 좋아하는 카페의 결합은 유혹적이지만 집에서 가는 거리를 계산해 보니 차로 왕복 2시간이 족히 넘을 거리다. 이 거리에도 뭐라하지 않고 따라나서 줄 친구를 섭외하고 길을 나섰다.


카페문을 여니 한켠에 마련된 풀리마켓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카페에 가득한 손님들은 모두 배경이 되고 마치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마련된 작은 코너로 직진했다. 작은 카페 테이블 2개를 붙여놓은 곳에 독립서점들마다 큐레이션 한 책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었다. 평소 다니던 독립서점 사장님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서점을 자주 가는 사람임을 말하고 사장님들을 알은체를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큐레이션 된 책들 중 최근 읽은 책들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작가의 책을 골랐다. 책 한 권 샀을 뿐인데 함께 넣어주신 엽서와 독특한 디자인의 귀여운 책갈피를 받고 보니 설렘이 배가됐다.


책이 끝났다면 문구를 봐야 할 차례. 볼펜보다는 연필을 좋아하는 내가 요즘 애정하는 연필이 여러 종류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미 몽당연필이 되어 있는 연필과 같은 종류 하나를 만지작 거리고 있자니 사장님이 한번 테스트해 보라며 자리를 내어주셨다. "저 이거 쓰고 있어서 부드러운 거 잘 알아요." 내 대답을 듣고 사장님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주셨다. 연필 하나로 사장님과 나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거침없이 좋아하는 작가가 팟캐스트에서 말했던 노트도 사고 최애 연필도 샀다. 책과 문구를 구경하고 새로 산 책과 연필로 손을 무겁게 하고 나니 기분이 마냥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일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소소하게나마 누리는 것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책, 연필, 노트에 설레는 나. 마음이 청춘인 게 문제인가 싶다가 아직 마음이 청춘인 게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연필을 손에 쥐고 손에 감기는 느낌을 느껴보고, 연필을 그렇게나 쓸 데가 어디 있다고 자꾸 사냐고 타박하지 않는 벗이 있기에 더운 여름 나의 에너지는 쑥쑥 차올랐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할 때 내 마음이 치유되고 내면의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심리학의 공식이 있다고 한다. 행복한 일이 내게 오지 않는다면 행복을 만들어 낼 수밖에. 일상에서 행복을 만드는 재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에 몽글몽글 에너지 기포가 솟아오르는 그 무엇. 사는 게 고통이라는 삶을 견디게 해주는 고마운 것들이다. 더운 여름이지만 나를 다른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두니 마음에는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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