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첫 10km 대회를 완주한 이후 두 번째로 달리기 이벤트를 신청했다. 8km 코스 밖에 없었지만 달리는 장소가 골프클럽으로 너무 매력적이었다. 골프장에서 뛰는 달리기라니! 언제 앞으로 이런 달리기 코스를 뛸 수 있을지 몰라 고민 없이 신청했다.
주말 아침 달리기를 위해 2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에서 삶의 에너지를 엿본다. 사람들의 에너지만 높으면 좋았을 걸 갑자기 더워진 날씨와 따가운 볕의 에너지도 높아 시작 전부터 그늘을 찾게 되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러닝의류와 함께 제공됐던 노란 반다나를 목이나 머리에 두른 채 어떻게든 볕을 피해야만 할 만큼 10월의 주말 아침 날씨는 한여름 같았다. 시작 전부터 지치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더운 날씨에 골프장 카트가 간신히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서 코스가 구성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초반에 동시에 몰리게 되었고, 오르막과 내리막, 구불거리는 길들이 잦다 보니 초반부터 사람들이 포기하고 걷는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지난 대회는 쭉 뻗은 해안도로 길이였고, 연습은 동네 학교 운동장의 트랙에서 주로 하다 보니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코스가 낯설고 어색했다. 마라톤 효과라고 지난번에는 초반부터 페이스가 5분대로 빠르고 힘도 안 들었었는데 이번에 그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5km를 지나자 뛰는 사람들보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고 함께 무리 지어 달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뒤로 뒤쳐지면서 홀로 하는 달리는 구간도 생겼다. 그늘에서는 뛸만하다 싶어 시원한 바람이라도 느껴볼 양으로 모자를 벗었다가도 다시 금세 나타는 햇볕 공격에 성급히 모자를 쓰기를 여러 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까 하는데 갑자기 달리는 작가 하루키가 자신의 묘비명에 적고 싶다는 문장이 생각이 났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좋은 곳에서 즐겁게 달리고 완주하는 게 목표였으니 나도 최소한 뛰기를 포기하고 걷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 하나 둘 소리를 내며 오른발 왼발을 내딛으며 꾸역꾸역 달리다 보니 쉬지 않고 완주에 성공했다. 더운 날씨와 어려운 코스로 함께 피니쉬 라인에 들어온 사람들은 드디어 힘겨운 달리기를 끝냈다는 외마디 탄성을 냈다.
5월 첫 마라톤대회에서 10킬로를 완주했을 즈음은 여름의 길목이었다. 덥다고 달리기를 안 할 수는 없어 매주 3회, 5km를 늦은 저녁 조용히 혼자 달렸다. 한여름에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한 번은 달리기를 하는데 목뒤로 굵은 빗방울 같은 게 뚝뚝 떨어지길래 소나기인가 했더니 땀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여름을 났더니 최근 선선해진 어느 날 좀 더 달려볼까 하다가 야금야금 1km만 더, 2km만 더 하는 마음이 들더니 오늘 목표로 했던 8km를 쉬지 않고 한 페이스로 뛸 수 있었다. 러닝 초보인 내게 혹독한 날씨 속 완주는 지난여름의 달리기가 준 선물이었다.
모든 일에 노력한 만큼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애쓰게 품을 들인 일이, 인간관계가 쉬이 등지는 일을 보게 된다. 운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일이 도처에 있는 상황에서도 달리기 같이 몸이 힘들여 보낸 시간들은 쉬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언제고 몸에 저축되어 빛을 발한다. 오래 자신의 시간을 들인 것들에는 어떤 의식도 더해져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한다. 큰 성공이나 부보다는 인생의 정직과 성실의 가치를 알게 해 주는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정직한 달리기가 좋다.